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2 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제2장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창세기 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327.2)
 주제 : 그리스도의 초림, 침례 요한의 탄생, 전능하신 하나님 (327.3)
 누가복음 1:13의 수태 고지는 창세기 17:19의 수태 고지와 평행을 이룬다. 본 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이름까지 알리시며 사라가 아들 낳을 것을 알려주셨던 패턴을 침례 요한의 출생과 관련해서 반복하고 있다. 침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은 이삭의 탄생 사건과 유사하다. 이삭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오래 동안 기다렸던 아들이었던 것처럼 침례 요한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오래 동안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이삭과 침례 요한이 죽은 태처럼 출산할 수 없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출산이 불가능한 동정녀 탄생을 하셨다. 이삭의 탄생을 약속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이름을 전능한 하나님 엘 샷다이(אֵל שַׁדַּי)라고 말씀하셨다(창 17:1).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327.4)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327.5)
 창세기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327.6)
 주제 : 그리스도의 초림, 침례 요한의 탄생, 은혜 (328.1)
 누가복음 1:18의 사가랴의 태도는 창세기 17:17의 아브라함의 태도와 유사하다. 사가랴는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아들을 갖게 될 것에 대한 소식을 아브라함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되는 침례 요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탄생했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하는 특권을 가졌던 요한의 탄생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가질 수 없다. 그는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고귀한 사명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뻔한 존재가 생명을 받게 되었다. 침례 요한은 탄생 때부터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에 빚진 생명이 되었다. (328.2)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328.3)
 창세기 30: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328.4)
 누가복음 1:25의 엘리사벳의 말은 창세기 30:23의 라헬의 말과 같다. 침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잉태한 기쁨을 이스라엘 민족의 국모인 라헬이 요셉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한 말로 표현했다. 동일한 은혜를 체험한 사라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했다(창 21:6). 엘리사벳이 한 말의 강조점은 현재 그녀가 누리는 기쁨 그 자체 보다도(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셨다) 하나님이 이런 기쁨을 누리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곧 그녀는 ‘아, 하나님이 얼마나 내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가!’ 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감탄하고 있다.22 (328.5)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29.1)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329.2)
 주제 : 그리스도의 초림, 예수 탄생, 마리아, 노아, 미리암, 구원 (329.3)
 누가복음 1:30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마리아는 창세기 6:8에서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처럼 인류 구원 사역에 참여하였다. 누가복음 1:30‘은혜를 입다’(εὗρες γὰρ χάριν 휴레스 가르 카린)는 표현은 창세기 6:8에 노아와 관련해서 최초로 등장한다(εὗρεν χάριν 휴렌 카린). 대홍수 시대에 여호와께 은혜를 입는 것은 구원을 의미하며, 노아는 방주를 마련하여 생물들의 생명을 보존했다(창 6:19-20; 7:23). 마리아는 노아와 대비된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창 6:9)하였던 것처럼 주께서 마리아와 함께 하셨다(눅 1:28). 대홍수로 세상이 위기에 처한 때에 노아를 준비하신 하나님은 인류를 죄의 홍수에서 구원하는 생명의 방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탄생시키기 위해 마리아를 은혜로 옷 입히셨다. (329.4)
 누가복음 1장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마리암(Μαριαμ)으로 부른다.23 이 이름은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מִרְיָם 미르암)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다. 반면에 누가는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의 경우에는 마리아(Μαρία)라고 해서 마리암(Μαριαμ)이라는 이름의 사용을 차별화하고 있다.24(눅 8:2). 누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선지자 미리암과 연결시켜 마리아의 출신 민족(유대인)과 종교를 밝히고, ‘과거의 하나님의 행동과 그녀의 아들을 통해 예견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 그녀가 선지자적 역할을 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25 (329.5)
 미리암은 갈대 방주(תֵּבָה 테바)를 지킴으로26 나일 강물로부터 모세를 구출하여 이스라엘에 위대한 해방을 가져왔다. 미리암이 표상하는 마리아는 유대 종족을 초월해서 만민 앞에 예비하신 주의 구원, 이방을 비추는 빛을 탄생하시도록 했다(눅 2:30-32). (3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