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2 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제2장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 사복음서 속의 창세기
 마태복음 18:22은 용서의 한도에 대해 베드로가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대답이다. ‘일곱 번을 일흔 번’은 칠십인역 창세기 4:24의 헤브도메콘타키스 헵타(ἑβδομηκοντάκις ἑπτά)와 일치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가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막으신 칠 배의 벌과 관련해서 용서의 한도를 칠 배로 정했을 수 있다(창 4:15). (313.6)
 칠십인역에 따르면 라멕의 보복은 일곱 번을 일흔 번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보복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동일한 숫자를 사용하여 철저한 용서를 가르치셨다.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는 말은 ‘사백구십번이라는 특정 숫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적절하게 혹은 완전하게 용서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비상하게 큰 숫자를 나타낸다.’17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를 감옥에 가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생명 얻게 된 우리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마음 속에 명심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큰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14.1)
 죄로 가득 찬 이 세상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은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보복의 정신을 계승한 라멕의 후손들은 결국 대홍수로 멸망 받았다. 보복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아니다.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원수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 머리에 숮불을 얹어 놓음으로 원수를 이기는 길이다(잠 25:22; 롬 12:20). (314.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314.3)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314.4)
 창세기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15.1)
 주제 : 예수의 교훈, 이혼, 창조, 결혼, 성, 바리새인에 대한 논박 (315.2)
 마태복음 19:4에서 예수님이 인간의 창조에 대해 교훈하신 것은 창세기 1:27창세기 5:2의 뒷받침을 받는다. 예수님은 인간 창조를 하나의 설화나 신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해하셨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성 부부 한 쌍을 만드셔서 결혼하게 하셨다. 결혼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세워놓으신 거룩한 제도이다. (315.3)
 본 절에서 예수님은 이혼문제를 놓고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창세기의 말씀에 근거하여 답하고 계신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이 남성 편의주의의 이혼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신 24:1). 예수님은 창세기 1:27창세기 2:24에 근거하여 그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זָכָר וּנְקֵבָה 자칼 우네케바)는 단수로 되어 있어 일부일처제를 가르치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을 함께 제시하여 양성혼인을 가르친다. 이혼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허락된 것일 뿐 하나님의 원래의 뜻이 아니다(마 19:8; 막 10:5). (315.4)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315.5)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315.6)
 주제 : 예수의 교훈, 이혼, 창조, 결혼, 성, 바리새인에 대한 논박 (315.7)
 마태복음 19:5은 칠십인역 창세기 2:24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결혼의 신성성을 옹호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최우선적 관계였지만, ‘그 부모를 떠나서’가 의미하는 것처럼 결혼 후에는 부부관계가 최우선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 부부는 한 마음과 한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서로를 위해 자원해서 희생해야 한다. 부부의 사랑과 형제 사이의 화목함이 깃든 가정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준다. (316.1)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316.2)
 창세기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316.3)
 주제 : 그리스도의 교훈,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을 따름 (316.4)
 마태복음 19:26은 칠십인역 창세기 18:14‘하나님께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표현을 긍정형으로 바꾸어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18 본 절은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라는 초청을 거절한 부자 청년을 보고 예수께서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대답이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시는 분이다. 아흔 살 된 사라의 태를 여신 능치 못한 일이 없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주님을 따르는 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우리는 세상의 재물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며, 그분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로 산다. (3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