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4 부 안식일 신앙의 한 작은 주장 제 6 장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 그리고 메시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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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안식년․희년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회상이다. 태초의 창조의 회상이고 그 안식의 창조의 회상이다. 에덴의 회상이다. 그리고 에덴의 회복이다. 태초로 돌아감이다. 그러나 동시에 안식일은 메시아 시대의 약속이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약속이다. 주의 재림의 약속이다. 안식일은 메시아 시대의 미리 맛봄이며, 메시아 시대의 미리 옴이다. (473.1)
 그리고 안식일은 출애굽의 회상이다. 출애굽의 해방의 회상이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넌 사건의 회상이다. 가나안 정착의 회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탈출을 약속한다. 죽음의 홍해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널 약속이다. 하나님 나라로의 정착의 약속이다. (473.2)
 그리고 안식일은 제칠일에 이루어진 태초의 창조의 완성을 기뻐하는 축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안식일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다 이루어지고 메시아의 나와 함께 하심으로 다 이루어질 세상 역사의 완성을 기뻐하는 축제이다. (473.3)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그러나 창세기 2장의 창조의 끝으로 하나님의 창조는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지성소에서 “다 이루었다” 해야 다 이룬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게되는 것이다. 완전한 끝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473.4)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은 저녁이 이를 때에 마치었다”(창 2:2). 하나님의 지으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일은 역사의 저녁인 종말이 이르러 옴으로 다 마쳐지는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다 마쳐져야 저녁이 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속사업이 다 마쳐져야 역사의 저녁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이 오는 것이다. 저녁과 더불어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녁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섯 날처럼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날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 저녁인 날이 완성의 저녁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이 교환하는 날이 아니고, 낮과 밤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므로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는”(계 21:23) 날이 시작되는 것이다. “민족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고 들어오는” 하늘의 날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햇빛이 없어 저녁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어린양의 빛으로 환하여 “밤이 없는”(계 21:25) 나라,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인”(계 21:22) 나라가 창조와 구속이 완성되는 저녁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만 해가 질 때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안식의 나라도 창조의 일이 마쳐지는 저녁과 더불어 비로소 깃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474.1)
 안식일은 여섯 날의 끝이다. 안식일은 일하는 여섯 날의 끝에 온다. 안식일의 잔치는 여섯 날의 일의 성과를 기뻐하는 잔치이다. 출애굽기 20장 8-11절 곧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의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식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안식일은 일하는 날이 아니라 잔치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제칠일로 돌아가는 날이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삶을 찬양하는 날이다. (474.2)
 매주의 안식일은 안식년에 상응한다. 레위기 25장 1-7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2절)고 하였다. 땅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6년 동안 수고하고 제7년에 쉬라는 것이다. 6일 동안 육축을 부리다가도 제칠일에는 “네 소나 나귀도” 쉬게 하였듯이(출 23:12)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라”(3절) 하였다. 안식일에는 “너와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까지” 모두 일하지 않고 쉬었고 그리고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는 수고를 하지 않고 제6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틀 양식으로 먹었듯이 마찬가지로 안식년에는 너와 네 남종이나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으라(6, 7절) 하였다. 제칠일도 일하지 않고 먹고 즐기는 잔칫날이었고 제칠년도 일하지 않고 먹고 즐기는 잔치의 해였다. 제칠일도 제7년도 땅과 만물의 축제였다. (475.1)
 안식년은 희년에 상응한다. 레위기 25장 8-55절에는 희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일곱 번의 안식년 다음의 “제 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들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그 가족에게도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은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지니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10, 11절) 하였다. 희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전국 거민들에게 자유를 공포하는 일이다. “너희가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고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맺은 언약의 의가 백성들에게 회복되는 것이다. (475.2)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백성이고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땅이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이요 절기이다. 하나님에게 속하여 타인이나 타 부족 그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대상들이다. 그런데 그 동안 하나님이 하나님께 속하게 하고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소유물들을 제 마음대로 팔았거나 방치했거나 또는 제 소유로 삼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한 거룩한 백성을 내어쫓았거나 종으로 삼았다면 모두 원상으로 회복해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의 의를 원상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 해가 희년이다. 땅도 사람도 육축도 부당한 매임과 착취에서 벗어나 하나님 품속의 자유와 안식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이 해가 희년이다. (476.1)
 메시아 시대와 예수
 메시아의 날은 종말적 희년이다. 종말적 안식년이다. 종말적 안식일이다. 이사야 61장 1-11절은 메시아의 날의 선포이다. 종말적 희년의 선포이다. 종말적 안식년의 선포이다. 종말적 안식일의 선포이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사 61:1) 소식이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소식이다. 메시아 시대의 선포이다. 메시아는 이 소식을 전파하며 이 소식의 날을 이끌어 내는 하나님의 종이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사 61:2-3) 이시다. “오래 황폐되었던 곳” 곧 오래 황폐되었던 하나님의 언약의 의를 다시 쌓고 다시 일으키실 자이시다.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를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사 61:8) 자이시다. (476.2)
 진실로 메시아의 날은 종말적 안식일이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신” 날이다. 황폐되었던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는”(사 61:10, 11) 날이다. (477.1)
 이처럼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은 메시아의 시대를 가리킨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하나님은 메시아 시대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안식일의 종은 메시아 시대의 하나님의 종을 가리킨다. 동시에 메시아적 안식일은 태초에 있었던 창조의 안식일에 상응하는 날이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메시아 시대의 기초는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이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과 메시아 시대의 영혼이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이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과 메시아 시대의 꿈과 포부가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이다. (477.2)
 예수는 세상 끝에 오시는 메시아이시다. 이사야 61장이 예언한 메시아는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선포자로 오신 메시아이시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화신으로 오신 메시아이시다.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첩경은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성격을 이해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파송된 분이시다. (477.3)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적 신분을 이사야 61장 1-4절의 메시아 귀절을 통해 밝히셨다. 예수님이 나사렛의 일상적인 삶을 청산하고 공공봉사에 들어가는 이유를 메시아의 사명으로서 대답하셨다. 그는 인류에게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회복시키려 오신 메시아이셨다. 오래 황폐되었던 하나님의 언약의 의를 회복시키려 오셨던 것이다.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우려 오셨던 것이다.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고 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시려 오신 것이다. 즉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메시아적 안식일을 선포함으로서 자신의 공적 생활을 시작한 사실을 확실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예수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로 말미암아 넘어진 자들처럼 넘어지게 된다. (477.4)
 “예수께서 그 자라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책을 펴사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눅 4:16-18).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다”(21절)고 하셨다. (478.1)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는 메시아적 안식일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메시아적 안식일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고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 사상을 강화하고 있다. 종말적 메시아의 여호와 사명은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로 돌아가는 안식일의 사명이다. 예수의 기별과 삶은 안식일 정신의 화신이다. 메시아의 시대는 안식일 계명의 약속을 성취하는 시대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계명을 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안식일의 약속을 강화하셨다. 안식일의 약속을 오늘로 이끌어 내셨다. (478.2)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이 예수님의 안식일의 계명을 대신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예수님의 안식일 계명의 다름이 아니다. 안식일 계명은 옛 시대의 계명이 아니다. 태초의 계명일 뿐 아니라 메시아 시대의 새 계명이다. 우리가 돌아갈 에덴의 계명이며 우리가 기다릴 새 하늘 새 땅의 계명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선포는 안식일의 언약의 선포보다 더 높은 윤리와 사랑의 선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의 선포는 에덴의 사랑, 태초의 제칠일 안식일의 사랑,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적 안식일 사랑의 선포였다. (4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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