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11:19~14:20 — 참된 어머니와 그 자녀들 8. 세째 천사의 기별: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우편국에 당신을 기다리는 돈이 있다. 왜 가서 우편물을 달라고 하지 않는가?” 1847년 가을 매사추세츠 페어헤븐(Fairhaven)의 2층 집에 앉아 있던 조셉 베이츠(Joseph Bates. 1792~1872)의 마음속에 이 같은 음성이 강렬하게 들려왔다. 이 집은 여러 해 전 그가 배의 선장직을 그만두고 돌아왔을 때 지은 것이었다. 이제 그는 11,000 불의 돈을 받고 배타는 일과는 영원히 작별했다. (362.1)
 그는 재산의 일부를 당시에 꽤 수입이 좋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누에 치는 공장에 투자했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페어헤븐에 가면 지금도, 누에를 먹이려고 심었던 뽕나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멜베리(Malbery)가(街)가 아직도 있다. 베이츠는 “절제”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으며 그의 장사는 기울어져 갔다. 여러 사람들에게 술을 끊도록 도와 주었던 그는 이제 윌리엄 밀러가 전하는 위대한 기별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음주와 그 밖의 현세적 비극들에 대한 최종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362.2)
 1844년 10월 22일의 대실망은 그에게 있어서 참기 어려운 일대 타격이었다. 그는 그의 고장에서 널리 존경을 받았었다. 10월 23일 그는 너무나 난처하고 면목이 없어서 동네에 나갈 수 조차 없었다. 차라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버렸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성경을 다시 연구하면서 자기가 자신의 일생 중 경제적으로는 가장 유족한 시기가 아닐지 모르나 가장 매혹적인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62.3)
 그는 곧 성경의 여러 주제에 관한 여러 권의 소책자들을 출판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답례품으로 주었다. 1847년 가을에는 「안식일에 대한 변호」(A Vindication of the Sabbath)란 책을 탐독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에게 남아 있는 금전이라고는 영국 동전인 요크(York) 실링 한 닢 뿐이었다. (362.4)
 바로 이같이 절박한 처지에 있던 조셉 베이츠가 우편국에 가서 기부금을 찾아오라는 음성을 마음으로부터 들은 것이었다. 그는 이 음성을 듣고 기뻤다. (362.5)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 앞으로 나와 있다. (362.6)
 실망한 다음날 아침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대실망을 겪은 다음날 아침에 조셉 베이츠는 차라리 땅이 갈라져 자기를 삼켜 주었으면 싶었다. 얼굴을 들고 세상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362.7)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베이츠 혼자만이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개신교회에서 나온 수많은 재림 신도들이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다니엘 예언서라는 “작은 책”을 맛있게 “먹었”으며 그 맛이 입에 “꿀과같이 달았다”. 이제야 그들은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한 요한의 예언을 이해하게 되었다(계 10:10). (362.8)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 실망을 해명하는 빛이 즉각 비치기 시작 했다. (362.9)
 하이람 에드슨(Hiram Edson, 1806~1882)은 1844년까지 수년에 걸쳐 감리교회에서 집사의 일을 보던 사람이었다. 그는 1844년 10월 22일 자정이 되어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그와 그의 가족이 “동 틀때까지 울고 또 울었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였다. (362.10)
 그 날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난 그는 마음이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과거에 믿음의 용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캄캄한 어둠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필시 언젠가는 모든 것을 밝혀 주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는 한 친구와 더불어 낙심 중에 있는 다른 형제들을 격려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들이 한 들판을 막 가로질러 건넜을 때 어떤 성경 구절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빨리 모든 사태들이 선명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363.1)
 실망당한 다른 신도들도 성경에서 그 설명을 찾아냈다. 그들 중에는 밀러 운동을 위해 신문들을 편집했던 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 서쪽 지방인 신시내티의 에녹 제이콥스(Enoch Jacobs), 동부 해안 지역인 메인 주 포틀랜드의 조셉 터너(Joseph Turner), 그리고 보스턴의 아폴로스 헤일(Apllos Hale)이다. 터너와 헤일은 이 문제를 함께 연구한 것 같다. 제이콥스와 에드슨은 독립적으로 동일한 발견에 이르렀다. (363.2)
 에드슨과 세 편집인들이 재인식한 주요한 두 개의 성경절은 우리가 바로 앞의 항목에서 이야기 했던 성경절들이었다. 그들은 다니엘 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시간에 땅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시는 자에게로 나아가셨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35~37절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혼인 잔치” 로부터 오신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와같이 다니엘 7장의 심판 장면에 예시된바 그의 왕국과의 “혼인”은 재림이 아니라 재림에 앞서 선행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363.3)
 제이콥스와 터너및 헤일이 편집했던 신문들에서 이 새 해석이 기사화되었다. 1844년 10월에 실제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성경의 표현으로 설명하는 기사였다. (363.4)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같이 되라.” 그들은 흠정역 성경을 통해 이 성경절을 읽고 또 읽었다(관련 문제와 해답란을 참고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눅 12: 36, 37). (363.5)
 이것은 평범한 비유가 아니었다. 보통의 비유는 보통 사건을 취하여 그 사건에 영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는 아무리 종들이 순종한다고 해도 주인이 하인처럼 허리에 띠를 두루고 종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다른 예화에서 명백하게 확인하셨다. 다른 비유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인이 종을 대접하기는 커녕 종이 밭에서 종일 수고하고 돌아와 대단히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주인은 계속 종에게 일을 시켜 말하기를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할 것이라 하셨다(눅 17:7, 8). (36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 허리에 띠를 띠고 종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주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의 장엄한 약속 곧 마지막 시대의 예언이었다. (363.7)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363.8)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신다. (3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