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5장 대속죄일의 심판은 확신을 준다
 이 세 가지의 접근법들을 힘이 세거나 위협적인 사람을 다루는 방법들과 비교해 보라.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경멸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친절하게 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편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멀리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잘 알아가므로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첫인상을 극복하고 그 사람과 친구가 될지 말지를 결정할 정당한 근거들을 얻을 수 있다. (412.3)
 내가 세 번째 선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정직하고, 편견이 없고, 진실하며 또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가장 친한 친구 중 몇명을 사귀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심판과 같은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더 많이 배웠다는 사실이 내가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는 보증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연구함으로 내 견해의 기초를 무지가 아닌 정보나 경험에 둘 수 있다. (412.4)
 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성경 연구를 통해 심판에 관련된 요소들의 좀 더 실제적인 관점을 살펴봄으로서 해결되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 심판을 받지만 그 행위들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우리의 행위를 믿음으로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율법주의가 설 자리는 전혀 없다. (413.1)
 우리가 받은 용서는 하나님께서 용서와 함께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없도록 해서 하나님과의 새 언약의 연결을 잘라버릴 때만 심판에서 무효가 된다. 우리가 그분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완전한 확신을 갖는다. (413.2)
 우리가 행한 옳은 행위로 하나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행하신 일들로 스스로를 옹호하신다. 그분은 대제사장에 의해 자신의 성소/명성을 옹호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심판의 결과와 그와 관련된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이루어지는 회심에 따라오는 결과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413.3)
 심판은 하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판에서 우리의 이름이 언제 오를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늘 진주문을 비집고 들어가기에 넉넉할 만큼 지속적으로 행하는 위선적인 쇼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순수하고 지속적인 헌신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심판이 언제 시작될 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413.4)
 그리고 그분은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그분의 백성이 무엇을 행하기를 기대하시는지를 우리로 알게 하셨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계 14:12) 것이다. (414.1)
 하나님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심판의 마지막은 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죄에서 벗어나는 지점까지 성장시키시며 그들의 헌신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더 높은 도덕적 성장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성장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계속적으로 배워 가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414.2)
 사람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마 1:21) 오신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죄를 포기하려는 바램이 없는 사람들에게 심판은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완전한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414.3)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6~27, 31)
(414.4)
 심판은 반역한 자들에게 죄를 선고하고, 충성된 자들에게 구원을 주는 양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편한 방법대로 해석해서 심판의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참백성에게 있어서 심판은 자비에 관한 것이고 심판의 결과는 우리를 위한 것이며, 심판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우리의 거룩한 왕이며 심판장이 되시는 그분을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414.5)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용서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판에 들어간다면 그 심판은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굳은 확신을 갖게 할 것이다. (415.1)
 심판이 베풀어지는 동안 우리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확신을 가질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시다는 확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에 있다는 확신,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대한 확신, 그리고 압제로부터 구원 될 것에 대한 확신이다. (415.2)
 하나님께서 공정하시다는 확신
 우리의 세상은 혼란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재판하는 왕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 그분은 어떤 인간 지배자나 재판관과는 달리 정직하고 공평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유리하다· (415.3)
 시편 96편에는 그분의 성소에서 창조주시며, 왕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베풀어진 구원과 공의로운 심판을 찬양한다. 그 시편의 끝은 여호와의 심판을 미리 내다보는 기쁨이 터져 나온다. (415.4)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6:11~13).
(415.5)
 심판은 엄숙하고 두려운 반면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왜냐하면 주님이 심판이 행해지는 내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416.1)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
 우리가 심판의 장소에 실제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심판의 장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계신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과거에 일어난 십자가의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다(히 4:14~16).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4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