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49장 그분은 영원토록 찬송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268.1)
 창세기 49장에 야곱의 유언과 죽음이 기록되었다. (268.2)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신 주님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창세기 49:1-2).
(268.3)
 본 장을 야곱의 축복으로 보기에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게 내린 저주를 고려하면 무리가 있다. 야곱은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다(창 49:1). ‘후일에’로 번역된 ‘베아하리트 하야밈’(בּאַחֲרִית הַיָּמִֽים)은 칠십인역이 ‘날들의 끝에’(ἐπ᾽ ἐσχάτων τῶν ἡμερῶν 에프 에스카톤 톤 헤메론)로 번역한 것처럼 종말론적 시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사 2:2, 말일에 본 절에서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기 후의 ‘먼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1 야곱은 자기를 이스라엘로 소개했다(창 49:2, 7). (268.4)
 이 예언은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기근 때문에 굶어 죽을 뻔 했다. 그러나 애굽에서 그들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애굽도 안전한 곳은 아니다. 여기서 그들은 바로에 의해 모든 사내아이가 죽임을 당함으로 민족이 사라질 위기에 다시 처해 진다(출 1:6, 22).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들에게는 ‘먼 미래’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위기를 뚫고서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268.5)
 구속사는 과거만 되돌아보지 않는다. 이것은 먼 미래를 본다. 먼 미래에 비록 르우벤, 시므온, 레위처럼 저주가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미래는 두려워 할 것이 못된다. 저주 받은 레위가 제사장 가문이 되었던 것처럼 구속사는 예정해 놓은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개인과 민족의 운명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가변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그분께로 돌아올 때 새 역사를 기록하시기 때문이다. (269.1)
 유다, 예수의 표상
 야곱이 유다를 메시아의 조상으로 축복했고, 요셉도 축복하였다. 이 두 인물은 메시아를 표상할 수 있는 인물이며, 이들에게 주신 축복 속에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도 예언이 되어 있다. 먼저 유다에 관한 예언을 살펴보자. (269.2)
 1. 찬송 받으실 주님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창세기 49:8).
(269.3)
 유다는 다말의 일로 잘못을 범했지만(창 38)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처럼 저주를 받지 않고, 그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찬송을 받았다(창 29:35) 유다가 없었더라면 온 세상에 임한 기근 때문에 가나안에 있던 야곱의 집안이 멸망당할 뻔 했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요셉에게로 베냐민을 데려갔고(창 43:8-15), 베냐민 대신에 자기를 종으로 바치겠다며 중보하여 극적인 형제 화해를 이끌어 냈다(창 44:33-창 45:1). 형제들이 애굽에서 누리는 안전하고 풍족한 삶은 유다를 통해 이르러 왔기에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감이다. (269.4)
 예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탄생하실 때 베들레헴의 들판에 울려 퍼졌던 천사들의 찬송에서 시작하여(눅 2:14) 승천하신 후 천상의 존재들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영원토록 끝없이 찬송을 받으신다.2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라.’(눅 1:55). ‘누가는 아브라함을 언급함으로 구속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예수님 안에 계속됨을 강조하였다.’3 (270.1)
 요한계시록은 구속사의 전환점이 이뤄질 때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함으로 우리들의 매일의 생애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찬양으로 흘러 넘쳐야 할 것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황제의 핍박이 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생존이 크게 위협 받던 때에 기록되었다. (270.2)
 2.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세기 49:8-9).
(270.3)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창 49:8 ‘오레프’(עֹרֶף)는 목, 목덜미, 머리 꼭대기를 가리킨다.(HALOT) 전쟁 때에 목덜미를 보이는 것은 패배하여 도망치는 것을 의미한다(출 23:27; 삼하 22:41). 목을 잡는 것은 승리의 몸짓이다.4 표상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통하는 것으로(창 3:15) 온 천하를 꾀던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가 천사의 손에 잡혀 무저갱에 던져져 일천년을 지낸 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영원히 멸망 받게 될 것을 표상한다(계 12:9; 20:1-3, 7, 10). (270.4)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 49:8). 마치 야곱의 아들들이 모두 요셉에게 절했듯 존귀한 신분이 된다(창 37:7, 9; 42:6; 43:26; 44:14). 유다의 후손인 다윗은 왕이 되었고, 솔로몬을 비롯한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세습했다. 백성들은 왕 앞에 엎드려 절한다. (271.1)
 이 예언의 궁극적인 성취는 이상적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만방이 엎드려 절할 때 성취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까지 낮아지는 경험을 통해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 2:7-11). (271.2)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창 49:9). 사자는 강함(삿 14:18)과 용맹성(삼하 17:10)과 사나움(시 7:2[H 3])을 대표한다.5 움킨 것을 찢는 짐승의 왕 사자처럼 유다가 강성해 질 것을 예언한다. 다윗은 사자나 곰의 입에서 양 새끼를 건져낼 만큼 용감한 사람이었으며, 그런 용맹심을 발휘하여 골리앗과 같은 원수를 물리쳤다(삼상 17:34-36). (2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