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로서 야곱이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부인 레아의 소생이다. 시므온은 격렬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므온의 생애와 그의 이름을 계승한 지파의 생애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오점들을 지니고 있다. (291.1)
 시므온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범죄는 세겜의 주민들을 살해한 것이었다(창 34). 레위도 이 악한 행위에 시므온과 함께 가담했으나 주동적 역할을 한 것은 시므온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죄악을 묘사할 때마다 성경은 시므온의 이름을 먼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291.2)
 이 사건의 전모를 살펴보면 슬픈 사연도 곁들어 있다. 세겜의 왕자가 야곱의 유일한 딸 디나를 능욕한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그 누이동생이 그녀의 오라버니들, 특히 디나의 어머니인 레아의 소생들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의 죄를 꾸짖었을 때, 그들의 유일한 대답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나이까?”(창 34:31)였다. (291.3)
 그들의 누이에 대한 애정이 그런 보복의 행위를 하게 한 것이다. 디나가 꾐에 빠져 세겜 왕자의 집에 들어갔으므로 그들은 디나를 구출하고자 했다. 그래서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인들을 살육한 후, 디나를 집으로 데려왔다(창 34:26). (292.1)
 야곱이 시므온에게 전한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라도 죄를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기들의 유일한 누이동생이 능욕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무서운 보복적 행위에 대한 그 어떠한 구실도 되지는 못하였다. (292.2)
 야곱의 아들들이 그의 마지막 축복을 받기 위해 임종하는 아버지 곁에 모였을 때, 죽어가던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보고 약 40년 전에 있었던 그들의 살상행위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마치 그의 이름이 이런 악행에 의해 계속해서 더럽혀질 것을 생각하며 떠는 듯 계속하여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292.3)
 이 두 지파는 “나누어”졌고 “흩어졌다.” 그러나 얼마나 서로 다른 입장에 섰는가? 레위 족속은 종교적 교사로, 제사장으로 온 나라에 흩어져 영광스러운 위치를 차지했다. 시므온 지파가 분산되어 버린 것은 그 지파 자체 내에 부패시키는 요소들 때문이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수를 감소시키고 마침내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유산마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92.4)
 다른 지파들이 땅을 분배받을 때, 시므온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다 지파의 몫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유산의 일부를 차지하도록 허용되었다. 그 후에 시므온 족속 중 얼마가 새로운 영토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들의 형제들로부터 분리되어 나갔다(대상 4:27, 39, 42). (293.1)
 고대 유대 학자들의 문서에 의하면, 시므온 족속은 그들의 땅에서 너무나 곤궁한 나머지, 그들 중 대다수가 다른 지파의 땅으로 옮겨가 그들의 자녀를 가르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참으로 야곱 중에 나뉘었고, 이스라엘 중에 흩어졌다. (293.2)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했을 때, 시므온 지파는 59,300명의 장정을 가지고 있었다. 단 두 지파만이 이들보다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싯딤에서 다시 한 번 계수했을 때는 겨우 22,200명으로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연약한 지파가 되었다. 왜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났을까? 시므온 족속의 장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전장에서 생명을 희생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마음이 방자함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민수기 25장은 시므온 족속의 멸망에 관한 슬픈 역사의 기록이다. 이 기록을 보면, 이 반역의 주동자는 시므온 지파의 족장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미디안 창녀들의 밥이 되었다. 참으로 “대저 그[그 여자]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다(잠 7:26)고 하였다. 세 번이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부르심을 입은 솔로몬도 똑같은 매혹적인 마력에 이끌리어 자신의 고결성을 희생시키고 말았다(느 13:26). (293.3)
 지금도 시간이 흘러간 해변에는 육욕적인 방종의 바위 위에 떨어져 깨져 버린 인물들의 잔해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우상숭배로 이끌리기 전에 먼저 방탕한 자들의 먹이가 되었다. 음탕한 욕망이 마음을 다스리면 다른 죄악들이 쉽게 들어오는 것이다. (294.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8).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정복한 용사보다 더 위대하다(잠 16:32).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 25:28). (294.2)
 어떤 사람들은 모세가 축복할 때, 시므온의 이름을 빼버린 것은 싯딤에 거하는 주민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그가 불쾌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94.3)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을 때 이 지파가 차지한 위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다만 두 개의 본문에 그들이 아직도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공감의 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할 뿐이다(대하 15:9; 34:6). (294.4)
 시므온이 저지른 돌발적인 죄악들 가운데 나타난 두려워할 줄 모르고 호전적인 그 동일한 기질이 유딧의 생애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다. (294.5)
 그녀의 이름을 담고 있는 그 외경서가 실제 역사인지 아니면 가공된 역사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기록에 의하면, 유딧은 그의 나라를 구출해낸 자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리하여 그녀는 민족의 영웅 중의 한 사람으로 항상 남아 있을 것이다. 야엘처럼 유딧은 적군의 지휘관을 살해했다(삿 4:21; 유딧 13:6~9). 그는 “나의 조상 시므온의 주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엄청난 업적을 얻을 용기를 얻었고, 또한 그의 기도 가운데서 세겜에서의 살육을 넌지시 언급하기도 하였다(유딧 9:2). (294.6)
 에스더처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유딧의 역사는 시므온과 그의 후손들이 걸어간 악한 길과는 대조를 이룬다. (295.1)
 「가짜 요나단」(Pseudo-Jonathan)이라는 「타르굼」(Targum)에 의하면, 어린 요셉을 죽이도록 계획한 사람은 시므온과 레위였으며, 요셉이 도단에 있는 웅덩이 속에 빠뜨리기 전에 그를 결박한 사람은 시므온이다. 이런 사건은 그들이 세겜 사람들의 살해를 계획하고 실행한 지 불과 2년 후에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요셉은 그들의 목전에서 자기를 묶어 살해하고자 했던 시므온을 볼모로 묶어 두도록 명령했다(창 42:19~24). (295.2)
 아마도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이런 살생과 죄악으로 유명한 자의 이름이 하늘 도성으로 들어가는 문들 중의 하나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될 것이며, 144,000인 가운데 12분의 1이 그의 이름을 가지고 도성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의심스럽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가 천국으로부터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회개하지 않은 죄이다. (295.3)
 여인에게서 난 자로서 죄가 없는 사람은 오직 예수뿐이다. 아담의 모든 가족 가운데 오직 그분만이 영원토록 죄의 흔적이 없는 생애의 기록을 가질 것이다. 그분의 생애의 기록 중 어떤 부분도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생애의 기록은 그리스도의 의(義)로 가려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가장 깊이 물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살인자라도 하늘에 갈 수 있는데, 살인자로서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사 1:18) 될 것이기 때문이다. (2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