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초승달의 가시도(可視度)
 고대의 관습에 따르면, 초승달이 그 달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산되기에 앞서서 초승달이 실제로 관측되어야 하며 그 관측 기록이 이 일을 책임맡은 사제들(司祭:日官들)에게 보고 되어야 했다. 관측관들은 그 달 29일 일몰 시각에 천문 관측에 유리한 위치에 서서 서쪽 하늘을 열심히 살핀다. 첫 초승달은 태양이 져서 땅거미가 꽤 깊어지기 전에는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첫 초승달은 지평선에 너무 가까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 일에 숙련된 관측관들의 눈에도 겨우 몇 분 동안 보이고는 이내 사라진다. (252.4)
 만약, 서쪽 하늘에 구름이 라도 낮게 드리워져 있고 그 구름의 두께가 예루살렘의 안개가 지평선의 시야를 가리는 정도를 넘을 경우에는 초승달 관측이 실패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지난 달은 하루가 추가되어 30일이 되고 새 달은(초승달이 아직도 분명히 관측되지 않아도 그러다.) 그 다음 날 밤부터 시작된다.(유대의 날, 달, 년은 일몰이 그 시작이라는 점을 유념하라). (252.5)
 니산월 14일은 일관(日官)이 초승달을 선포한 후 14일째 되는 날 저녁 일몰과 함께 시작한다. 그러니까, 날짜 계산에 14째 날이 포함되는 것이다. (252.6)
 비록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기원후 30년에서 33년까지의 예루살렘의 신춘 초승달이 언제 언제였는지를 정확히 알려 줄 수가 있다 해도, 그 초승달이 그 날 밤에 실지로 육안에 식별되었는지 아니면 구름에 가렸는지를 정확히 알려 줄 도리는 없다. 당시의 기상 조건을 알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근래 천문학자들이 초승달의 정확한 날짜를 산출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날 밤이 그 당시 실지로 니산월 1일로 계산되었는지 아니면 지난달 30일로 계산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252.7)
 그리고, 이 약점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난 주간의 금요일, 즉 니산월 14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니산월 1일을 정확히 산출해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253.1)
 기원후 30년 4월 7일 금요일이 많은 성경 주석가들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신 유월절 날인가? 만약, 초승달이 14일 밤 앞서인 3월 24일 금요일 일몰 후에 나타났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만약 3월 24일 밤 초승달이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면 새 달은 하루 늦게 시작되 었고, 따라서 니산월 14일인 유월절 날은 4월 7일 금요일이 아니라 4월 8일 토요일이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원후 30년이었을 가능성이 배제되어야 한다. 또 이 해에 날씨가 추워서 보리 추수기가 늦어졌다고 한다면, 니산월은 한 달 늦추어 다음 달 초승달에 시작하도록 조정되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니산월 14일은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떨어진다. 이 경우였다 해도 기원후 30년 설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253.2)
 d. 월삭과 초승달의 간격
 앞에서 월삭과 초승달의 거리가 짧으면 몇 시간, 길면 4 일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문제를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발생한다. 수난 금요일을 정확히 말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성경 주석가들은 초승달이 월삭이나 월삭 다음 날에 항상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골드스타인(Goldstine)의 월삭 목록표를 잠깐 열람만 해도 첫 초승달이 떴던 저녁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월삭(삭월)과 실지 육안으로 초승달을 확인하는 것의 사이에 일정치 않은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치 못하고 있다. (253.3)
 아킬레스 타티아누스(Achilles Tatianus)는 기원후 6세기 사람으로 “월삭과 동시에가 아니라∙∙∙월삭 삼사 일 후” 초승달을 보았다는 관측 기록을 남기었다.21 (253.4)
 7세기의 요아네스 헤벨리우스(Joannes Hevelius)는 “달이 처음으로 뜨는 것은 일반적으로 삭월(弼月)후 첫 날이 아니라 이틀째 또는 사흘이나 나흘째 날이라”고 하였다.22 (253.5)
 제미누스(Geminus)라고 하는 한 고대의 천문학자는 다음과같이 말했던 것으로 전한다. 달이 근지점(近地點:달, 혹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와지는 지점:역자주)에 위치하여 그 움직임이 가장 빠를 때는 통례상으로 삭월 후 이틀까지 나타나지 않으며, 달이 원지점(遠地點·:달이 지구에서 가장 먼 지점:역자주)에 위치하여 그 움직임이 가장 느릴 때는 삭월 후 나흘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앞 경우의 예외로서 달이 가끔 삭월 후 첫 날에 나타나곤 한다.23 (253.6)
 위의 기사들에서 지적된 바와같이, 기원후 30년에 초승달이 3월 24일에 나타나지 않았다든지 또 날씨가 좋았다 하더라도 3월 22일 월삭과 그 다음에 오는 초승달의 사이가 이틀 이상으로 길었을 가능성, 그래서 니산월 14일은 금요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러나, 3월 25일에 니산월이 시작된다 해도 보리 추수에는 아직도 철이 너무 이르다. 그래서, 29일이나 30일 늦게 즉 4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므로 기원후 30년 니산월 수난 금요일이라는 설(說)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53.7)
 e. 종파별 의견 불일치
 그리스도의 수난 연대를 달 관측으로 측정하려할 때 부딪치는 다섯번째 문제는 복음서들에 나타난 증거들이다. 복음서들에 나타난 증거들에 의하면,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 자신이, 특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유월절 계산법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부분적으로는 달 관측과 무관한 유월절 계산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53.8)
 유월절 양을 잡는 공식 행사가 그리스도의 수난 주간의 금요일 오후에 이루어지고 금요일 밤에는 그 잔치가 이루어졌다 해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목요일 오후에 그들의 유월절 양을 잡아 목요일 밤에 그것을 잡수셨다. (253.9)
 그리고, 복음서의 설명을 읽으면, 많은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대로 행하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목요일에 유월절 행사를 치르는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인상이 없기 때문이다. (254.1)
 뿐만 아니라, 사해(死海) 사본24에 의하면 에세네 공동 사회에서는 달 관측이나 니산월 14일에 상관없이 수요일에 유월절을 기념하도록 가르쳤다는 것이다. (254.2)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해에는 유월절이 팔레스타인에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기념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에, 유대인들이 달 관측을 중심으로 유월절을 계산하는 일에 의견을 일치할 수 없었다면, 단지 천문학자들에게 니산월 14일 금요일을 알아내라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결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254.3)
 전문적인 천문학자들은 십자가 사건의 연대를 알아낼 수 없노라고 실토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 항해력(航海磨) 사무소 소장 D. H.세들러(Sabler)는 “순전히 지역적인 조건들이 초승달 관측에 대한 온갖 세심한 노력을 무력화한다”고 하였다.25 (2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