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11:19~14:20 — 참된 어머니와 그 자녀들 3. 어찌하여 하나님은 마귀를 멸망시키지 않는가?
 루스벨은 천사들에게도 동일한 논법을 교묘하게 형태만을 바꾸어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교묘하게 충동질했다. 하나님의 율법은 너무나 전제적인 것으로서 피조물들의 권리와 기쁨을 박탈하고 있다고 설득했다. 천사들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는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이 영원한 세상에서 아직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으며 따라서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327.8)
 루스벨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고 갈망했기 때문에 오직 천사들의 행복만을 위해 애쓰는 자인 양 처신했다. 그는 피조물들에 대해 설득하기를 피조물들 자신이 각자에게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형용할 수 없는 영광과 무한한 안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한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들의 진정한 필요에 대해 무엇을 알며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도리에 대해 무엇을 알 것인가? 라고 하였다. 만약 루스벨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미가엘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천사들의 권익을 위해 훨씬 더 나은 봉사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328.1)
 우리는 하나님께서 수천 년에 걸쳐 얼마나 끈기있게, 얼마나 친절하게 우리를 대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루스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큰 친절과 사랑으로 일하셨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물론 루스벨 자신은 당초 자신의 불온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죄의 경험이 없는 루스벨로서는 죄의 결과를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성의를 다하여 루스벨이 처한 위험을 경고하고 참을성있게 그의 질문들에 답변하셨다. 후에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신 말씀은 전에 루스벨을 향하여 호소했던 바로 그 말씀이다. 즉,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 하노라.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겔 33:11). (328.2)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도 배반한 천사들을 더 이상 도와 줄 수 없는 때가 당도했다. 하늘을 황폐시키는 루스벨의 행위는 마땅히 중단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웠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 이후 용과 그의 천사들은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하”였다. “큰 용과∙∙∙그의 사자들이 땅으로 내어 쫓”겼다(계 12:7~9). (328.3)
 루스벨이 싸움에 패배하자 하늘에는 승리의 함성이 높이 솟았다. (328.4)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계 12:10, 12). (328.5)
 그러나 경고의 소리도 있었다. “땅과 바다는 화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하늘에서 쫓겨난 루스벨(이제는 사단 또는 마귀)은 이제 수많은 그의 사자들을 이끌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가 주지하는 바대로 재빨리 하와를 속이는데 성공하였다. (328.6)
 그때 이후로 사단은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을 쉽사리 기만하고 무자비하게 괴롭혀 왔다. (328.7)
 딜레마에 빠진 하나님
 하나님이 끝내 마귀와 그 천사들을 멸망시킬 의도셨다면 왜 대쟁투의 초기 단계에서 그렇게 하시지 않고 피눈물로 얼룩진 수천 년 역사의 기간을 흘러가게 하시는 것일까? 우리는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으로 되돌아 왔다. (328.8)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대쟁투의 초기 단계에서 루스벨을 멸망시키셨다고 가정해 보자. 수많은 하나님의 진실한 천사들 가운데서 어떠한 반응이 일어났겠는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들의 면전에서 한 아이의 뺨을 때렸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겠는가? 필시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처사를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328.9)
 대다수의 천사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의 편에 분명하고도 확고한 의지로 섰다. 그러나 역시 상당한 수효(아마 수백만 명이 되었을 것이다), 곧 날카로운 지성과 고상한 동기를 가진 하늘 천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무리들이 사단의 기만을 믿었다. 그러니 공공연히 사단을 따라나서지는 않았으나, 사단의 말이 진실일지 모른다고 반신 반의할 천사들이 많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328.10)
 만일 하나님이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그 당장으로 멸망시켰다면 사단의 기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했던 여타 천사들에게 사단의 기만은 영원히 미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의심은 언젠가 또 하나의 반란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329.1)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기본 원칙인 자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 24:15).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329.2)
 사단과 로마는 사람을 얽어 맨다. 하나님과 그 아들은 그들을 자유케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너무나 사랑하신다. 그는 우리의 사랑을 강요함으로서 결국 그 사랑을 파괴시키는 일을 결코 행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설득하고자 하실 때, 계속적으로 그의 친절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우리의 사랑을 얻고자 하신다. 그분은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하신다. (329.3)
 물론 이것은 인간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하나님은 사단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사단을 너무 빨리 처벌한다면 일부 천사들이 하나님을 자유의 박탈자로 비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마치 “나에 대한 순종이냐 아니면 죽음 이냐?”의 양자 택일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독재자로 곡해할 여지가 남게 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사단을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하나님의 인내가 하나님의 무력성(無力性)으로 오해될 여지가 남는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이같은 딜레마에 봉착하여 좀더 자비로운 방식을 선택하셨다. 그는 사단이 사람들을 계속 괴롭힐 것이며 그리하여 사람들과 천사들이 “왜 하나님은 천사를 멸망시키지 않으시는가?”하고 소리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사단을 더 오래 살려두기로 작정하셨다. (329.4)
 하나님은 완전히 다시 시작할 수 없으셨는가?
 얼핏 들으면 터무니없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한 가치를 지닌 하나의 연관된 질문이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오해의 여지를 없이 하시고 또 최소한의 불필요한 고통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단번에 멸망시키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정하시면 그 수많은 은하계에 살고 있는 지성적인 존재들을 글자 그대로 10억분의 1초 안에 완전히 없앨 수가 있으시다. 일종의 우주식 중성자탄 같은 것이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은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이 우주를 새로운 피조물로 완전히 새롭게 채우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피조물들은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더 나은 지혜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더 현명치도 못한 존재들! (329.5)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이같이 편리한 방법을 전혀 생각지 않으셨다는 명백한 논급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거민들로 하여금 증거의 심사를 통하여 사단과 죄, 그리고 하나님과 그 사랑에 대해 훨씬 더 현명해지기를 원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329.6)
 온 우주의 모든 거민들은 사단의 반역이 가져 온 결과들을 주목하면서 비로소 죄의 결과를 깨달을 것이다. 계속 반신 반의해 왔던 거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의심이 완전히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하나님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영원히 확고해질 것이었다. (3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