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신 성령님 서문 서 론
 왜 성령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필요한가?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성령 이해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필수적이다.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기독교 신앙의 총체 혹은 요약”이다.1)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삼위(三位)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시며 이 세 위격은 일체(一體)가 되신다는 가르침은 성경 전반에 흐르고 있다. 삼위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사역에 연합하신다는 깨달음과 이해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 (11.1)
 초기 기독교인들은 모두 유대인들로서 구약에 나타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으로 알고 있던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보고, 또한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의 강렴을 오순절에 체험하게 됨으로써 유일하신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계심을 알게 되었다. (11.2)
 따라서 삼위일체 신앙은 철학적, 사변적 추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의 구원 경험에 근거한 실제적인 교리로써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2) (12.1)
 삼위일체의 표현인 “아버지, 아들, 성령”이란 용어는 본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고백(address)속에서 사용한 칭호들”3)로써, 삼위 하나님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하나님 경험에 기초한다.4) 이러한 삼위일체 신앙은 기독교를 “신적 존재 내의 구별을 부인하는 유대교와 하나님의 단일성을 거부하는 이교로부터 원칙적으로 구별시키는 기독교의 핵심”5)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신앙은 “기독교 신앙과 예배의 가장 갚은 곳에 위치해 있는 심장”6)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구속 계시의 핵심”인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7) (12.2)
 성부, 성자, 성령은 각자 위격을 가진 하나님으로 계시지만 삼위가 일체되어 존재하시며 일하신다. (12.3)
 성부와 성자는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고, 독특한 위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성령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능력’, 혹은 ‘하나님 기운’ 등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감화력”이나 하나님의 “능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8) (13.1)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은 추상적이고 피조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부, 성자와 더불어 신성의 제 3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마 28:19; 고후 13:13; 신 6:4). 성령은 영원 속에 실재하시는 한 위격으로서 스스로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분이시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활동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삼위일체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성령 이해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마 12:31, 32; 고전 12:3; 롬 8:26, 27; 요 14-16). (13.2)
 둘째로, 성령 이해는 ‘영성’문제에 대답을 제공해준다. 영성은 현대 신학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맞이한 새 세기는 영성의 시대라고 한다. (13.3)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영적으로 고갈된 삶, 교회의 세속화, 이로 인한 신자들의 윤리적 불감증과 타락 등 많은 위기들이 더욱더 우리로 하여금 영성이 충만한 삶을 갈구하게 한다.9) “영성”이란 성령 안의 삶과 성령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가리킨다.10) (14.1)
 서구 영성의 신학적인 기초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신학은 육체와 자연의 가치를 하락시커고, 하나님 경험을 위한 인간의 내적이며 직접적인 자기 경험을 우대하였다. 그래서 감성적 사회 경험과 자연의 경험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11)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서구 영성은 육체를 배제시키고 땅과 자연을 인간 정신의 지배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개인의 위격적 가치가 인간의 사귐의 가치보다 더 높은 것처럼 간주되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낳았다. 서구적 영성은 성경적이고 히브리적인 성령 이해를 가지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12) (14.2)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성령의 활동을 전제한다. 그의 선구자 침례 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장하였다(눅 1:15, 80). 예수님도 성령으로 잉태하였고(마 1:18-20; 눅 1:35), 침례 받을 때 성령의 강림을 받았다(마 3:17; 막 1:10; 눅 3:22; 요 1:32). 그가 침례를 받은 후 성령은 그를 광야로 몰아냈으며(마 4: 1; 막 1:12; 눅 4:1), 거기서 다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왔다(눅 4:14). (14.3)
 그의 사역은 한량없는 성령의 부음의 사역이었다(요 3:34; 눅 4:32, 35, 40, 41; 마 12: 15). 또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자신을 제물로 바쳤으며(히 9:14), 성령으로 부활하셨다(롬 8:11; 1:4).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성령에 의한 사역이었다. 그의 생애는 철두철미 성령의 사역이었다. (15.1)
 바울은 그리스도인 삶을 “성령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보았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지를 확증해야 한다(고후 13:5).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고후 5:17). 그런데 그 일은 오직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요일 3:2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영성 회복을 위해서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5.2)
 셋째로, 성령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준다. 지금까지 신학은 주로 신론(Theology)에서 기독론(Christology)으로 발전되어 왔다. 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 초기에는 신론에 대한 논쟁이 많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기독론에 대한 논쟁이 핵심 주제가 되었다. 신학역사에서 성령론(Pneumatology)은 거의 등한시 되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 같은 신학의 형태를 비판하고 성령론을 옹호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13) (15.3)
 전통적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일체성에서 출발해 이러한 하나님이 어떻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15.4)
 이것을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라고 하는데, 이는 삼위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그분 안에 가지고 있는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전통적 개신교의 이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기독론적 성령론”, “신앙의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영”을 강조함으로써 성령을 종속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을 지닌다. (16.1)
 한편 현대 삼위일체 연구는 하나님 안의 통일성을 세 위격 사이의 친교(comminion, koinonia)에서 찾고자 한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의 복수성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일체성과 통일성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것을 가리켜 “사회적 삼위 일체의 신학”(social Trinitarian theology)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최근 신학계에서 급속히 발전되고 있다. 이 견해는 “성령론적 기독론”, “역사의 예수”, “영의 그리스도”, “경륜적 삼위일체론”(economic Trinity)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성령 이해는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14) (16.2)
 마지막으로,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33년이라는 지상사역의 한정된 시간의 사명을 가지고 계셨듯이 성령께서도 지상사역의 한정된 시간의 사명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이 바로 오순절부터 재림까지이다. 오순절은 과거 시대부터 일하고 존재해 오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하늘봉사의 취임식을 기념해 이 땅에서의 특별한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신 날이었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3)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주의 취임식이 끝났다는 하늘의 통고였다. 그분은 당신의 약속에 따라 하늘로부터 성령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셨는데 이것은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분이요, 따라서 그의 백성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시라는 증거였다.”15) (17.1)
 구약 시대에도 성령께서 존재하고 활동하였으나 그 때는 간헐적이고 부분적으로 활동하셨다. 그분은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고(창 1:2), 회심 사역에 참여하셨으며(창 6:3), 사역을 위한 재능과 기술을 주셨고(출 31:3-5), 기적과 기사를 행하셨다(삿 14:6, 19). 특별히 성령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들의 사역에 역사하셨다. 예를 들면, 요셉(창 41:38), 여호수아(민 27:18), 기드온(삿 6:34), 사울(삼상 10:10), 다윗(삼상 16:3), 그리고 엘리사(왕하 2:9, 15; 8:14, 15)에게 임하셨으며, 이사야와 에스겔과 같은 주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일하셨다(사 48:16; 59:21; 겔 2:2; 3:12, 24). 이처럼 “부조들의 시대에도 종종 성령의 역사가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기는 했으나 결코 충만히 임하지는 않았다.”16)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