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2장 그분은 참된 안식을 주십니다
 
 창세기 2장창세기 1장과 마찬가지로 창조를 다루고 있다. 창세기 1장창세기 2장은 서로 보충 관계에 있다. 앞 장에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초월적인 하나님(אֱלֹהִים 엘로힘)이 이 장에서는 세상을 찾아 오셔서 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יהוה אֱלֹהִים 야훼 엘로힘)으로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낙원을 선물하시고 행복한 가정, 평화스러운 인류 사회를 이루게 하신 자상하신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29.1)
 하나님의 안식으로 초청하시는 주님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세기 2:1-3).
(29.2)
 다 이루어지니라. 창세기 2:1-3은 하나님(אֱלֹהִים 엘로힘)과 제칠일(יּוֹם הַשְּׁבִיעִי 욤 핫쉐비이)을 세 번씩 반복한다. 성경은 어떤 일이나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 번씩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1 하나님과 제칠일이 세 번씩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안식도 창조 완성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2 (29.3)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 2:3). 하나님은 동물들과 인간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창 1:22, 28). 창조 기사에서 히브리어 동사 ‘바라크’(בָּרַךְ ‘축복하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 혹은 바다에 충만해 지도록 하는 것, 곧 번식과 성공과 번영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칠일을 복되게 하신 것은 그 날에 생명력이 충만하도록 하신 것이다. 제칠일에 부여하신 생명력, 창조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인간도 성일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에 쉼과 경배를 통해서 창조주의 새롭게 해 주심을 체험할 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과 길거리에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통해 안식일의 정신이 온전한 회복과 해방인 것을 보여주셨다.3 안식일은 안식일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30.1)
 하나님의 안식으로 초청하시는 주님.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하나님의 안식에 사용된 ‘샤바트’(שָׁבַת)는 그치다, 중단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창세기 2:2-3‘샤바트’(שָׁבַת)는 ‘누아흐’(נוּחַ)처럼 피로 때문에 쉬는 인간적 차원이 아니라4 창조주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쉼을 피조물에게 제공한다는 우주적 차원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시간을 내주셨다는 뜻이다. (30.2)
 하나님 한 분 속에 천지만물이 들어있고, 인간의 모든 행복이 들어 있다. 인류의 시조는 탄생 후 맨 처음 맞이한 날을 자비로우신 축복자와 함께 보냈다. 하나님은 창조 때의 온전한 평강과 기쁨, 회복과 재창조를 안식일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에게 주고자 하신다(마 12:8; 막 2:28; 눅 6:5). (31.1)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일하신 후에 안식을 취하셨지만 인간에게는 일하기 전에 안식의 복을 주셨다. 인간은 하나님을 본 받아 일해야 하지만, 우선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 (31.2)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안식.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성도들이 들어가야 할 ‘안식’을 표현하는 그리스어는 ‘삽바티스모스’(σαββατισμός)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쉼을 가리킬 때에만 사용하는 말이다.5 (31.3)
 히브리서 4장 본문은 이 안식을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내 안식,’(히 4:3, 5) ‘그의 안식’이라고 했다(히 4:10).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창조의 축복, 구원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면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기만 하면 되었다. 안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으로 족하였다. (31.4)
 그러나 죄가 이 안식을 세상에서 빼앗아 갔다. 그 안식을 가나안 땅에서 주고자 했던 하나님의 계획도 출애굽 백성들의 악한 마음, 완고한 마음, 범죄와 불순종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히 3:12, 15, 17-18; 4:8). (32.1)
 구속의 계획은 잃어버린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 4:3). 하나님이 창조 때에 다 준비하셨던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32.2)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는 주님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32.3)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의 생기가 흙덩어리를 생령, 산 사람으로 만들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 때문에 낙담한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주님은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행동을 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1-22) (32.4)
 태초에 불어넣으신 생기를 받아들였을 때 흙덩어리가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주께서 숨을 내쉬며 불어넣어 주신 성령을 받음으로 제자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주님께서 주신 성령이 죽은 자와 같았던 제자들을 살렸다.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탄생했던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해야만 우리들은 재창조된 생령이 될 수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32.5)
 동방의 에덴, 낙원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어린 양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세기 2:8-10
(33.1)
 에덴. 에덴(עֵדֶן)의 히브리어 어근인 `dn(עדן)은 비옥하다, 풍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 유적지 ‘텔 페케르예’(Tel Ferkherye)에서 나온 아람어와 아카드어로 된 이중 언어 비문(碑文)은 에덴의 히브리어 어근이 ‘(물을 통해서) 풍요하게 하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조명하고 있다.6 에덴에서 발원하는 사대 강은 전 세계에 물을 공급하였다(창 2:10-14).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을 에덴으로 생각하고 그곳의 유일한 물 근원을 에덴의 강 중의 하나였던 기혼 샘이라고 불렀다(왕상 1:33; 대하 32:30).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덴을 예루살렘의 거룩한 중심지와 연관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7 에스겔의 이상 속에서 만국을 소성시키는 생명강이 성전에서 발원하였다(겔 47:1-12).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왕국이 임할 마지막 때에 성취될 것이다(계 22:1-5).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