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 제 3 장 세 천사의 기별과 재림 운동의 역사적 배경(안금영)
 첫째 천사의 기별 선언과 바벨론의 파멸을 선언한 둘째 천사의 기별 선언(계 14:8)은 상호간 긴밀한 연계성을 띄고 있다. 이 예언의 역사적 성취는 밀러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니엘서의 가장 긴 예언적 기간이 1844년 10월 22일에 끝난다는 선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그 대표적 사례는 엘렌 하몬과 그의 오빠의 재림 신앙의 감격을 고백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감리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을 오류에 토대를 둔 것으로 보았다. (73.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일깨워 주신 귀중한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원하였다. 나는 특별히, 나에게 대한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너무도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나의 구주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이야기할 차례가 되자,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 증거와, 내가 즐거운 기대로 나의 구속주를 신속히 만나고자 고대하게 된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신앙이 나의 심령을 깨우쳐서, 하나님의 영의 성화를 더욱 열렬하게 구하도록 되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 집회를 지도하는 사람이 말을 가로막으며 “자매여, 그대는 감리교를 통하여 성화를 얻었다. 오류의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리교를 통해서”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 곧 나의 마음이 새로운 축복을 받은 것이 감리교를 통해서가 아니고 예수께서 친히 강림하신다는 감동적인 진리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 진리를 통하여, 나는 평안과 기쁨과 완전한 사랑을 발견했다. 이렇게 나의 간증은 끝났는데, 그것이 내가 연구회에서 감리교 형제들에게 한 마지막 간증이었다. (73.2)
 그 다음에 로버트가, 겸손하면서도 참으로 분명하고 감동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울고 크게 감화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의견을 달리한다는 듯이 기침을 하고, 꽤 불쾌한 것처럼 보였다. 그 연구 장소를 떠나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관하여 다시 이야기하고,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우리 구주의 재림에 관하여 하는 말을 그처럼 언짢게 생각하는데 놀랐다. 우리는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마땅이 사랑해야 할 만큼 사랑했을 것 같으면 그분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를 그처럼 듣기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소식을 기쁨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18 (74.1)
 이 일이 일어난 직후 엘렌과 그 부모를 포함하여 하몬 가(家)는 감리교회에서 출교되었다.19 (74.2)
 사실상 이런 기성 교회들과의 불협화음은 1844년 10월 22일, 이른 바 7월 운동이 있기 이전 밀러의 “1843년 메시지”가 전파되기 시작한 183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한 때 끝”인 1843년이 가까워 옴에 따라 밀러 측의 공세적 선교활동이 그 강도를 더해 갔고 이에 따라 많은 교회와 그 목사들의 대항의 강도도 거세어 갔다. 밀러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기성 교회측이 더 이상 자기들 교회에서 신앙고백 활동을 못하게 하자 밀러 운동가들도 대항하였고 많은 교회들은 그 대항에 대하여 재림신도들을 출교시키는 극한 처방을 내렸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밀러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찰스 피치(Charles Fitch)는 1843년 7월에 요한계시록 18:1~514:8을 한 사건으로 보고 이에 기초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Come Out of Her. My People)”(계 18:4)는 유명한 설교를 하며 바벨론의 정체를 적그리스도로 보았다.20 윌리암 밀러의 재림 메시지에 호응하여 온 미 대륙에 있는 개신교회가 바벨론 교회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던 재림 신도들에게 1843~1844년의 그 개신교회의 모습이 이제 달라진 모습을 쓰라림으로 보아야 했다. 그리하여 바벨론을 로마가톨릭교회로 보았던 종전의 견해를 확장하여 천년 전 재림 사상에 적대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까지 포함시켰다.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들, 특히 제임스 화잇은 후에 계시록 14:8은 과거적 사건으로, 계시록 18:1~4은 현재와 미래적 사건으로 보았다.21 (74.3)
 밀러는 이러한 바벨론 신학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1844년 여름 동안 많은 재림신도들은 개신교회로부터 출교당하였고 이 출교의 쓰라림을 당한 밀러 운동의 목사들은 조직된 교회들을 바벨론이라고 명명하고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각 교단에서 나오라고 외쳤다. (75.1)
 앤드루스(John N. Andrews. 1829~1883)와 엘렌 화잇은 바벨론의 무너짐을, 기성교회들이 재림의 메시지를 거절한 결과로 야기된 “도덕적 타락”으로 진단하고22 그 미래적 완성을 지향하는 도정에 있는 상태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지상의 모든 국가에서 첫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을 거절할 때, 그리고 세상과 연합하게 될 때 보편적인 바벨론의 타락이 완성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화잇은 1888년 이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요한계시록 18:8의 최후적 성취는 아직 미래라고 지적하였다.23 그리스도 교회의 최후적 배도에 관한 기사는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와있다. (75.2)
 7. 셋째 천사의 기별 등장
 셋째 천사의 기별(계 14:9~12)은 바벨론에 대한 최후의 판결로 나타난다. 이 기별에는 믿음의 의의 기별과 동시에 하늘이 인생들에게 보낸 가장 두려운 경고가 담겨 있다. 이는 마지막 7재앙(계 15~16장)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경고이다. (75.3)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848~50년대의 성경연구에서처럼 1844년 이후 상당수의 재림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모든 성경 진리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강하게 의식하였다. 이리하여 제칠일침례교회로부터 제칠일 안식일 진리를 배웠다. 더 나아가 그들은 요한계시록 14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 안식일 개혁이야말로 마지막 때에 복음과 율법을 회복케 하는 이른바 시험하는 진리가 된다는 새로운 깨우침을 받아 그 긴급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75.4)
 1844년 10월 22일에 시작된 성소 정결의 사건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중에 리치(Josiah Litch)는 밀러의 성소 개념 해석에 의구심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24 이러한 의문은 대실망 직후 마쉬(Joseph Marsh), 헤일(Apollos Hale), 터너(Joseph Turner) 등이 동조하였고, 에드슨(Hiram Edson), 크로지어(O. R. L. Crosier), 및 (F. B. Hahn)은 다니엘 8:14“성소”의 정체를 하늘 성소로 연구한 내용을 1846년 2월 7일자 데이스타 별지 (Day-Star Extra)지에 게재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크로지어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늘 성소봉사의 첫 단계인 속죄 사역이 시작되었고 1844년 10월 22일에 둘째 단계인 죄의 도말과 성소와 각 신자의 정결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76.1)
 처음에는 크로지어의 사상이 안식일준수 재림신도들 지도자들에게 크게 공명을 얻지 못하였으나 1847년 초에 조셉 베이츠(Joseph Bates)가 그의 성소 사상을 그 어떤 것보다도 탁월한 것으로 인정하고 추천하였으며, 화잇 여사도 이 사상을 “새 빛”으로 확인하고 그 새 빛은 1년 전에 계시 중에 본 것이라고 말하였다.25 이미 안식일 진리의 성서적 정당성을 책자로 발표한 베이츠는 안식일 진리를 요한계시록 배경에서 해석하였다. 특히 셋째 천사의 기별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를 포함시켜 이해하였으며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과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에서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말씀에는 제칠일 안식일 계명이 포함된 것으로 보았다. (76.2)
 대실망으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때 소책자 “작은 무리에게 보내는 말”(A Word to the Little Flock)이 출판되어 유포되었다. 이 소책자 안에는 제임스 화잇. 엘렌 G. 화잇 및 조셉 베이츠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는 작은 무리 신앙 동지들이 자기들의 견해를 묶어 한 책에 담은 최초의 출판물이었다. 이 출판물에서 제임스 화잇의 글이 가장 핵심적인 글이었다. 그 내용은 그동안 성취되지 않은 예언인 셋째 천사의 기별에 관한 풀이로 이 기별에 관한 최초의 유인물이 된 것이다. 이 글에서 제임스 화잇은 “셋째 천사의 기별은 아직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되고 있다 ∙∙∙ 우리가 이 셋째 천사의 기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진술하였다.26 이 때 이후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신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사명과 사업이 되었다. (76.3)
 안식일과 성소의 만남은 섭리적이었다.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계 11:19)를 1844년 10월 22일 이래의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지성소 사역과 연관시켰다. 이런 신학적 이해의 발전에 비추어 안식일 준수 재림신도들은 자기들을 밀러 운동의 진정한 연속선상에 있는 존재로 보았고 더 나아가서는 마지막 때 절박한 메시지를 지닌 예언적 백성으로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 안식일 준수 재림신도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여야 하는 의무를 가진 백성으로 자처하게 되었다. (77.1)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셋째 천사의 기별은 안식일 회복의 중요성을 확고하게 하는 구체적인 논증이 되었다. 그래서 배도의 길로 기울어진 전승들과 법규에 맹종하는 일과는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였다. (77.2)
 아쉽게도 밀러는 이 기별을 깨닫지 못했으며 후에 제시된 이 빛을 거절하였다.27 1846년에는 명료하게 정의된 개념을 지니지 못하였던28 엘렌 화잇 여사는 안식일 진리와 셋째 천사의 기별의 불가분적인 연계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77.3)
 K 목사는 그가 어떤 정신에 속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용의 군대와 연합하고 있다. 그는 치열한 전쟁을 앞에 두고 있다. 안식일에 관한 한 그는 제칠일침례교도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그 기별들에서 안식일을 분리시키면 그것들은 그 힘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안식일을] 셋째 천사의 기별과 연결이 이루어지면, 거기에는 불신자들과 무신론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능력이 따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을 굳게 세워서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자라나고 형통하게 해주는 힘을 그들에게 가져다 준다.29 (77.4)
 이렇게 하여 재림교회 신학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을 수용하는 여부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삼중기별 종말론을 수용하는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 되었다. 이는 또한 요한계시록 14장의 삼중 기별을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안식일 진리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되었다. 요컨대, 안식일 진리와 영원한 복음은 기본적인 의미와 중요성이 상호 연계되어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기별로30 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기별이며31 현대진리(이미 있는 진리 present truth)32이다. (78.1)
 8. 종말 시대의 기별
 1844년 이전과 1844년 이후 재림 운동의 초점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에 모아져 있었다. 재림교회 선구자들이 그리스도 교회 역사상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예언의 빛에 관한 깊은 이해와 탐색과 성령의 지도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남은 백성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