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 제 3 장 세 천사의 기별과 재림 운동의 역사적 배경(안금영)
 1. “옛날을 기억하라”
 초등학교 어린 시절 집에 손님으로 오신 집안 어른들이 저녁상을 물린 다음 마당에 펼쳐진 돗자리 위에서 금강석을 부셔서 뿌려 놓은 듯한 찬란한 밤하늘 별 빛들을 머리에 이고 지나간 조상들의 내력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일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분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조상의 뿌리에 얽힌 그 뜻깊은 지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단 말인가! 성경에는 족보 기사가 자주 나온다. 처음에는 딱딱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사들로 비쳐졌으나 지금은 한 인간을 조상과 연계시켜 진술한 사건들이 지닌 의미를 반추해 보며 새로운 시야를 열기도 한다. 신약성경 처음에 나오는 족보를 읽고 구원받은 사람도 있다는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나안을 향한 여정에서 일어날 여러 삶의 정황들이나 문제들을 예견한 모세와 시인은 지나간 날 신앙의 발자국과 함께 교훈을 남긴 조상들에게 물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63.1)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64.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시 44:1). (64.2)
 엘렌 화잇 여사도 지나간 재림 운동 역사의 갈피 갈피에 남겨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조한 유명한 다음 권면을 하고 있다. (64.3)
 우리가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하며 여행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바라볼 때 나는 경탄과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확신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오신 길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엘렌 G. 화잇, 자서전. 196). (64.4)
 재림신앙의 영적 뿌리를 반추해 보는 것은 오늘과 내일을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64.5)
 2. 윌리암 밀러의 재림 운동
 1830년대와 1840년대의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의 재림운동은 재림교회의 태반(胎盤)이 되었다. 재림교회는 그 역사적, 신학적 뿌리를 밀러의 재림운동에 두고 있다. 밀러는 뉴욕주의 로우 햄프톤(Low Hampton)의 침례교 농부였다. 그는 성경 연구, 특히 1818년 이후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하여 예수께서 “1843년 경”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선포하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15년 이상 집중적으로 성경 예언연구를 통하여 얻은 확신을 1831년부터 공중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된 것이다”.1 무거운 책임을 이행하고자 그는 초기 8년 이상을 대부분 뉴 잉글랜드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들과 촌락들에서 전도하였다. 그는 훌륭한 설교가이었으나 민중들을 선풍적으로 이끄는 운동가는 아니었다. 그의 기별이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보스톤지역의 한 개신교회(Christian Connection Church)의 죠수아 하임스(Joshua Himes)를 만나고서였다. 하임스는 타고난 조직과 운동의 명수였다. 하임스는 대도시 전도를 하는 일을 적극 펼쳤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초청받은 교회들에서나 하던 수동적 전도방식을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도시전도의 문호를 열어 가는 계획을 운영하였다. 1844년 1월에 이르기까지 밀러는 12년 동안 약 4, 500회의 강의를 하였다. 미국 개신교에서 가장 많은 교인수를 지닌 침례교회는 그에게 1833년에 목사 자격증을 수여하였다. 밀러 기별의 핵심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일 천년”기(期) 그리스도께서 가시적, 문자적으로 재림한다는데 있었다. (64.6)
 당시 개신교회의 전통적인 예언해석 방식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들을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에 적용시켰다. 밀러도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회가 300년 이상 사용하여 온 이 역사적 해석방법을 적용하여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들을 해석했다. 그래서 그는 다니엘에 나오는 “마지막 때”(단 8~12장)를 프랑스 혁명과 이어서 일어난 1798년의 교황의 포로사건에 연계시켰다. 그리고 다니엘 8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정체를 이교 및 교황로마로 보았다.2 이 방법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및 16세기 이래 주석가들이 채택한 표준적 해석방법이었고3 재림교회 선구자들도 이어 받은 올바른 해석방법이었다. 개신교 주석가들은 연일원칙을 사용하여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7)와 “1260일”(계 12:6, 14), 및 “42달”(계 11:2)을 같은 예언적 기간인 1260년으로 보았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기간을 복음이 압박 받은 교황권 전횡시대인 A.D. 533/538~1793/1798년으로 해석하였다. (65.1)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의 재림운동은 그동안 성경주석가들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해석에 주목하고 그 해석방법과 내용에서부터 펼쳐진 열매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다니엘 7장의 3년 반 예언기간과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의 예언기간과 “정한 때 끝”(14, 17, 19절)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65.2)
 밀러에게는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의 말씀이 종말에 관한 시간을 깨닫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당대 개신교의 표준적 주석가들이 예언해석의 일반적인 원칙으로 사용한 연일원칙을 채택하여4 다니엘 8:14“2300 주야”를 2300년으로 풀었다. 그리고 이 2300년의 시작 연대를 다니엘 9:24~27에 나오는 70이레(70x7일=490일) 즉 490년의 기산점이 되는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중건령을 반포한 457 B.C.로 잡았다. 그리하여 주전 457년에 2300년을 더하여 1843년을 산출하여 낸 것이다. (66.1)
 밀러는 원래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 지정을 구체적으로 못박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고 “1843년 경”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1843년 1월에 유대인 달력에 기초한 환산에 따라 1843년 3월 21일부터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재림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1843년 봄이 지나자 1844년 봄과 여름을 기다렸다. 1844년 3월 21일이 지나자 재림 신도들 가운데 실망이 역력하였다. 이는 이른바 봄 실망이었다. 이에 밀러는 자기의 잘못된 계산을 고백하였다. (66.2)
 봄 실망 후 밀러 운동가들은 성경을 다시 펼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그들은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마 25:5)라는 메시지와 소돔성 멸망의 지체와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 들어 간 이후 홍수를 기다린 기간이 있었던 점에 집착하면서 소위 “기다리는 시간(tarrying time)” 을 강조하였다. (66.3)
 1844년 8월 중순 뉴 햄프셔(New Hampshire)의 엑세터(Exeter)에서 개최된 장막집회에서 스노우(S. S. Snow)가 구약의 절기들이 표상적인 사실을 바르게 제시하고 봄 절기 표상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으나, 가을 절기인 제7월에 관한 표상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종전의 랍비들 계산 방식이 아니라 보다 성서적인 카라이트 유대인 달력에 따라 대속죄일 표상에 해당하는 날짜인 1844년 10월 22일로 산출하여 그 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재림신자들 사회에서 선풍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밀러도 뒤늦게 이 견해를 수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소위 7월 운동의 열풍이 일어났다. 대속죄일 개념에 토대를 둔 이 7월 운동은 장차 올바른 성소 해석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66.4)
 밀러는 다니엘 8:14“성소”의 정체를 예수 그리스도, 하늘, 유다,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 하늘, 지구, 교회 중에서 그리스도, 하늘은 정결하게 될 필요가 없고, 유다,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는 존재하지 않아, 결국 지구 아니면 교회가 될 것으로 보았다.5 즉, 그는 다니엘 8:14“성소”를 전 세계적인 “영적 성소” 또는 그리스도교 시대의 “교회”로 보았다. 이리하여 밀러는 1843년에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불 심판으로 미운 물건(교황권 )이 지배하는 지구를 정결하게 할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6 (67.1)
 밀러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중요하게 집착한 또 다른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24~25장요한계시록 14:6, 7에 나오는 첫째 천사의 심판에 관한 기별이었다. 밀러와 그 추종자들에게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는 마지막 때의 선교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들은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라는 말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래서 이 열 처녀의 비유를 역사화시켜 자기 시대의 재림 전도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였으며 신랑이 온다는 밤중 소리를 성소 정결로 보았다. (67.2)
 밀러는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관심이 높았던 유대인의 팔레스틴 귀환을 예언의 성취가 될 것이라는 해석을 배격하고 예언 해석 원리를 구약성경에서 도출하였다.7 유대인의 팔레스틴 귀환 해석 기류는 구약성경 예언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문자 그대로의 인종적 이스라엘 사람들로 해석 적용하는 미래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67.3)
 밀러는 예언 해석 원리로 개신교 신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의 원리를 재 강조하였다. 그는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 성서상 종말시간 예언들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종적 유대인은 종말적 예언들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68.1)
 밀러는 제2차 대 각성운동의 부흥사 찰스 피니 등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선호하였던 천년 후 재림론(소위 후천년론)을 배격하고 천년 전 재림론(전천년론)을 옹호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박두하였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1843년 또는 1844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당시 조직을 갖춘 기성 교회들이 좌시하지 않았다. 특별히 1844년 10월 22일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파장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 충격의 여파를 두고 에머슨(W. L. Emmerson)은 “약 10 만 명의 신자들이 교회에서 출교되거나 탈퇴하여 재림교회들로 자체적인 조직을 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적 재림의 임박을 선포하였다”고 전하였다.8 (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