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 우주적 신앙의 기초
 안식일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3 차원적 신앙을 함양시키고 있기 때문에 근대인들에게 적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연구하려고하는 안식일의 주제(主題)들은 창조, 구속(救贖), 최종적인 회복, 과거, 현재, 미래, 사람, 자연, 하나님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폴 틸리히 (Paul Tillich)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만약에 한 “상징이 그것이 대표하고 있는 그 실재에 참여하고 있다”1면 안식일의 우주적인 상징이야말로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실재들에게 작용하는 하나의 우주적인 신앙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2 (14.1)
 안식일의 우주적인 기별과 그 기별의 현대적 관련성에 대한 조사는 안식일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설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논리적인 순서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한 제도의 기원이 그 제도의 적실성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어떠한 주제에 관해서건 성경 기록에 나와있는 최초의 단어들이 후기에 발생되는 모든 결과의 종석(宗石)으로 간주될 수가 있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나마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안식일의 기원이 명백히 창조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실상 첫 번째 창조 이야기(창 1:1~2:3)외 구조를 공부해보면 일곱째 날이 창조의 장엄한 절정과 완성을 뜻한다는 사실이 곧 들어난다. (14.2)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첫 번째로 공간들(하늘, 땅, 바다)을, 두번째로는 그 공간속에 거주할 거주자들(물고기, 날짐승, 육축,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 다음에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일이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다.”(창 2:2~3) (14.3)
 2. 인간 기원의 경축
 우리의 직접적인 관심은 제칠일에 하나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의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창조 이야기의 연대적 배열이 뜻하는 제칠일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일이다. 제칠일에 대한 설명이 창조의 첫번째 이야기(창 1:1~2:3)와 창조의 두번째 이야기(창 2:4~25), 곧 사람과 에덴 동산에 대한 이야기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분기점(分岐點)에 안식일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제칠일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고 있으며 그 역할은 곧 인간 역사의 기념과 본격적인 개시 그것이다. (14.4)
 창조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제칠일이 인간의 기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창조의 사건과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의 축복받는 사건(창 1:26~31)에 곧바로 제칠일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의 창조 이야기와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는 전후의 관계로 기록되어있다는 것 말고도 이 두 기사에 대한 보도 범위가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 이야기의 보도 범위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 점은 이 두 이야기의 상호 의존성과 두 이야기의 중요성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3 아담이 맞은 최초의 하루 전체가 제칠일이었으며 그날을 그는 일하지 않고 자신의 창조주와 함께 완전하고 완벽한 창조 사업의 낙성식을 축하하면서 보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정당히 주장할 수가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의 “형상”과 모범을 쫓아서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다(창 1:26). (14.5)
 사실상 네째 계명에 있는 일하라는 명령과 쉬라는 명령은 창조 주간(週間)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야 하는 인간의 책임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출 20:8~11) 더구나 주님 자신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막 2:27)고 힘주어 강조하셨다. 사람이란 뜻의 히브리어 낱말인 “아담”은 하나의 특정한 개인「아담」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된 이름이다(창 5:2). 다음으로 창조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제칠일은 이 세계 전체, 특히 인간의 창조에 대한 경축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n)은 그날을 “이 세계의 생일”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였으며4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그 날을 이름하여 “이 세상의 희년(禮年)”이라 하였다.5 꼭 같은 이유 때문에 필자는 이 장(章)의 명칭을 인간의 뿌리에 대한 기쁜 소식이라 하였다. (14.6)
 3. 인간 역사의 개시
 인간의 기원과 초기 역사에 대하여 좀 더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는 창조의 두번째 이야기(창 2:4:25)6도 역시 제칠일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활이 안식일 제도와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서 이 이야기는 최초의 제칠일에 대한 축복 선언(창 2:2~3)에 곧이어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창 2:4)라는 말과 더불어 시작되고 있다. 여기 “대략”〔大略:R. S.V.에서는 世系(generations)〕이란 단어는 톨레도트(toledoth)라는 히브리어의 역어(譯語)로서 좀더 정확한 어의는 “역사”, “이야기”, “기술(記述), 또는 자초지종”이다. N. I. 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는 “기술(記述)”이란 역의(譯意)를 채택하여 위의 성경절을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그 자초지종이 이러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14.7)
 어찌하여 인간 생활의 성립에 대한 이야기는 제칠일의 제도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여기에서 구원의 역사를 제칠일의 역사에 곧 바로 연결시키려는 창세기 기자의 의도를 인정하고 있다.7 창세기에서는 열번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가 톨레도트(toledoth) 즉 “역사, 세계 (世系)”에 의하여 함께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연쇄(連鎖)의 첫 번째 고리가 제칠일에 관련되고 있다.8 어째서 그런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이유는 그 날이 인간 역사의 개시를 경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의 가능한 이유는 제칠일로 절정을 맞는 창조 주간에 역사의 연대(年代)적 전개과정을 측정할 수 있는 시간 단위가 제공됐다는 사실에 나타나 있다. 역사의 연대적 전개과정은 창조의 순서로써 표현되어 있다. (14.8)
 뒤에 가서 우리는 안식일이 역사를 단지 양(量)적으로만 측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그리고 그 백성들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救贖)적인 활동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역사를 질적(質的)으로도 측정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간략한 분석을 통하여 제칠일 안식일이 창조의 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는 성경의 증언을 보았다. 창조의 사건에서 제칠일이 갖는 기능은 창조의 완성과 인간 역사의 개시, 또는 인간의 뿌리에 대한 기쁜 소식을 알려 주며 경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4.9)
 참고문헌
 1.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957, I, p. 265. In his Dynamics of Faith, 1958, p. 42, Tillich uses the example of the flag to illustrate how a symbol participates in that reality “to which it points.” He writes, “the flag participates in the power and dignity of the nation for which it stands. An attack on the flag is felt as an attack on the majesty of the group in which it is acknowledged. Such an attack is considered blasphemy.” Similarly in the Scripture, the profanation of the Sabbath, the symbol of divine ownership and authority, is viewed as apostasy (Ezek. 20:13, 21). See discussion below, pp. 12-115.

 2. Tillich explains that a symbol “not only opens up dimensions and elements of reality which otherwise would remain unapproachable but also unlocks dimensions and elements of our soul which correspond to the dimensions and elements of reality∙∙∙.There are within us dimensions of which we cannot become aware except through symbols, as melodies and rhythms in music”(Dynamics of Faith, 1958, pp. 42, 43).

 3. This comiection is recognized by Solomon Goldman, who writes, “The whole purpose of the account of Creation was to emphasize the uniqueness and excellence of man and to impress him with the sanctity and blessedness of the seventh day or the Sabbath” (In the Beginning, 1949, p. 744).

 4. Philo, De opificio Mundi 89; De Vita Mosis 1, 207; De Specialibus Legibus 2, 59.

 5. R. W. Emerson, “The Divinity School Address,” Three Prophets of Religious Liberalism, C. C. Wright, ed., 1961, p. 111.

 6. Modern commentators generally divide Genesis 2:4 in two parts, attaching the first part of the verse (v. 4a) to the first creation story (so-called source P) and its second part (v. 4b) to the second creation story (source J). The reasons for such a division are convincingly refuted by U. Cassuto in La Questione della Genesi, 1934, pp. 268-272 and in A Commentary on the Book of Genesis, 1961, pp. 96-99.

 7. For example, Nicola Negretti points out that “by means of Genesis 2:4a the author of the priestly story has linked together the creation week with the scheme of the toledot [generations] (cf. Gen. 5:1; 6:9; 10:1; 11:10-27; 25:12-19; 36:1-9; 37:2) and consequently he inserted it [i.e. the week]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salvation” (Il Settimo Giorno, Analecta Biblica 55, 1973, p. 93; cf. p. 165, n. 31). See also H. C. Leupold, Exposition of Genesis, 1950, p. 110; J. Scharbert, “Der Sinn der Toledot Formel in der Priesterschrift,” in Wort-Gebot-Glaube, Alt testamentliche Abhandlungen zur Theologie des Alten und Neuen Testaments 59 (1970): 45-56.

 8. Genesis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7:2. (14.1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