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1장 참 예언과 거짓 예언 판별법
 참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응보적 공의(retributive justice)를 피하는 데 진실된 회개가 그 선행 조건임을 강조했다는 것에 그 본질적 차이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영적으로 남은 자만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평화와 축복을 누렸다(암 5:6, 15; 미 2:12, 13; 4:6-8; 렘 23:3-6; 31:7, 31-34; 겔 36:24-28). 반면 거짓 예언은 하나님이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만을 강조하고, 도덕적인 전제 조건을 완전히 생략하였다. 마치 하나님의 약속들을 무조건적인 보장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지 않았다. 고로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역사적 시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이스라엘과 예언의 메시야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못하면서 이스라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 받았다는 마음에 드는 독단적인 교리를 전했다. (27.4)
 오늘날도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께서 현재의 이스라엘 국가를 택해서 회복시킨다고, 그와 똑같이 무조건 단정하는 양태에서 거짓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28.1)
 3. 신약성경에 나오는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판별법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구약성경의 참된 해석자로 생각한다. 그들은—예수를 이스라엘의 예언에 나오는 메시야라고 믿는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막 6:4; 눅 13:33)로 간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적 권위로서 예언적 선견과 통찰력을 드러내 보였다(막 13장; 마 5-7장).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그의 권위의 원천이 율법이나 조상들, 전통이나 랍비들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확실성에 있다 ∙∙∙ . “예수가 하나님을 부를 때 아바(abba)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은 예수가 매우 인격적이고 친밀한 방법으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시킨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주 친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셨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8) (28.2)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과 맺은 언약의 분명한 뜻과 목적을 가장 완전하고 명확하게 이스라엘에게 보이셨다(히 1:1, 2을 보라). 오직 예수만이 하늘 “아버지의 품 속”으로부터 세상에 오셨다고 말할 수 있다(요 1:18).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에 예시된 자신의 사명을 아셨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그는 자신이 옴으로써 종교적 실체(antitype)의 시기가 시작되고, 이스라엘의 예언자적, 왕적, 제사장적 직무가 성취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당대의 유대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1. 42. 46). (29.1)
 예수는 모세오경(Torah)을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서로 보지 않고 구속의 책, 약속의 책으로 보았다. 그리스도는 또한 시편들, 특히 이스라엘의 왕들과 대표 지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들을 자신과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심에 적용하였다. (29.2)
 부활하신후, 그는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의 중심사상과 핵심을 설명하셨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29.3)
 성경학자들은 오늘날 구약성경 전체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메시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예언적, 역사적 사명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성경의 예언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 메시야와 연관시킬 때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후 1:20을 보라). (29.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5. 16)고 충고하셨다. 그리스도는 그 ‘열매’가 귀신을 쫓아낸다거나, 기적을 행하는 것 혹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을 뜻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1-23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모세가 신명기 13:1-5에 제시한 거짓 선지자들의 가면을 벗기는 시금석(test)사용을 역설하신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자 통치자와는 전혀 다른 거짓 신을 전한다. 그 신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도덕적 순종과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다(신 30:1-10). 거짓 선지자는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신 13:5) 한다. (30.1)
 그리스도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경고했다. 구약성경의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도덕적으로 돌아오는 조건적 측면을 무시한 채 하나님의 평화의 약속만을 강조한 것과 같이 기독교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언약의 약속을 그리스도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언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조건이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2:20)고 강조했다. (30.2)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성경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요구하는 선행 조건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없이 이스라엘과 교회에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예언적인 표현법으로 종말에 일어날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30.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렘 6:14; 8:11; 겔 13:10). (31.1)
 4.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31.2)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부터 신정국가가 되는 복된 특권을 제거하실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소작인의 비유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그들은 땅 주인의 아들을 보고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마 21:38)고 결정하였다. 고로 유대의 건축자들은 이스라엘의 머릿돌,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했다(42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은 유대의 미래상의 어떤 세대가 아니라, 그 당시에 예수를 예언상의 메시야로서 받아들인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중 12명을 새로운 이스라엘, 메시야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도로서 부르셨는데 그는 그들을 “나의 교회”(마 16:16-18)라고 불렀다. 사도 교회는 고대 이스라엘의 그리스도를 믿는 남은 자들을 대표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고 가르쳤다. (31.3)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약속은 반드시 정치적 집단으로 혹은 인종적 단위로서의 유대인들에게서만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메시야 공동체에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무엇보다도 예수가 이스라엘의 주이시고 세계의 구세주시라는 것을 믿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졌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이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 안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받았다(롬 10:9~10을 보라). “돌감람나무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이 된 것처럼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가운데 접붙임”(롬 11:17)되었다. 그리스도를 거절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감람나무에서 꺾임을 당했다. 그러나 성경은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23절)고 말한다. 성경의 언약과 예언의 핵심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예수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마 12:30)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주로서 예수를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들은 이미 팔레스틴에 살 때조차도 흩어짐을 당했다. (31.4)
 성경은 이스라엘이 메시야에게 모일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메시야)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하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유대인들을 초청하실 때에 이스라엘을 위한 이 놀라운 회복의 약속은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32.1)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메시야적인 성취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교회는 예언상에 나타난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구약성경 예언들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초점이 된다.9) (32.2)
 로마가 고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시기는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 도시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로마 군대로부터 이스라엘이 곧 구출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떠들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러한 자칭 선지자들이 마지막 치명적인 순간까지 왜 유대인들의 완고한 저항만을 더 유발시켰는가를 적고 있다. (33.1)
이 거짓 선지자들이야말로 이 백성들이 몰살당한 원인이 되었다. 이 거짓 선지자는 바로 그날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이 성전에 모이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고 그들이 구원받을 기적적인 표징을 받아야만 한다고 그 도시에서 선언하였다. 그리고 전제 군주들에게 매수당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다려야만 한다고 백성들에게 강요한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10)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