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1 부 안식일과 쉼 제 3 장  안식일에 재연되고 재현되는 하나님의 창조
 따라서 출애굽기 23장 12절에서 말하는 숨돌림의 경험은 바로 창세기 2장 7절 경험의 재연을 말하는 것이다. 즉 숨돌림의 원형적, 원초적 형태는 창세기 2장 7절의 호흡에 다름이 아니다. 흙 사람이 하나님의 호흡을 나누어 받아 숨쉬는 사람으로 창조된 사건이 안식일마다 죄와 삶에 지친 사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의 원형이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자신의 새 호흡과 생명으로 우리의 낡은 호흡과 낡은 생명을 갈아주시는 하나님은 바로 창세기 창조주간에 자신의 호흡을 사람에게 내주고 사람으로 숨쉬는 생령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들의 안식일 경험이 참으로 복음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진흙 같은 우리의 생존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스스로가 진흙 투성이가 됨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진흙의 사람을 숨쉬는 생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스스로가 자신의 호흡을 내놓은 창조의 사건이 생생하게 재연되어야 한다. (42.3)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창세기 2장 7절의 사건을 좀더 사실적으로 조명시킬 수 있는 성서적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열왕기하 4장 17절 이하의, 특히 4장 34절의 사건이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동작에 관한 묘사이다. 출애굽기 23장 12절의 더 분명한 이해를 창세기 2장 7절에서 얻었다면 창세기 2장 7절 사건의 더 분명한 이해는 열왕기하 4장 17절 이하에서 얻은 것이다. (43.1)
 왕하 4:17-20을 읽어보자.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로 이르렀더니 아비에게로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 데려가라 하매 곧 그 어미에게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43.2)
 왕하 4:32-35: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 .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왕상 17장 21-22절에서도 유사한 비유를 찾아낼 수 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43.3)
 나는 죽은 아이의 숨을 되돌려 놓은 엘리사의 동작을 통하여 흙 사람을 숨쉬는 생령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 동작을 조명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흙 사람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을 엎드려” 혼신을 다해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으셨던 것이다. 흙 사람의 차가운 육체가 “차차 따뜻해지고,” 흙 사람이 재채기하면서 호흡을 되찾기까지 하나님은 거듭하여 자신의 호흡을 흙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 재창조가 이와 같은 것이다. (44.1)
 사람 하나를 창조하기 위하여 만유의 대주재께서 진흙으로 내려온 사건, 두 손과 두 눈과 입, 그리고 온몸으로 진흙에 관여하고 온몸으로 진흙 투성이가 된 사건, 영이신 하나님이 진흙 투성이의 하나님이 되신 사건이 인간의 창조 사건이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의 깊은”(창 1:2) 늪과 같은 우리의 질료(質料) 위에 올라 입과 눈과 손과 온 몸으로 엎드리고 덮어 안음이 마치 암탉이 그 알을 품어 안음 같았던(마 23:37) 사건, 그리고 마침내 흙 사람의 호흡을 위해 창조주가 자신의 호흡을 내놓은 사건이 바로 안식일에 재연되어야 하는 창조의 사건이다. (44.2)
 우리들 사이에 재연되는 하나님의 입맞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 입을 내 입에, 그 눈을 내 눈에, 그 손을 내 손에 대는 날이다. 나의 죽은 듯 차디찬 입과 눈과 손이 하나님의 포옹으로 따뜻함을 되찾는 날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 호흡의 입맞춤을 통하여 마치 어미가 기진하여 쓰러진 자식의 입에 생명의 밥알을 씹어 혓바닥으로 밀어 넣듯 내 입에 생명의 호흡과 타액을 밀어 넣는 날이다. 그리하여 흙 사람같이 죽은 내가 하나님이 불어넣고 하나님이 밀어 넣은 그 호흡, 그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날이 안식일이다. (44.3)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생명의 포옹과 생명의 입맞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날이다. 내 입을 그 입에, 내 눈을 그 눈에, 내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살이 차차 따뜻해지기까지 사랑과 온정으로 포옹하는 날이다. 나의 생명과 호흡을 그 입에 불어넣는 날이다. 생명의 밥알을 씹어 그 입에 밀어 넣는 날이다. 생명과 사랑의 타액을 그 입에 흘려 넣는 날이다. (45.1)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후에야 안식일과 가정이라는 한 쌍의 에덴의 제도를 낙원을 잃은 사람에게 남겨두어 사망의 골짜기를 헤쳐 가는 인생들로 하여금 삶의 호흡을 갈아 쉬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마음이 닿을 것이다. 안식일은 생명의 제도이다. 가정도 생명의 제도이다. 생명의 호흡을 제공하는 제도, 그 호흡이 하나님의 호흡에 닿아 있는 제도이다. 안식일의 호흡을 통해 가정의 숨결이 더욱 건강해지고, 가정의 건강한 호흡을 통해 안식일의 쉼이 더욱 구체화된다. (45.2)
 안식일은 흙 같은 내 몸과 영혼이 하나님의 따뜻한 포옹에서 온기를 회복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곤비한 내 영혼이 나를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에 참여하고 내가 호흡의 근원인 하나님의 호흡을 되돌려 받는 날이다. 동시에 안식일은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인 나의 생명의 분신들에게 창조주의 사랑과 관심으로 내 생명의 호흡을 함께 나누는 날이며, 그들을 생명의 포옹으로 끌어안는 날이다. 안식일은 내가 하나님의 호흡에 참여하여 새로운 생령으로 살아나는 날이며, 내가 하나님의 품에서 알 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성숙으로 솟아오르는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진실로 나의 신체와 영혼과 신앙의 분신들이 나의 사랑의 호흡과 포옹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성숙해지는 날이다.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