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밖에도 다음의 사항들을 인정함으로써 2,300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233.4)
 1. 2,300일은 다니엘 8장의 상징의 일부로 소개 되었다. 따라서, 2,300일도 짐승, 작은 뿔, 1,260일 등과 마찬가지로 상징 들이다. (233.5)
 2. 다니엘의 동시대 선지자였고 같이 바벨론 땅에서 유랑민의 생활을 하고 있던 에스겔 이 하루가 일 년을 대신하는 상징적인 예언에 대해 알고 있었다(겔 4:6). (233.6)
 이 밖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하여 출애굽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40 일의 불순종을 40 년의 처벌로 확대한 사실도 이와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다(민 14:34). 이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아주 초기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 속에 “하루로 1 년을 대신하는” 개념을 키우고 계셨다. (233.7)
 기원후 9세기에 유대인 학자 나하웬디(Nahawendi)가 “2,300년”에 관해 기술한 바 있다.11 교황들과 국왕들의 질병을 치료한 탁월한 의사요 파리의 신학자들과 논쟁했던 빌라노바의 아놀드(Arnold of Villanova)가 1292년에, 다니엘의 2,300일은 2,300년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날(日)을 연(年)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글에서 낯선 현상이 아니며∙∙∙ 에스겔서에서도 성경이 증언한 것이다. 즉 하루로 일년을 대신하는 것으로 나는 계산하는 바이다.”12 (233.8)
 다니엘 8장 17절은 2,300일 이상이 “정한 때의 끝”에 관한 것이라 하였다. (233.9)
 성경을 통하여 2,300일이 2,300년이란 사실을 확인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기간이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나는지를 알아야 하겠다. 그 단서는 역시 70주 예언에 있다. “예루살렘 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 까지”라 한 가브리엘의 선언은 2,300일의 시작은 70 주의 시작과 같음을 나타내고 있다. (233.10)
 앞에서 보았듯이, 70 주의 예언 기간은 기원전 457년에 시작한다. 따라서, 2,300일 예언 기간도 기원전 457년에 시작하는 것이다. (233.11)
 그러면, 2,300년의 끝은 언제인가? (233.12)
 490년은 기원후 34년에 끝났다. 2,300년에서 490년을 잘라내면 1,810년이 남는다. 그렇다면, 기원후 34년에 1,810년을 가산하면 2,300년의 끝에 이르는데 그 해가 1844년이다. (233.13)
 2,300년/일은 기원전 457년에서 기원후 1844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233.14)
 184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1844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역사책에서는 이와 관련되는 어떤 대단한 일을 읽은 기억이 없을 것이다. (233.15)
 가브리엘 천사는 말하기를 1844년에 “성소”가 그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라 하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천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성소는 “주님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33.16)
 즉, 예수님이 우리의 신실한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 하늘에 있는 것이다(히 8:1, 2). (234.1)
 2,300일의 종료를 장식하는 사건의 전개는 하늘에서 1844년에 시작했다. 여러분이 역사 책에서 이 일에 대해 읽지 못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 p. 214, 239에서도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7 주와 70 주의 끝을 장식하는 지상 사건에 대해 특별히 명시 않은 사실을 주목했었다. (234.2)
 177~184페이지에서 우리는 “그 때에 성소가 그 원 상태로 회복되리라”는 말이 그 문맥과 히브리 원어를 깊이 고려할 때 최소한 4개의 관련 사건과 진행을 내포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234.3)
   1.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인 “타밋”이 긴 기간 “짓밟히다가” 놓임을 얻음.

   2. 성소와 또 성소에서 예배하는 백성들이 최종적으로 죄에서 정결케 됨.

   3. 이 정결 행위와 연관된 심판 행위.

   4. 정결과 심판에 이어 대 희년의 나팔이 터지고, 초자연적인 돌에 의해 세상 나라들이 멸망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물려받음. (234.4)
 그리스도의 타밋이 놓여남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봉사는 중세기를 통해 심히 퇴색되었다. 성직자들이 복음 설교를 등한히 하고, 사람들에게 고백과 고행을 강요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파문과 극형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168~175 페이지를 참고하라). (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