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유대인들은 왕국의 자격 조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왕국의 약속만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니엘 7장에서 오직 “성도들”에게만 왕국을 약속하신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시편 15편 1~4절을 잊고 있었다: (228.6)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 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니.
(228.7)
 예수님 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왕국 예언의 여러 곳에는 조건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빌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9, 10) 하셨다. (228.8)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새 언약에 따라 변화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변화된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는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228.9)
 로마의 압제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이들 유대인들은 원수들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원했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제안하시는, 자신들을 정복할 수 있는 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229.1)
 심지어 오늘날도,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억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한다. 옛날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그리스도를 저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으로 삼으려 한다. (229.2)
 포도원이 재할당됨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개선하신 바로 다음날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 가셔서 유대인들을 경고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생활을 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도움을 배척했기 때문에 “왕국”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229.3)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자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장에 포도원을 만들고 그것을 소작 인들에게 세를 준 한 상인에 대해 말씀하셨다. 말씀하시기를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 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 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느니라” 하셨다. (229.4)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229.5)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라고 예수님은 청중에게 질문하셨다. (229.6)
 청중들은 이 이야기에 완전 압도되어 의분의 솟구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열기를 띈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229.7)
 곧 이어 예수님께서 이야기의 핵심을 말씀하셨다. 이야기에 나오는 “아들”은 바로 제사장들이 죽이려고 하는 예수님 자신임을 설명하고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하셨다(마 21:33~43). 이제 곧 알게 되겠거니와, 이 새 나라는 모든 민족에서 불러낸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229.8)
 70 이레의 끝
 70 이레의 끝에 나타날 특별한 사건에 대해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 9장 24~27절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가브리엘은 유대 민족을 위해 특별히 설정된 490년 기간의 끝이 어떤 특별한 행위나 일에 의해 장식되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29.9)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사건이 있고서 몇 년이 되지 않아 성경 주석자들은 기원후 34년으로 연대를 정하고 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 순교자를 발생케 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반역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유대 민족의 최고 통치 기관이었던 산헤드린(Sanhedrin)은 공식적인 의결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다. (229.10)
 그리스도를 죽일 때는 로마인들을 충동하여 그들 대신해 그를 죽이게 하였다. 스데반을 죽일 때는 제 손으로 돌을 집어 던졌다. 유대 전통의 처형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상징이 뜻하는 것은 너무나 끔찍스러웠다. (229.11)
 그리스도가 기원후 27년에 침례(기름 부음을 받음)를 받은 이후로 줄곧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예수님의 공중 봉사를 통해 승리하게 하려고 애쓰셨다. 예수님의 공중 봉사는 인내와 용서의 독특한 제시였다. 그런데, 이제 포도원은 이스라엘로부터 몰수되어 다른 “민족”에게 맡겨졌다. (229.12)
 그러나, 하나님께서 임의로 성전을 훼파케 하신 것이 아닌 것처럼, 지금도 왕국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시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유대 민족의 특권을 때앗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유대 지도자들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대 박해”를 시작했고,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행 8:1, 2). (230.1)
 이 박해에 시달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에 흩어져 “두루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행 8:4).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행 8:5),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이사랴(가이사리아)에 있는 로마의 군대 장교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다(행 10장).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교회를 핍박하던 유대 지도층의 한 사람인 다소의 사울(후에 사도 바울로 불려지는)이 자신의 희생자가 보여 준 용서의 정신을 보고 하나님의 복음을 확신케 된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가라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행 9:15). 하늘의 음성은 그에게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였다(행 22:2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