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 훼파됨
 우리는 19~22페이지에서,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세상에 나타나게 함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였다. 다니엘 9장 24절에서 가브리엘의 입을 빌어 “네 백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잘라냈다)다고 하신 것은 모든 인간의 활동을 미리 내다보시는 하나님이 70 이레 후에 다른 백성을 신뢰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계셨음을 암시하고 있다. (225.1)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시기 전인 화요일 오후에 성전 뜰에 모인 수많은 군중에게 말씀하실 때 백성을 교체해야 할 시각이 임박했음을 암시하셨다. 그분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깊은 연민으로, 목이 매인 음성으로 선언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 (226.1)
 황폐라! (226.2)
 “황폐(훼파)하다”는 말은 다니엘 9장 24~27절의 핵심적인 용어의 하나이다. (226.3)
 예수님은 40년 이후가 될 기원후 70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의 아들인 로마 장군 티투스(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맹렬히 공격당할 사실을 알고 계셨다. 티투스의 병사들*이—즉 “한 왕의 백성이 와서”(단 9:26)—성전을 불태울 것이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의 병사들이 즉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이—성읍 전체를 폐허로 만들고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로마 군대가 예루 살렘을 멸망시키기 근 40 년 전, 그 자신이 예루살렘에 당당히 입성하시던 일요일 오후에 예수님은 유대 백성들에게 그들의 성전이 이미 훼파되었다고 선언하셨다!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포위 때 저항에 참전했던 사람인데, 티투스가 막료 장군들과 회의를 거친 후 로마 제국의 귀중한 보배나 다름없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면케해야 한다고 결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의 역사가들도 요세푸스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같은 티투스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흥분 속에서 한 병사가 불이 붙은 나무 동강이를 동료 병사에게서 낚 아챈 후∙∙∙낮은 황금문을 통해 성전 안으로 던졌다는 것이다.
“불길이 치솟자, 성전을 지키기 위해 모여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기 보존의 모든 의지가 끝장난 것이다. 그 동안 지키고 싸워 온 모든 고생의 목적이 이제 불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Jewish War, 6. 236~253; H. St. John. Thackeray in 「Loeb classical., Library」.
(226.4)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깊은 영적 의미에 있어서 볼 때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곳이기도 하며 또 단지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226.5)
 예수님께서 성전이 훼파되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의 말씀이 성전을 훼파케 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성전에 그가 육체로 임재하는 말할 수 없는 특권을 부여하기 위해 하늘을 떠나 세상에 오셨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분을 비난하는 대신에 그를 영접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매다는 대신에 그에게 왕관을 바쳤다고 상상해 보라! (226.6)
 대제사장이 유대 백성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다니엘처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기도했다고 상상해 보라. (226.7)
 아! 애닯다. 요한복음 1장 11절에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를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영어 성경 R.S.V.는 “그가 자기 집에 왔으나 제 식구들이 그를 영접지 않았다고” 했다. New English Bible은 “그가 제 나라로 돌아왔으나 제 백성이 그를 영접지 않았다”고 하였다. (226.8)
 성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성전에 왔으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었으므로(눅 9:22) 훼파되었다. (226.9)
 왕과 그의 왕국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심중에 무슨 뜻을 간직하고 계셨는지 확신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성전의 훼파를 선언하시기 이틀 전에 예루살렘에 개선하실 때 유대인들은 우뢰 같은 환호로 그분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눅 19:38)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226.10)
 실로 그렇다. 그러나, 며칠 후인 금요일 아침에는 그 동일한 군중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고 아우성을 쳤다. (226.11)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셨는데 이 때가 로마의 수중에 예루살렘이 떨어지기 약 40 년 전이었다.
(227.1)
 설명은 이렇다. 유대인들은 진실로 예수님이 그들의 왕으로 되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그들을 이끌고 나가 로마인들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세계의 수도로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빌라도의 심판정에서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하는 그런 왕을 원치 않았다. (228.1)
 예수님은 공사(公私)석에서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마 3:2; 6:33; 막 10:14). 로마인들의 압제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 다윗과 솔로몬 때 같이 영광스러운 때가 오리라는 것을 생각만 해도 그들의 피는 끊어 올랐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예언한 이른바 “왕국 예언들”*이라는 것을 회상하였다. 그들은 이 예언 구절들을 물질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국제적인 명성과 경제적인 번영을 보장해 줄 지도자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세주를 원했으며 죄로부터의 해방을 가져 올 지도자는 필요치 않았다.

* 일부 “왕국 예언들”사무엘하 7장 8~16절, 이사야 2장 2~4절, 예레미야 23장 5~8절, 스가랴 12장, 14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7장 8~16절의 조건적인 본질은 열왕기상 2장 3, 4절, 시편 132편 10~12절에 나타나 있다. 약속된 “다윗의 자손”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28.2)
 그러나, 한 부자 청년 지도자가 영생의 길을 여쭈었을 때, 그분은 나의 이스라엘 왕국 재건 사업을 도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 대신에 계명을 지키고 모든 소유를 남들에게 나누어 준 후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 19:16~22). (228.3)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먼저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다(요 3:1~5). (228.4)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를 따르”거나 “거듭나기”를 원치 않는다. 젊은 부자 지도자는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떴다. 니고데모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에야 비로소 완전히 마음을 낮추었다. (2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