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43장 그분은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獅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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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1)
 창세기 43장에서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유다가 그의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의 요셉에게 왔다. 요셉은 형들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음식을 대접하였다. (247.2)
 유다, 백성 위해 자기를 희생하시는 크신 왕 예수 그리스도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창세기 43:8-9).
(247.3)
 자기희생적 리더십. 야곱이 베냐민을 형들과 동행시키는 일을 주저할 때 유다가 자기 자신을 담보로 야곱을 설득했다. 앞 장에서 르우벤은 자기 두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했지만 거절당한 것과 대조가 된다. 유다는 창세기 38장의 사건 후에 등장하지 않다가 본 장에 다시 등장한다. 꾀를 써서 자기의 의무를 회피했던 유다가 자기 자신까지 내걸면서 온 가족을 위해서 일할 만큼 큰 변화가 그 동안에 있었다. 유다의 자기희생적 리더십은 하나님께 가납되어 그는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는다. (247.4)
 자원하신 십자가의 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놓으시고, 아들께서는 자원하여 십자가 길을 걸으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유다는 야곱에게서 요셉보다도 더 큰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유다의 가문을 통해 이 땅에 오셨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247.5)
 요셉, 죄인에게 잔치를 베푸시는 주님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창세기 43:16-17).
(248.1)
 요셉의 형들이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데리고 요셉을 찾아 왔을 때 그들은 전번에 돈과 관련된 일도 있고 하여 노예로 사로잡힐 줄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요셉에게 대접을 받았다(창 43:18, 32-34). 우리 구주 예수께서 죄인을 대접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표상되어 있다. (248.2)
 요셉은 아우 베냐민이 형들과 함께 온 것을 보고 청지기에게 그들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고, 짐승을 잡아 정오 식사를 준비하도록 했다(창 43:16). 형들은 뜻하지 않은 호의에 두려워 떨며 전번 돈 외에 양식을 살 다른 돈도 가져왔다고 청지기에게 말했다(창 43:18, 22). 그러나 청지기는 그들을 안심시켰고 그들은 요셉의 집에 들어가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며 식사를 했다(창 43:23, 34). (248.3)
 위의 간략한 이야기 줄거리 속에 있는 표상학적 상응점들을 통해 복음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잔치이다. 예수님은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마련한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복음 잔치에 관해 교훈하셨다(마 22:1-14; 눅 14:15-24).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풍성한 오찬을 준비했지만, 청한 사람들이 거절했을 때 주님은 네거리 길(마 22:9)과 시내 거리와 골목(눅 14:21)에서 가난한 자와 몸이 불편한 자와 맹인과 저는 자들을 강권해서 잔치 자리를 채우도록 했다. 마태복음은 청한 사람들을 세부적으로 나누지 않고 악한 자나 선한 자로 말했다. 요셉의 형들처럼 죄를 범한 사람들까지도 복음 초청의 대상인 것이다. (248.4)
 요셉의 형들이 나머지 돈을 가져왔지만 그것으로 자기 의를 세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롬 4:23).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왕은 예복을 제공하였다. 이 예복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한다. 의를 얻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오직 은혜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249.1)
 복받쳐 오르는 사랑의 마음, 구속사를 움직이는 힘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창세기 43:30-31).
(249.2)
 이스라엘은 은혜와 사랑을 통해 보존되었다. 애굽으로 베냐민을 데려가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는 ‘그 아버지를 설득할 때 유다는 이 이야기 전체에 조심스럽게 짜 넣은 중심주제인 생명과 사망에 대해 또 다시 언급하였다.’18절 (249.3)
 야곱이 청을 허락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רַחֲמִים 라하밈)를 베푸사’라고 말한 기원은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רַחֲמָיו 라하마이브, 그의 사랑이)이 북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오는 것을 통해 응답을 받았다(창 43:14, 30). 구속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이야기이다. (249.4)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 앞에 있는 애굽 총리가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슴이 메어져 우는 그들의 형제였음을 알았더라면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을 것이며, 결코 그래 본 적이 없는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창 42:24; 43:30).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250.1)
 참고 문헌
 1. Sailhamer, 앞의 책, 250쪽. (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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