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행복하려거든(시편강해) 제 5장 오, 내 사랑 예루살렘 36. 깊은 데서 부르짖고 높은 데서 찬양하고
 — 시편 148~150편(379.1)
 깊은 데서 부르짖고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130편 1, 2절). (379.2)
 어차피 울면서 태어나서 부르짖으며 살다가 울면서 가는 인생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시편 3편 4절)면서 시작된 시편의 부르짖음은,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22편 2절)하면서 계속된다. 이처럼 애절한 부르짖음은,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61편 2절)고, “나의 괴로운 날에 ∙∙∙ 내가 부르짖”(102편 2절)으며,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118편 5절)고,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120편 1절)기를 그치지 않는다. (379.3)
 시편의 초장(初章)에서 시작된 가슴이 터질 듯한 부르짖음은,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142편 1절)고,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142편 5절)는 종장(終章)에 이르기까지 간단(間斷)없이 계속되고 있어, 참으로 시편이 인생의 해저(海底) 이만리, “깊은 데서(out of the depths) 주께 부르짖”(130편 1절)는 인생 심해(深海)의 사연임을 실감시키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부르짖다”는 말이 시편에 가장 많이 쓰였다는 사실은, 시편이 정녕, “소리내어 ∙∙∙ 부르짖”(142편 1절)고 “부르짖어 말하”(5절)는 인생의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울려 퍼지는 절절(切切)한 삶의 메아리임을 아울러 말해 주고 있다. (380.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69편 1~3절). (380.2)
 높은 데서 찬양하고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148편 1, 2절). (381.1)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는 산꼭대기에 이를 수 없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야 높은 산정에 이를 수 있듯이, “깊은 데서”(out of the depths) 부르짖어 본 사람만이 “높은 데서”(in the heights) 찬양할 것이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듯이 고난의 깊이 만큼 찬양도 높아질 것이다.
(381.2)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울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0편 1~3절). (381.3)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인생의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서 애타게 부르짖어 본 사람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거기서 힘차게 끌어올리셔서 높은 곳에 굳게 세우시는 하나님을 마침내 경험할 것이다. 고난의 불로 연단되고 벅찬 감사로 감격해진 마음은 새 마음이 되어,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터뜨릴 것이다. 그것이 곧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149편 1절)는 경험의 새 노래요, 그것을 경험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부를 수 없는 십사만 사천의 새 노래인 것이며(요한계시록 14장 3절), 마침내 “높은 데서 찬양하”는 하늘의 찬양, 곧 시온산의 드높은 찬양인 것이다. (381.4)
 우주의 교향곡—148편
 146편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다섯 편의 할렐루야 찬양 가운데, 마지막 세 편인 148편, 149편, 150편은 특별히 “찬양의 삼제시”(三題詩 • Triad of Praise)로 불리워, 시편의 모든 찬양을 한데 묶어 관(冠)을 씌우고 있다. 17세기 영국의 맹인 시인 밀턴(John Milton)은 그의 유명한 서사시인「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시편 148편을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의 아침 찬양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주의 교향곡”(Universal Symphony)으로도 불리우는 이 시편은, 먼저 위의 하늘을 눈부신 찬양으로 가득 채운 뒤(1~6절), 다시 아래의 땅을 숨 가쁜 찬양으로 온통 들끓게 하고 있다(7~ 14절). (382.1)
 성도의 최고 영광—149편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148편 13절)을 찬양한 148편에 이어, 149편은 다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긴밀하고도 아기자기한 관계를 강조하며 또다시 찬양을 고조시키고 있다. “자기를 지으신”(2절)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고,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신 통치자 하나님을 기꺼이 찬양한 뒤(2절 하단), 3절에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는 구속자(救者)이신 하나님을 “성도의 회중(會衆)에서”(1절)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5절)한다. (382.2)
 그리고 마지막으로, 겸손으로 특징 지워진 그분의 백성, 곧 성도들을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극구 찬양하고 있다(7~9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9절)다고 선언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383.1)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尊榮)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149편 6~9절). (383.2)
 찬양의 책인 시편의 찬양이 그 강세를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할렐루야 시편의 절정인 150편 직전에 소개된 성도들이 세상의 왕들과 귀인들을 심판하며, 열방과 민족을 판단하는 뜻밖의 영광을 누린다는 찬양은 무엇을 뜻하는가? (383.3)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장 4~6절). (384.1)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장 2, 3절). (3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