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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역사의 초기에 살인자의 형벌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셨다(창 9:6). (257.1)
 죽임을 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살인자를 처형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었으나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사람들이 흥분한 나머지 엉겁결에 부당한 복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살인자가 도망하여 그분의 제단을 붙잡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셨다. 사실을 심리하지 않고는 아무도 제단에서 그를 끌어낼 수 없었으며, 만일 살인자가 사람을 짐짓 살해할 의도가 있었음이 밝혀지면 그때는 그를 제단으로부터 끌어내어 죽음에 처하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의 생명은 보호되었다(출 21:13~14). (257.2)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된 땅에 들어갔을 때, 여섯 개의 성이 도피성(逃避城)으로 구별되었다. 이 성들은 아주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요단강 양편에 각각 세 개씩 있었다(수 20:2, 7~8). 도피성으로 나가는 도로는 항상 잘 정비되어 있어서 피의 복수자를 피하여 도망하는 사람이 방해를 받지 않게 하였다(신 19:3). 또 이 성들은 높은 곳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257.3)
 오살(誤殺)한 사람이 이 성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이르면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한” 다음 들어가서 머물 곳을 얻었다(수 20:3~5). 그런 후 살인이 저질러진 곳 부근 성읍의 재판자들이 그 사건을 심리하게 되었고, 만일 그것이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또는 비고의적으로 행해진 것이었다면 그 살인자는 그가 도망쳐 들어간 도피성 안으로 돌아가도록 허락되었다(민 35:12, 24~25). 구주께서도 마태복음 5:21에서 이 심판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만일 어느 때에라도 그 살인자가 도피성의 지경(地境) 밖을 빠져나가면 피의 복수자는 그의 생명을 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 그 도피성에 유하여야” 했었기 때문이다(민 35:26~28). 이에 대한 명령은 이러했다. “그 살인자가 ∙∙∙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수 20:6). (258.1)
 이스라엘의 도피성들은 가끔 가장 험악한 죄수들을 위한 보호소로 사용되던 헬라인이나 로마인의 은신처들(asyla)과는 아주 다른 곳이었다. 도피성들은 오직 적의(敵意) 없이 사람을 죽인 사람들만을 위한 보호처로 사용되었다. 도피성들은 레위 족속에 속한 성읍들로서, 그 안에 갇힌 이들은 가장 훌륭한 감화 아래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교사들과 교제하였으며, 그들의 생활을 개혁하고 의로운 품성을 형성할 온갖 기회를 갖게 되었다. (258.2)
 도피성에 관한 지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단순한 진리들을 가르친 레위기의 율법들과 의식들의 커다란 체제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윌리엄 틴덜(William Tyndale)은 “레위기의 모든 의식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별빛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부분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대낮의 햇빛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들과 그분께서 돌아가실 방법 자체를 미리 보여주셨음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애덤 클라크(Adam Clarke) 박사는 도피성에 관하여 주어진 세부 사항들로부터 전체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258.3)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피성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짐에 눌린 각 영혼이 피난처로 삼아 도피할 수 있는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미 4:8)이신 그리스도를 상기하도록 계획하셨다. 참소하는 자 사탄은 모든 사람의 가는 길목에 숨어 있어 마치 “우는 사자같이 ∙∙∙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그러나 죄를 버리고 의를 구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보혈로 안전하게 보호하심을 받는다(출 12:13; 요일 1:7, 9). (259.1)
 유혹과 죄의 포로가 되었던 솔로몬은 이를 깨닫고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고 기록하였다. 다윗이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시 91:2)고 말했을 때, 그는 실체적인 도피성에 거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259.2)
 도피성을 찾아가는 데는 지체하는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살인이 저질러지자마자 살인자는 즉시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떤 가족 관계도 그를 붙들어 둘 수가 없었으며, 그의 생명은 그 성으로 도피하는 속력에 달려 있었다. 오! 모든 사람이 이 교훈을 터득함으로써, 우리가 범죄한 것을 알 때, 지체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무마하지 말고 즉시 그리스도께로 도피하여,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예비해 놓으신 피난처에 거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께서는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히 6:18) 하기 위하여 충분한 준비를 해 두셨다. (259.3)
 고대에 그 성으로 피한 사람은 그 안에서는 생명을 보존하였으나 만일 그가 그 경계선 밖으로 벗어났을 때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진리를 잘 알고 있던 사랑받는 제자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생명을 얻기 바란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네 오른 손을 붙들”리라(사 41:13)고 약속하셨다. 피난처 안에 거하는 자는 그의 보호하심을 느낄 수 있으며, 원수의 공격을 받을 때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사 41:13)는 구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60.1)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피난처를 찾아 도망간 자는 그의 시간의 일부를 그 성 밖에서 보낼 수가 없었고, 다만 보호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도피성을 떠나서는 어느 때에도 안전책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며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다(시 91:1). 아무도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마 6:24).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생각의 가장 좋은 부분을 세상과 세상에 속한 쾌락을 추구하는 데 쏟으면서도 죄의 궁극적 결과로부터 보호받기를 바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그 주인으로부터 “삯”을 받거나 최후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일에 우리의 정력을 쏟는다면 이는 우리 자신을 실체적인 도피성의 밖에다 두는 것으로 결국 그것의 “삯” 곧 사망을 면치 못할 것인데, 이 사망은 세상을 자기의 주인으로 삼는 모든 자에게 임할 것이다(롬 6:23). (260.2)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그의 재직 기간 동안에 도피성으로 피하여 숨은 사람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피의 복수자로부터 영원히 안전했으며, 법적으로 복수자는 더 이상 그들을 해할 수가 없었다(민 35:25). (261.1)
 모든 대제사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지상의 대제사장은 그가 죽을 때에 제사장의 직무를 끝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결코 죽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대제사장의 옷을 벗으시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라는 이름이 기록된 의상으로 갈아입으실 때가 올 것이다. (261.2)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지 않으실 터인데, 이것은 모든 일이 영원히 결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죄를 자복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사람들을 향하여 그분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피의 복수자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상속된 땅으로 들어갈 것인데, 이는 의로운 자들에게 사탄의 세력이 다시는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렘 31:16~17). (261.3)
 사탄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찬탈했다. 사탄은 아담의 모든 자녀들을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들을 위한 도피성을 항상 가지고 계신다. 아벨은 그것의 신성한 경내에 안전하게 거하였으며(히 11:4), 욥은 사탄의 가장 맹렬한 유혹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그것의 보호하는 능력을 알게 되었다(욥 1:10). (262.1)
 이 도피성 안에 계속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영혼의 대적이 결코 넘어뜨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저를 구원하기 위하여 둘러 진치고 있기 때문이다(시 34:7; 요 10:29). (262.2)
 이 도피성에 관한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여러 가지 상징으로 예시되었으며, 모든 상징마다 하나님의 보호의 돌보심에 대한 어떤 특별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거절한 자들을 향하여 우시면서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라고 말씀하셨다. (262.3)
 시험을 당할 때마다 “우리의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 124:7~8)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262.4)
표 상 실 체
수 20:2-3; 신 19:4-5 도피성은 부지중에 사람을 살해한 자를 위한 은신처였다. 계 22:16-17; 요 7:37; 요일 1:7 그리스도는 죄와 멸망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피난처이다.
신 19:2-4 도피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좋은 상태로 잘 닦여져 있어, 피하는 자들이 해를 받지 않았다. 고전 11:1; 말 2:8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본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지으면 타인의 길에 거침돌이 된다.
수 20:3-4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성문 어귀에서 자백하였으며,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면 받아들여졌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신 19:11-13 만일 살인자가 죽은 자를 미워해서 계획적으로 죽였으면, 저는 도피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오히려 복수자에게 넘겨졌다. 마 7:21-23; 히 10:26-29; 12:16-17 어떤 이들은 형벌을 두려워하여 입술로만 자백하면서 마음에 죄를 품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용서를 받을 수가 없다.
민 35:24-25 성에 들어간 자들은 살인자의 운명으로 남지 않는다. 그는 회중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했고, 거기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행 17:31; 계 3:5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에 대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다.
민 35:26-27 그 성 안에 있으면 생명이 보장되었지만 성 밖에는 죽음이 있었다. 요일 5:1-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수 20:6; 민 35:28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도피성에 살 수 있었던 살인자는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 25:34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옷을 벗으시고 왕으로서 군림하실 때에, 그분 안에 거하는 모든 자들은 새 땅에서 그들의 유업을 상속 받을 것이다.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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