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기원 후 27년에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217.7)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기원후 34년에 70 주의 끝을 마무리하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의 약속을 지키셨다”는 항목에서 기원후 34년 문제를 토의할 것이다. (218.1)
 27년과 31년의 연대를 다루려면 성서 학자들 간에 크게 논란되어 온 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관련된 연대들의 정확성을 둘러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은 여러 가지로 제시되고 있는 연대들이 모두 대단히 짧은 일정 기간을 벗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최근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한 연구자가 상당히 상이한 연대를 내세우는 학파의 대표급 학자 20여 명의 이름을 목록으로 작성하였다. 십자가에 대한 이들의 상이한 연대들을 살펴보면 단 한 건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9년의 기간 즉 기원후 27년 ~ 36년의 사이에 들어 오고 있다.6 학자들이 십자가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폭은 넓지 못하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의 치하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기원후 2세기의 이교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도 그의 「로마 제국 연대기」(Annals of the Roman Empire) 15.44 에서 예수님이 “티 베리우스의 치세 중에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기술했다. 물론, 성경의 기사도 동일하다(눅 3:1; 23:24). (218.2)
 빌라도(Pilate)는 26~36년 사이에 유대의 총독의 직을 역임하였다.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망 연대를 대충 이 기간으로 잡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18.3)
 그런데, 31년은 빌라도의 총독의 임기의 중심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가 간단히 빌라도의 임기의 중반쯤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정도 이상으로 십자가의 연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500여 년이나 앞서 행한 가브리엘의 예언에 참으로 대단히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8.4)
 그렇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연대를 결말짓기 전에 그리스도의 침례(기름 부음을 받음)의 연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218.5)
 예수님은 침례 요한에 의해 침례를 받았다. 누가복음 3장 1절에 의하면, 침례 요한은 “가이사 디베료(티베리우스)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에 그의 빛나는 그러나 짧은 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218.6)
 디베료(티베리우스) 가이사는 기원후 14년 8월 19일에 사망한 저 유명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8월의 영어 명칭 August도 이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를 계승했다. 역사 연대학으로 석사 학위를 획득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침례 요한이 봉사 활동을 시작한 티베리우스 15년이 기원후 28년보다 뒤로 올라오지는 않는다는 산술쯤은 할 수 있다. 기원후 28년이라면 그리스도의 침례(기름 부음을 받음) 연대로, 우리가 가정한 기원후 27년에 대단히 가깝다. (218.7)
 그러나, 역사 연대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티베리우스 제 15년이 기원후 27년에 시작한다고 주장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앞서 45, 46 페이지에서 토의한 바와 같이, 고대에 제왕의 재위 연수를 계산하는 방식과 오늘날 우리가 계산하는 방식이 달랐으며, 각 나라마다 왕이 다스리는 매해의 시작을 정함에 있어서 각기 다른 계절들(봄 또는 여름)을 기준했다. 비근한 예로, 유대의 종교력(宗教曆)은 봄철의 니산(Nisan)월 초하루(3월이나 4월의 어느 날)로 한 해의 시작을 삼았으나, 비 유대인 왕들의 통치 기간을 계산할 때는 가을철에 있는 유대 민력(民曆)의 정월 초하루(Tishiri 1, Rosh Hashanah)로부터 시작했다. 유대 민력의 정월 초하루는 9월이나 10월의 월삭에 이어진다. 그들은 또 왕의 통치가 시작된 날과 그 다음해 가을의 정월 초하루 사이를 왕의 재위 1 년으로 간주하는 관습도 채택하였다. (218.8)
 유대의 서사(書士)들은 동부 지중해 지방들의 서사들과 마찬가지로 새 왕의 즉위 소식을 듣기가 바쁘게 기록하는 문서의 날짜를 신왕의 즉위 1년으로 기록하였다. (219.1)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기원후 14년 8월 19일에 사망하자 즉각 통치를 시작했다. 유대의 다음해 정월 초하루는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 사이의 어느 날에 떨어진다. 새 황제가 등극한 뉴스가 팔레스타인에 까지 이르려면 꽤 시일이 걸린다. 그리고, 새 황제의 통치 제 1년이 시작하고도 유대력의 새해 정월 초하루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사정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유대의 미쉬나(Mishnah)에 기록된 관습에 따라서 티베리우스의 통치 제 2년이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것은 틀림없이 기원후 14년 9월이나 10월의 어느 날에 해당하는 정월 초하루였다. 그러나, 그 때는 티베리우스가 즉위한지 겨우 2개월 여에 불과했다.*

* 고고학자들은 티베리우스 시대에 주조된 팔레스타인의 경화(硬貨)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재위 1년으로 연대가 명기된 팔레스타인 경화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티베리우스의 재위 1년 이 대단히 짧은 기간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219.2)
 이와 같은 현상은 서구인들의 눈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오늘날에도 일부 동양의 국가들에서 지켜지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한살로 간주되고, 첫 설날을 맞으면 두살이 된다.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 후에 설날을 맞게 되어도 이 관습이 적용된다. 서방 세계의 관광객들은 겨우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여덟 살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곤혹스러워진다. (219.3)
그리스도 생애와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에 생긴 사건들의 상호 관계

  (219.4)
 이러한 계산을 토대로 하여 생각한다면 “티베리우스(디베료)∙∙∙열다섯 해”(눅 3:1)는 우리가 현대의 서양식 계산 방법으로 생각하는 기원후 28년 8월에 시작한 것이 아니다. 「Inter. 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이 설명하는 바와같이 “유대 식”으로 계산한다면 티베리우스 재위 제 15년은 기원후 27년 9월 혹은 10월에 시작하였다. (220.1)
 요한이 전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침례를 받은 후부터 다음해 봄 유월절 행사에 처음으로(봉사 시작 후) 참석할 때까지의 6개월 기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제자를 모으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기원후 27년에 침례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기원후 27년에 예수님이 침례를 받음으로써 메시아의 기름 부음을 받음에 관한 가브리엘의 69 주 예언은 놀랍도록 정확히 성취되었다. (220.2)
 십자가의 연대가 예언됨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연대로 주의를 돌려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가 계산한 대로 기원후 31년에 발생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현재의 전문 지식만 가지고 말한다면, 현재 그렇다고 할 절대적 증거는 없다. 성경은 예수님의 침례에 대해서만은 “티베리우스∙∙∙열 다섯 해”라고 하는 분명한 연대를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사망 연대에 대해서는 확연하게 밝혀 주지 않고 있다. 성경 주석가들의 의견이 갈라지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220.3)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차이라는 것이 고작 1, 2 년이다. 모든 주석가들이 참작하는 사항은 십자가 사건이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재임하던 기간(기원 26~36)에, 특히 예수님께서 침례받은 때로부터 3, 4 년이 넘지 않았을 유월절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220.4)
 이와 같이, 우리의 계산은 기원후 31년에 아주 가까와졌다. 오차가 발생한다 해도 그 오차 폭이 500여 년이나 되는 예언 기간에 단 일년에 그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1 퍼센트의 1/4도 안되는 오차인 것이다! (220.5)
 그러나, 이 정도의 경미한 오차일지라도 성급히 자인할 필요는 없다. 이제 곧 그 연유를 알게 될 것이다.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