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항의 통일성은 매 항마다 나타나며 번역 성경에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데, 이레(週)라는 단어에 대한 운자 유회에 의해 높아지고 있다. B항에서는 “끊어지다”라는 히브리 단어에 운자 유회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번역 성경에는 그것이 나타나 있지 않다. 못 믿을지 모르나 “해자”, “작정되었느니라”, “정(定)한” 이란 단어들이 모두 “끊어지다”라는 뜻의 히브리 어 어원에서 번역된 것이다. (213.2)
 독자들은 27절의 A항이 [1][2] [2'][1'] 형태로 배열된 사실을 주목했는가? 관련 문제와 해답항(p. 255, 256)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하겠지만, 여기에 복잡한 교차(交叉) 대구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213.3)
 우리는 A항과 B항이 상호 연관되어 있기는 해도 단독적으로 사용되도 무방할 만큼 독립적인 구절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 A항이 말하려는 것은 70번째 주간의 어느 이미 정해진 시기에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언약을 정할 것이며, 그가 죽임을 당할 것이며, 이로써 제사가 중단될 것이라는 것이다. B항은 예루살렘의 역사(歷史)가 험난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재건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황폐케 하는 한 왕이 와서 예루살렘을 다시 파괴할 것이며, 그 왕 자신이 이미 정해진 파괴(종말)의 시기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213.4)
 A항에 나오는 사건들은 착오 없이, 그리고 밀접하게 70 주와 연관되어 있다. 이 사건들은 분명하게 70 주에 연대가 닿고 있다. 이 사건들은 24절에 선언되어 있는데 70 주 예언의 영적인 목적에도 부합한다. B항에 나타난 사건들은 명백하게 70 주에 연대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B항의 구절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정해진 기간 내에 재건되어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에게 등장할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연대가 명백 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24절에 선언된 70 주(週)의 영적인 목적을 직접적으로 성취하고 있지도 않다.

* 일부 성경 주석자들은 예루살렘 재건이 완성되는 연대를 7 주일의 끝인 408년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에는 408년 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나온 역사 기록이 너무나 빈약하다. 어떻거나 천사는 그 성읍이 7 주 끝에 완성되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사실, 7 주 또는 70 주의 끝을 마무리하는 어떤 특별한 사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213.5)
 25~27절의 B항이 A항과 24절에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으로 구성된 네 구절을 다음과같이 단순한 형태로 재구성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13.6)
 대결 관계에 있는 두 왕
 우리가 다니엘 9장 24~27절의 문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득의 하나는 27절에서 언약을 굳게 정하고 제사를 금지한다고 되어 있는 대명사 “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3.7)
 25절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도래(到來)를 약속하고 있으며, 26절은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고 말한다. (213.8)
 일부 성경 학자들이 이 두 왕을 혼동하여 두 왕을 동일한 사람으로 주장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 구절들을 히브리 문체의 규칙에 따라 배열해 보면 즉각 별개의 두 왕을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 25~27절의 A항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약속하고 있으며, B항은 황폐케 하는 왕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A 항과 B항은 대구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조 대구인 것이다. (213.9)
 27절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말하기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 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했고, 그 이레의 중간에 “그가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 하였다. 수세기에 걸쳐 일부 성서 학자들이 여기에 나오는 “그”를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아니라 황폐케 하는 왕으로 잘못 생각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저 유명한 로마의 성경 주석가 히폴리투스(Hippolytus)도 3세기에 똑같은 과오를 저질렀다. 그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제사를 금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5 오늘날까지도 때때로 히폴리투스의 잘못된 결론이 진리라도 되는 양 반복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214.1)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독자들은 언약을 정하고 제사를 금지한 “그”가 70 주의 관련 사항들과 함께 A항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주목했다. “그”는 B항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왕 곧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그는 황폐케 하는 왕이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미래의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214.2)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실지로 그러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214.3)
 성경에 나오는 한 “왕”은 뛰어난 지도자다. 예수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따라서, 그는 대단히 위대한 왕이시다. 왕 예수는 침례를 거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되었다. 메시아란 히브리 낱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그리스도”란 희랍어도 역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성경 시대에는 특별한 지도자로 선택된 사람이 그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게 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예컨대,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삼상 16:1, 13), 아론이 모세에 의해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출 30:30), 엘리사가 엘리야에 의해 선지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9:16) (214.4)
70 주(단 9:24~27)의 분석
하나님의 목적(9:24)

 A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가 끝남.

 B (예루살렘의 십자가와 하늘의 성소 봉사를 통해) 영원한 의가 소개됨.

A 70 주(9:25~27) 기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위해 발생한 사건들 B 70 주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그 사건들에 연관된 사건들(9:25~27)
7+62 주의 끝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도착.
7+62 주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짐.
70 주의 기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언약을 지킴.
70 주의 중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제사를 금지함.
어려운 중에 예루살렘 이 중건됨.
예루살렘이, 황폐케 하는 왕에 의해 훼파됨.

황폐케 하는 왕 자신이 멸망을 당함.
(214.5)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요단 강에서 그가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에게 강림하셨다(눅 3:21, 22; 행 10:37, 38). 침례 요한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즉각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 자신의 확신을 토로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 42). 얼마 후 어느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 2절의 메시아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215.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 19.
(215.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유를 선포하고 눈먼 자의 시력을 회복시키고, 용서와 새 출발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 기름 부으셨다. 따라서, 히브리서 1장 9절에서 하나님이 예수님께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셨다고 해서 하나도 놀라울 것이 없다. 즐거움은 “성령의 열매”의 하나이며(갈 5:22),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눅 4:1)을 입은 분이셨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기쁨을 몰고 다니셨다. (215.3)
 질병이나 어떤 불편으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손길이 닿을 때 기쁨을 경험했다. 애통하던 자들은 그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때 환호하였다. 죄책감으로 폐인이 되었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예수님은 도처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셨다. 그는 기쁨의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셨다. 그는 바로 행복의 메시아였다! (215.4)
 야곱의 우물 가에 있던 여인이 “메시아가 오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셨다(요 4:25, 26).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