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제 5 장 영혼의 치료(마음의 치료) 제 18 과 사람의 생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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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24). 그러므로, 초로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다시 말해서, 생명이란 이같이 극히 불안정하고 매우 짧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것입니다. (409.1)
 부귀와 영화와 지혜가 전무 후무했던 솔로몬 왕은 “무엇이든지 내 눈에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전도서 2:10-11)이어서, 인생이란 허무한 것임을 간파했습니다 시인 다윗 왕도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편 89:47) 하고 인생의 짧음과 허무함을 한탄했습니다. (410.1)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한 번 다 죽는 것은 일반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 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건강한 사람은 자기의 수를 다 누릴 수 있으나, 병든 사람은 일찍 죽는 일이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해서 영원토록 죽지 않고 영생하도록 창조하셨으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에스겔 18:20)는 말씀과같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육체에 생명이 있는 동안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합니다(시편 14:1). 이 영혼이야말로 가장 불쌍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므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시편 49:20)다고 결론지은 것입니다. (410.2)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 때,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편 71:5)가 됩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하고도 이 세상 무엇으로서도 바꿀 수 없는 부를 소유한 극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410.3)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411.1)
 사람의 생명의 가치란 온 세상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번 잃어버린 생명은 영원히 되찾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한정된 생명이 있는 동안, 영원한 생명을 탐구해서 얻은 그 사람이야말로 이제 당장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 번은 죽음을 맛보아야 할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무한한 생명(영생)에 투자하였으니 말입니다. (411.2)
 생명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영원히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것으로 알기 때문에 슬퍼할 수밖에 없음이 이 세상에 답답한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피 안에는 새로운 생명 현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즉, 부활이란 새 생명인 것입니다. (41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 (411.4)
 이 언약의 말씀이 틀림이 없음은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편 36:9)라고 한 시편 기자의 말씀으로도 알 수있고 다른 말씀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 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로새서 3:1, 3, 4)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생명의 주”(사도행전 3:15)라 말씀하셨습니다. (411.5)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요한계시록 1:17-18). (412.1)
 예수님은 죽음을 해결하실 수 있음과 동시에 음부 즉 무덤의 열쇠를 가지셨으므로, 무덤 속에서 잠자는 사람을 꺼내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4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 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1:39-44). (412.3)
 과연, 이와같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십니다(사무엘상 2:6). 신비로운 부활! 마귀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를 영영 무덤 속에 가둬 두기를 원했으나, 사망과 무덤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의 부르심에, 나사로는 사망을 이기고 무덤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즉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입니다. (412.4)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요한계시록 20:4-6). (412.5)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만이 영생의 후보자들입니다. 첫째 부활이 있은지 천년후의 둘째 부활은 첫째 부활에 참여혀지 못한 모든 사람의 부활인즉, 이것은 아무런 소망이 전혀 없는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413.1)
 “무덤 속에 있는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28). (413.2)
 생명의 부활만이 영생의 후보자인 반면에, 심판의 부활은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고생을 하고 병고에 시달릴지라도, 영생의 부활을 약속받을 수 있도록 준비된 그 영혼이야말로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아무런 두려움과 공포 없이 무덤 속에 내려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천국에 준비된 영혼을 부르러 오실 때까지 편히 쉴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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