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42장 그분은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주십니다
  (241.1)
 창세기 42장에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사(餓死)를 면하고자 요셉의 형 열 명이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왔다. 요셉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몬 후에 시므온을 가두었다. 다음에 식량을 사러 올 때 이들은 베냐민을 데려와야만 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는 것을 반대했다. (241.2)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여자의 후손을 지키시는 주님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창세기 42:1-2).
(24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언약의 땅으로 주실 때 그 후손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알리는 출애굽의 역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부터 애굽으로 이주하는 일이 발생해야 했다. 온 땅에 임한 기근이 이 일을 성취할 것이었다. 야곱은 기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와야 한다고 말하며 아들들을 재촉하여 보냈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창 42:2). (241.4)
 양식을 구하는 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하나님은 극심한 기근에서 여자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메시아의 가문을 보존하셨다. 이 집안의 어린 아들이 애굽의 곡식 저장고를 책임지고 있다. 요셉 덕분에 민족은 살아남고, 그 덕분으로 예수께서 선민의 후손으로 탄생하셨다. (242.1)
 이스라엘의 아들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네 이스라엘’(בְּנֵי יִשְׂרָאֵל,창 42:5)은 의도적으로 사용된 말이다. 야곱의 아들들 대신에 사용된 이 표현은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는 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창 32:23), 이스라엘 자손으로 번역되었다(창 50:25; 출 1:9, 12-13; 2:23, 등). 아무리 위기가 심각할지라도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고 계신다. 세겜에서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고 두려워했던 야곱을 벧엘로 올려 살려주셨던 주님이 지금은 그의 가족을 애굽으로 옮기셔서 살아남게 하실 것이다. (242.2)
 요셉, 예수의 표상
 1. 인간 속을 아시는 주님.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창세기 42:8).
(242.3)
 요셉의 형들은 전혀 예상 밖의 장소에서 요셉을 보았기 때문에, 또한 요셉이 애굽 사람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은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았으며, 그들이 절을 할 때 자기가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창 42:8-9. 참조, 창 37:5-11). (242.4)
 예수님은 누구의 증언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을 아시고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아신다(요 2:24-25). 이런 이유로 주님은 밤중에 그분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진정 필요한 것, 중생해야 할 것을 말씀하실 수 있었고(요 3:3),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를 말씀하실 수 있었다(요 4:16-18). (243.1)
 2. 부요하심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창세기 42:25).
(243.2)
 애굽의 모든 곡물이 요셉의 손 안에 있었다. 그는 형들에게 전혀 돈을 받지 아니하고 곡식을 자루에 가득 채워주었다. 그것 뿐 아니라 그들의 여정에 필요한 양식까지 더 해 주었다(창 42:25).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며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4, 16).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일상적 필요가 충족된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243.3)
 요셉에게 온 그의 형들은 넉넉하게 받고 그들의 길을 떠났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날마다 쓸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들풀을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증거하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243.4)
 갚으시는 하나님, 인과응보를 초월하는 십자가의 은혜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창세기 42:21-22).
(244.1)
 창세기 42:21-22는 그 주제와 언어가 응보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וְגַם־דָּמוֹ הִנֵּה נִדְרָשׁ 워감—다모 힌네 니데라쉬, 창 42:22). ‘그러므로’라고 번역된 ‘워감’(וְגַם) 속에 강조사인 ‘감’(גַם)이 포함되어 있고, ‘그의 피’(דָּמוֹ 다모) 다음에 마찬가지로 강조절을 이끄는 ‘힌네’(הִנֵּה 보라)가 등장하여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면서 강한 감정을 표현한다. 치르게 되었도다(נִדְרָשׁ 니다라쉬, 다라쉬(דרשׁ)의 닢알)의 ​​다라쉬’(דָּרַשׁ)는 찾다, 조사하다, 요구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다.(HALOT). 본문 속에서는 기존 행위에 대해 갚아 주는 것, 응보를 강하게 나타낸다. (244.2)
 창세기 42:21-22은 노아 언약 속에서 피의 보복(창 9:4-6)을 가리키는 사법적 배경과 관련되어 이해될 수 있다. 두 본문은 모두 응보행위를 뜻하는 ‘다라쉬(דָּרַשׁ)’, 응보를 초래하는 사유와 관련된 ‘담’(דָּם 피)과 ‘ 피 ’네페쉬(נֶפֶשׁ 생명),1 피흘림의 행위자와 보복자를 가리키는 ‘이쉬’(אישׁ 사람)와 ‘아흐’(אָח 형제)가 형제 들어가 있다.2 (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