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레이디 대위 구출 작전에서 정확한 시기 선택은 필수적이었다. 여러 곳에서 출발한 비행기들은 같은 시간에 보스니아로 출발해야만 했다. 미 헬기 항모 케르사르지(Kearsarge)에서 떠난 헬기들은 다른 항공기들이 도착할 때까지 아드리아 해 주변에서 45분간 선회해야 했다(Time, 1995. 6. 19. 25). (338.1)
오그레이디 대위도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기다려야만 했다. 비행기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해병대 헬기가 착륙하자마자 수 초 내로 올라탈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다른 곳에서 헤매거나 집중을 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의 구출 작전은 훨씬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338.2)
시기 선택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닐때 한 중요한 약속을 잊은 적이 있다. 내가 부모님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지금 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설교를 해야 할 시간인데 왜 아직 오지 않느냐는 전화였다. 순서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노래 몇 곡만 더 부르고 있으면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338.3)
나는 바로 67년산 샤브 자동차로 뛰어가서 시동을 걸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기에 숲속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학교까지 달려야만 했다. (338.4)
내가 도착했을 쯤엔 온 몸이 땀으로 젖었고, 학생들은 강당을 떠나고 있었다. 나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들은 있어야 할 시간에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시동이 걸리지 않은 내 차가 너무 싫어서 바로 팔아버렸다. (339.1)
그리스도는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그 때”는 유월절이었다.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양으로 표상되었고, 유월절 날 양이 죽임을 당할 때 그분께서도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요 19:14). 또한 그분은 유월절 후의 안식일 다음 날 이스라엘 제사장이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렸던 날(레 23:11)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다. (339.2)
성령께서도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강한 능력으로 임하셔서 밀 추수의 시작을 기념하는(레 23:16~20) 오순절 날 회개하는 자들의 엄청난 “추수”가 있게 하셨다(행 2). (339.3)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부어주심은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리라고 미리 지적한 성소의 절기가 지켜지는 날에 일어났다. 각각의 사건은 성소의 상징과 그것이 예언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같은 날에 함께 일어났다 (339.4)
각각의 경우들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은 사건 이후에 계속되는 어떤 것을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계속되는 속죄에 대한 준비였다.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영원히 살게 되었다.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은 그 하루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시기를 시작하면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오셨다(엡 1:13). (339.5)
그렇다면 대속죄일에 행해진 성전 정결로써 표상되어진 심판은 어떻겠는가? 유월절, 단을 흔드는 것, 오순절 등이 성취되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속죄일의 심판은 성소에서 대속죄일이 행해진 날인 일곱 째 달의 10일에 시작하거나 그 날이 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이 일어날 연도를 알 수 있겠는가? (340.1)
다음 장들에서 우리는 이 연도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우리가 심판의 시간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항상 그분의 언제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신령한 삶을 살라고 명하셨다(마 24:42). 그러면 왜 우리는 그분의 심판이 언제 시작되는지를 알아야만 하는가? (340.2)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이와 같다. 우리가 심판의 사건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확히 대속죄일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려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준비할 수 있었다. (340.3)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레 23:27, 28, 32).
(340.4)
레위기 23장의 내용은 대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할 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340.5)
그들은 그들의 자기 부인(금식 등)과 일을 하지 않음을 통해 그들을 위해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과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하신 것들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속죄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잃을 것이다. (341.1)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에 하나님과 만날 약속을 했다. 그들의 행위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적합하도록 그 날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아야 했다. 대제사장이 성막에서 지성소와 성소를 정결하게 할 때 어느 누구도 그를 볼 수 없었다(레 16:1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자기 부인과 일을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칠월 구일 저녁부터 칠월 십일 저녁때까지였다(레 23:27, 32). (341.2)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때인 특정한 시간에 대속죄일에 참여해야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시는 사건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언제 가질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체적으로 그들의 대제사장을 봄으로 시작 시간을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무엇을 행하는지 볼 수 없다. (34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시간을 알려주셔야만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기를 주장하고 계신 것이다. (3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