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행복하려거든(시편강해) 제 5장 오, 내 사랑 예루살렘 35. 후일에 생명 그치면 여전히 찬송 못하나
 언제나 끊어질 수 있는 그 가날픈 호흡이 끊기면 다시는 할 수 없을 하나님 찬양을, 숨질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면 그는 가장 사람답고 가장 행복한 일생을 산 것이다.

 — 시편 146편(367.1)
 다섯 시 편의 할렐루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섯 권으로 된 율법서(오경)를 주었고, 이에 맞추어 다윗은 그들에게 다섯 책으로 된 시편을 주었다”는 유대인의 성경 주석인 미드라쉬의 설명은 참으로 적절하다. 그런데 시편을 끝맺는 마지막 다섯편은 모두 시작과 끝에 “할렐루야”를 수반하고 있어 “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 다섯 편 역시 시편의 다섯 책을 각각 대표하면서 그것들을 찬양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367.2)
 이제까지의 시편들에는 모두 고난과 시련을 운명처럼 겪으며 사는 인간들의 탄식과 눈물, 슬픔과 아픔이 하나님께 대한 탄원과 찬양에 뒤섞여 메아리쳐진 깊은 인생 골짜기의 반향이었다. 그러나 이제 장엄한 “할렐루야 시편”이 시작되는 146편부터는 그런 비구름과 안개는 모두 걷히고 오직 감사의 찬양만 고조되는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찬양으로 가득 찬 복락원(福樂園)의 신천지(新天地)가 바야흐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은 죄된 세상의 역사가 마침내 끝나는 날 온 우주가 감격에 넘쳐 함께 부를 영원한 찬양의 가장 확실한 보증인 것이다. (367.3)
모세 오경 주제 시편의 다섯 책 할렐루야 다섯 시편
창세기 사람과 세상 1~41편 146편
출애굽기 이스라엘과 구속 42~72편 147편
레위기 성소와 예배 73~ 89편 148편
민수기 백성과 통치 90 ~ 106편 149편
신명기 반복과 요약 107~150편 150편
(367.4)
 하나님께만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며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146편 1~4절). (368.1)
 유럽을 뒤흔든 야망과. 극에 달한 사치로 세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이름을 남긴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의 장례식이 엄숙히 진행되고 있었다. 집례하던 사제는, 생전에 그처럼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던 그가 화려한 제왕의 복장을 한 채 지금은 한낱 싸늘한 시체가 되어 말없이 누워 있는 관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둘러서 있는 국내 • 외 조객들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369.1)
 “나의 친구들이여, 하나님만 위대하십니다” (My friends, only God is great). (369.2)
 장엄한 “할렐루야 시편”이 시작되는 146편은 우선 누구를 신뢰하고 찬양해야 할 것과 누구를 신뢰하지 말고 찬양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먹어야 살고 먹고 난 뒤에는 틀림없이 배설물을 내 놓아야 하는 그런 인간, 쉬지 않고 숨을 쉬어야 살고 숨이 멎으면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마는 그런 인간은 영원한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찬양할 명분도 없는 것이다. (369.3)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왕이든 종이든. 재벌이든 빈민이든, “호흡이 끊어지면” 그 당장에 의식(意識)이 없어져 아무것도 사고(思考)할 수 없는 허망(虛妄)한 존재요, 몸마저 썩어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허무(虛無)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예레미야 17장 5절). 힘센 사람을 배경으로 삼고 우쭐대는 사람은 최소한 패가망신(敗家亡身) 한다는 사실은 지금쯤은 상식에 속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린 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찬양하려고 세운 모든 조상(彫像)과 기념비가 끝내는 무너졌음도 자명해진 역사의 진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신뢰하고 누구를 찬양할 것인가? (369.4)
 보통 사람의 할렐루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 도다

   시온과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리로다

   할렐루야”

   (146편 5~10절). (370.1)
 앞 부분에서 연약한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힌 시인은 이제, 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또 마땅히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조목별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지금의 도움(help)으로 삼고, 장래의 소망(hope)으로 삼는 사람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뚜렷히 밝혀 찬양을 고조시키고 있다. (370.2)
처해진 현실 약속된 도움 하나님의 역할
압박을 당함 공의로 판단하심 옹호자
주림 식물을 주심 공급자
갇힘 해방시키심 해방자
눈멂 보게 하심 치유자
비굴함 일으켜 세우심 지지자
외로움 사랑하심 애호자
나그네됨 보호하심 보호자
고아와 과부 붙들어 주심 후견인
악인의 행위 실족시켜 넘어뜨리심 심판자
(371.1)
 이러한 도우심과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신뢰할 수 있으며 마땅히 찬양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속성(屬性)과 함께,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6절)신 창조주의 신분(身分)과 “영원히 진실을 지키시”는 특성 때문에 찬양은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371.2)
 대단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여 사는 동안 큰 일 한번 못해보고 자업자득(伯業自得)으로 한 평생을 고달프게 살아간 보통 사람 야곱에게, 필요한 때마다 최선의 도움을 주신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사람, 곧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평생 방황하며 그 나그네 길의 인생을 살아간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창세기 28장 13~15절) 끝까지 지키신 하나님은 정말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심에 틀림없다. 그래서 야곱은 그 하나님을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한 것이다. (371.3)
 지금에 불러야 할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을 언제 찬양할 것인가? 시인은 단정한다. “생전”(生前), 곧 “살고 있는 동안”(while I live)에 급선무로 할 일이며, “평생”(平生), 곧 “살아 있는 동안”(while I have being)이 바로 찬양할 기회인 것이다. 언제 이를지 모르는 죽음이 닥쳐와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생각〉가 소멸”(4절)되기 때문에 “살고 있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의 본분인 찬양을 사람답게 하라는 냉철한 권고이다. (372.1)
 신 • 구약의 다른 모든 성경처럼 시편도 사람의 사후(死後) 상태가 철저한 무의식(無意識)임을 단정하고 있다. 의식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찬양인들 할 수 있겠는가? (3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