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禧年)은 일련의 안식 제도들(sabbatical institutions) 가운데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은 인간에 주어진 최초의 종교적인 제도였다(창 2:2~3). 주일(週日)의 제7일은 거룩하게 되었으며, 여호와의 쉬는 날로 지켜지도록 구별되었다(사 58:13~14; 출 20:8~11). (246.1)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된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는 매 일곱 번째 되는 해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하여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 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레 25:4). 제7년 동안에 백성들은 그들의 밭에 파종을 하거나 그들의 포도원을 전정(剪定)해서는 안 되었고, 또한 스스로 나서 자란 것을 그들의 창고에 거둬들일 수도 없었다. 땅의 주인은 긴급한 용도를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취할 수 있었으나 안식년 동안에는 그의 종들과 나그네들과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그의 밭의 소산을 누리는 일에 그 주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었다(레 25:1~7). (246.2)
 성력(聖曆)-유대인의 성력은 봄에 시작했고, 민력(民曆)은 가을에 시작했다-의 제7월 곧 티쉬리 월(Tishri 月)은 1년 중 다른 어떤 달보다도 안식일과 절기들이 더 많이 있기 때문에 어떤 저술가들은 안식월(安息月)이라고 불렀다. 이달의 초하루는 나팔을 부는 절기였고, 속죄일은 10일이었으며, 초막절은 15일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매 50년에는 티쉬리 월의 10일에 희년이 시작되었다(레 25:8~11). (246.3)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 백성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지였으며, 제7년 안식년 동안에 땅을 쉬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땅과 그들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였다(겔 20:12, 20). (247.1)
 여호와께서는 제7년 안식년을 특별히 기뻐하셨고, 그것을 지키라는 그분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그분의 보시기에 불쾌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이 “토지가 안식년을 누리지” 못하도록 했었기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대하 36:18~21). 탐심과 이욕에 사로잡혀 그들은 매년 토지를 경작했었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셔서 토지로 하여금 황무하게 하시므로 70년 동안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 (247.2)
 만약 하나님의 명령이 언제나 준수되어 토지가 매 7년에 쉼을 얻었더라면, 땅이 “옷같이 해어지지”(사 51:6)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비옥한 땅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247.3)
 하나님의 명령들은 모두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속(贖)하기 위하여 바벨론 포로 동안에 땅이 안식을 지키면서 70년간 황무한 채로 놓여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땅은 그때 이후로 무시되어 온 그 많은 안식일들을 속하기 위하여 안식을 누리며 1,000년 동안 황무한 채로 놓여 있을 것이다(계 20:1~4; 습 1:1~3; 렘 4:23, 27). (247.4)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은 다른 안식 제도들로 이끌어 가는 징검돌이었다. 창조의 기념일이 되는 것 이외에도 그것은 최후의 쉼을 가리켜 보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속적인 이익을 위하여 안식일을 무시했을 때에는 그들에게 쉼의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원초적인 계획을 누릴 수 없는 처지에다 자신을 두었던 것이다(렘 17:21~27). (248.1)
 희년은 일곱 번의 7년 다음 해인 제50년이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수명을 산 개인이면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에 적어도 한 번은 희년이 이르러왔다(레 25:10~11). (248.2)
 속죄일은 모든 절기들 가운데 가장 엄숙한 절기였고, 희년은 가장 즐거운 절기였다. 이스라엘의 죄들이 모두 용서받아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의하여 광야로 운반된 때인 속죄일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바를 깨달은 사람들이 그들이 실체적인 희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꺼이 영원한 기업을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기꺼이 그들의 동료 인간들의 부채를 탕감하고, 그들의 노역에서 해방시키며, 모든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땅으로 회복시켜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248.3)
 일곱 번의 7년(49년)의 마지막 해를 마치는 안식년의 7월 10일 곧 속죄일의 끝에는 희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248.4)
 유대인의 전통은 이스라엘의 각 사람이 이때에 어떤 종류의 나팔을 하나씩 지급받았으며, 속죄일을 마치는 시간이 왔을 때에는 각자가 자기의 나팔을 9번씩 불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팔소리를 전국에서 크게 내라고 하셨다(레 25:9). (248.5)
 고대 이스라엘의 희년 나팔을 불던 일은 주의 마지막 나팔(고전 15:51~53)과 얼마나 흡사했을까! 고생스럽게 일하던 노예가 벌떡 일어나서 쇠고랑을 벗어 던져버렸다. 재산을 모으기 위해 고용인과 과부를 억압하던, 욕심과 탐심이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희년의 나팔소리는 그의 모든 희망을 허물어뜨리는 조종(弔鐘)으로 들려왔다(사 2:20~21). 속박 가운데 있던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의 땅으로 되돌아갔다(레 25:12~13). 다른 해들의 상례적(常例的)인 봉사들과는 달리, 희년 동안에 요구된 어떤 종교적인 봉사들 또는 예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희년은 모든 사람들, 곧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똑같이 전답(田畓)과 포도원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들을 나눠 가지는 때였다. (249.1)
 희년은 제7년 안식년 바로 다음에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안식년이 연속해서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48년에 특별한 축복을 내리심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위한 풍성한 산물을 허락하셨고, 그해에 땅은 백성이 3년 동안 지나기에 충분할 만큼 생산되었다(사 37:30; 레 25:11~12). (249.2)
 성경에는 희년이 준수되었다고 하는 말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어떤 저술가들은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세 시대의 다른 모든 축제들은 준수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절기들과 매우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또 참으로 다른 모든 축제들의 절정을 이루는 것 하나가 빠져 버렸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249.3)
 희년은 준수되어 왔음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희년에 기초하여 제정되었던 소유지의 불가양도법(不可讓渡法)이 유대인들 사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민 36:4, 6~7; 룻 4:1~4). 요세푸스는 그것이 항구적으로 준수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249.4)
 희년의 행사가 이스라엘인들에 의하여 수행된 실례들이 기록에 남아 있다. 느헤미야는 그의 위대한 개혁 사업 중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에게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였고, 토지와 포도원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느 5:1~19). (250.1)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전날 밤에 시드기야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선언하였다. 분명히 그는 희년을 경축하려고 의도하였다. 만약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그것은 그에게 자유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요구들을 이행하기에는 너무나 우유부단하였다. 주께서 기별을 보내셔서 말씀하기를 그가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은 잘한 일이나 그것을 허락하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혔다고 하셨다(렘 34:8~17). (250.2)
 고대 이스라엘인의 모든 상업적인 이해(利害)관계는 복음을 가르쳐 주었다. 이스라엘인이 언약된 땅에서 거주하면서 그것의 특권들을 누리도록 허락을 받은 동안에도 그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 했고 소유주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는 명령을 내리셨다. 주께서 온 세상을 소유하고 계신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이 세상의 현재 임금인 사탄이 그의 운명을 고하는 실체적인 희년이 올 때까지, 자신을 지상에 거하는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는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로 여기신다. (250.3)
 만약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여 그의 집을 팔아야 했다면, 그는 희년의 나팔소리가 그 땅에 울려 퍼질 때에는 그 집이 원래의 소유주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판 것이다. 만약 그 불운한 사람에게 그의 땅을 무러줄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이 있다면 구입자는 희년까지도 그 땅을 가질 수가 없었다(레 25:25~28). (2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