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7 편 구속받은 후의 성소 제38장 영원한 성전-지성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정으로 만들었던 동산을 하늘에 있는 그분의 집으로 옮기셔서 하늘 존재들의 보호 아래 그것을 두셨다. 그 동산은 하나님의 낙원인 영원한 성전의 지성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천사들이 “번쩍이는 칼모양의 광선”(부조와 선지자, 60)으로 둘러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었다(창 3:24). 이제는 천사들이 하늘 도성의 각문에 있다(계 21:12). 그러나 이는 구속받은 자들이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들이 생명을 주는 과일로 가도록 환영하기 위함이다! 홍수 전 하나님의 백성들은 에덴 정문 밖에서 희생제물을 드리고, 순종의 맹세를 새롭게 하고 자신을 드렸다. 그렇지만 회복되는 때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 도성 안으로 정문들을 통하여 들어가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그들의 헌신의 맹세와 사랑의 순종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드릴 것이다. (348.2)
 캘리포니아 주 치코라는 마을에 부유한 나무 수집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나무를 모았다. 그가 발견한 진귀한 나무들은 그의 집으로 보내져,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 심기었다. 몇 해 동안 그는 방문객들이 찬탄을 아끼지 않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수집하였다. 그런데 이 동산에 특별한 주의를 끄는 한 나무가 있었다. “후커 참나무”라고 불리는 나무인데, 적어도 천 년 정도의 수령을 가지고 있었다. 펼쳐진 가지 밑에는 거의 일천 명의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래서 이 나무는 미국의 “천연기념물” 목록에 수록되었다. 그 공원의 주인은 지금은 죽었고, 이 아름다운 나무를 가진 동산은 여전히 잘 보호되고 있지만 조만간 소멸될 것이다. 사실상 최근의 폭풍으로 그곳은 망가져 버렸고, 주민들의 큰 슬픔이 되었다. (348.3)
 그러나 에덴동산은 그와 같지 않다. 육천 년 후라도, 이 “즐거움의 동산”은 처음보다 “더 영광스럽게 단장되어”(부조와 선지자, 62) 존재해 있을 것이다. 이 동산에는 희귀종의 나무들이 자라날 뿐 아니라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즐겁고 양식으로 좋은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자라게 하시”(창 2:9, 킹제임스역)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그분께서는 탁월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 다른 두 나무를 허락하셨는데, 가히 하늘의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들이다. 이 생명나무와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는, 어떤 다른나무들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동산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348.4)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가, 그 동산을 적시고 그곳으로부터 갈라져서 네 원천이 되었”(창 2:10, 킹제임스역)다. 에스겔은 이 강을 묘사하면서, 그것을 “강”뿐 아니라“강들”(겔 47:9)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은 그것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계 22:1) 나온다고 말한다. 깊이 판 우물같이, “수정같이 깨끗한” 이 물은 네방향으로 갈라진 “네 근원에서” 흘러나와, 보좌가 위치해 있는 산의 사방으로 흘러내려 간다. 산 아래로 수 마일을 내려간 다음,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어 즐겁게 흘러내린다. 때로는 조용한 호수를 이루어, 거기서부터 동산에 “물을 대기 위하여”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작은 시내를 이루는 모습은 참으로 매혹적인 풍경임에 틀림없다. 다윗은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시 46:4, 5)라고 그 전경을 묘사했다. 그와 같이 물가에 심긴 초목은 결코 시들지 않는 신선한 꽃과 향기를 가득 풍기며 살아 있다. 금상첨화로 그 나무의 열매는 맛과 아름다움을 겸하고 있다. 반얀나무처럼 생긴 생명나무가 강 좌우로 싱싱하게 자라며, 이 생명나무는 “꼭대기에서 한 나무로 연결되어”(초기문집, 17) 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그들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모팻).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영원한 성전의 보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덕택이라, 모팻).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7, 12). “생명나무는 죽음이 없이 영속게 한다”(초기문집, 51. 126). (349.1)
 이 나무들로 드리워진 강은 산의 근원으로부터, 도성의 사면에 있는 벽옥의 성벽까지 힘차게 흐른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또 다시 흘러 “이 생명 강가”(각 시대의 대쟁투, 675) 주변에 위치한 구속받은 자들의 에덴 가정을 아름답고 신선하게 만든다. 적어도 시온산의 한 언덕을 차지하고 있을, 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동산은 새 예루살렘의 공중정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적당할 것이다. 먼 옛날 하늘 도성을 모방하여 사탄이 만든 모조품이라고 부르는 바벨론 성 안에, 위대한 왕 느부갓네살은 지상의 기적이 되는 공중공원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온 우주의 왕께서 창설하시는 가공원(架空園)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불가사의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349.2)
 보좌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 도성안에는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77).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유혹하지도 않을 것”(교육 302)이다.2) (349.3)
 그 나무로 인하여 죄의 저주가 처음으로 이 지구를 오염시켰으나, 회복 시에는 “다시 저주가 없”(계 22:3)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자는 계속하여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던 자리에 하나님의 보좌가 자리 잡을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성경에서 생명강과 생명나무를 언급하는 곳마다(창세기 2장 9절은 제외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계속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계 22:2, 3). 그 나무가 있던 자리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스러운 보좌가 들어선다. 그 보좌는 모든 참된 지식—악이 섞이지 않는 선의 지식 —의 근원이다. 사탄이 그의 보좌를 높이려고 시도한 바로 그 장소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원한 보좌가 놓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만일 이 장소가 사탄에 의해서 점령되었다면 어떠한 사태가 이 세상에 전개될 뻔했는가? 의의 승리가 죄를 완벽하게 능가하였듯이,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탄을 완벽하게 제압하였다! 처음 이 땅에 둥지를 틀었던 에덴동산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가장 존귀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에덴동산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의와 권세의 영원한 증거로 남아 있을 것이다. (350.1)
 에덴이 하늘로 옮겨졌을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 땅에 남아 있다가, 곧 뒤따라 있었던 홍수 때 마침내 없어진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악과 같이 그것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른바 참된 지식의 샘을 거짓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셨고, 그분의 행하신 일은 영원한데, 어떻게 그 나무가 없어질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세상이 죄로 인해 몰락했기 때문에, 결국은 소멸될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안에 있는 모든 죄가 파괴될 것이다. 그때에 죄로 인해 낡아 빠진 모든 것으로부터(말 4:2, 3),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거할 새 땅과 새 하늘을 창조하실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파멸을 통해, 구속받은 자들이 악에 오염되지 않은 지식과 지혜의 보물을 탐구하는 놀라운 기회를 새 땅에서 제공하시지 않겠는가? (350.2)
 거룩한 도성의 주민들
 하늘은 그리스도의 사업에 있어서 그분과 동역하는 수많은 천사들이 거하는 집이다. 그들은 태초부터 강력한 지도자의 충성된 신하로 헌신한 “천만 천사”(히 12:22)이다. 그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히 1:14)을 받은 자들이다. (350.3)
 “천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험에서 종종 보호했으며, 항상 인류의 특사들과 함께 구원의 교제를 나누었다”(E. G. White, in My Life Today, 305). (350.4)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지상에서의 생애 동안 몇몇 선택된 천사의 섬김을 받으셨다. 이 충성스러운 천사들은 “하늘 ∙∙∙ 에 있는 모든 가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엡 3:14, 15, 킹제임스역) 하나님의 가족을 구성한다. 그들은 영원한 성전의 지성소인 그 도성의 영원한 거주민이다. (351.1)
 이 “천만 천사”들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사탄의 반역에 참가하여, 그와 함께 “땅에 던”져진 불충성한 천사들인 “하늘 별 삼 분의 일”(계 12:3, 4)에 포함되지 않았다. “자기의 처음 신분을3)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유 1:6, 신킹제임스역)과 아버지 집을 떠나,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를 따른 천사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아버지 집을 떠난 천사들은 영원한 성전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 (351.2)
 요한에 의하면(계 4:4-6, 8~10), 한 무리의 구속받은 자들이 지금 하늘에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마 27:52, 53), 그분께서 승천하실 때에 함께 하늘로 데려간 자들로(엡 4:8), 의인들의 일반 부활(一般復活)의 첫 열매이다. 그들은 “보좌의 주위와 중앙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무리, 즉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로 그 도성 안에 영속적인 거주자로 남아 있는 듯이 보인다. (351.3)
 이미 언급했듯이 다니엘 12장 2절에서 특별 부활(特別 復活)에 참여할 다른 자들도 “보좌 가장 가까이”(각 시대의 대쟁투, 665)에서 그들과 연합할 것이다. “거룩한 도성 문을 통과하여”, “인간으로서 하늘에 들어간 첫째 사람”인 에녹은 “그 도성 안에 그의 가정을”(부조와 선지자, 87; 초기문집, 40) 꾸렸다. 하늘에 갔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산에 나타났던 모세와 엘리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마 17:1~3). 그 외 천년기 시작 때 이 땅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감을 받은 구속받은 자들은 악인들의 심판이 마치는 천년기가 끝날 때까지 그 도성에서 살 것이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계 20:6), 그리스도께서 승천 시에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많은 저택들”에 거주하게 된다(요 14:2, 3, 킹제임스역). 천년기 끝에 도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계 21:1~3)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 그들은 도성 밖에 있는 그들의 에덴 가정에 거하게 된다. 여기서 그들은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사 65:21)이다. 도성 안의 “저택들”이 그들의 도시의 집이라고 불려진다면, 이 에덴동산들은 시골의 집이 될 것이다.4) (351.4)
 영원한 성전의 지성소 기능
 영원한 성전의 지성소인 새 예루살렘은 “새 땅의 수도”(각 시대의 대쟁투, 676)이다.5)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만국 정부의 보좌이며, 우주의 “수도”(각 시대의 대쟁투, 426)이다. 이곳에서 구속받은 자를 위한 특별한 축제로 하늘의 거대한 환영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네 번째 축제가 열릴 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즉위하시는 어린양의 혼인 예식과 혼인 잔치가 거행된다(계 19:9, 16). 또한 천년기의 마지막에 영원하신 왕으로서 취임하시는 그분의 “마지막 대관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될 것이다.6) 그리고 영원을 통하여 장자 교회, 모든 구속받은 자들이 “매달 초하루와 안식일마다”(사 66:23, 우리말) 신성한 예배를 위하여 이곳에 모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도성을 영원한 성전 교회라고 부른다. (352.1)
 “매달 초하루마다”
 이스라엘에게 매달 초하루(월삭, 개역판)는 특별한 종류의 성일이다. 이날이 되면 산헤드린 회장은 “거룩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SB Dict. Art. New Moon). 애굽을 떠난 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 나팔을 불어 “달의 시작”을 알리고, 한데 모여서 “번제와 ∙∙∙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 기념이 되도록”(민 10:2, 10, 킹제임스역) 하였다. 번제는 헌신을 새롭게 하는 표시였으며, 화목제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적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민 10:9). 이 둘은 모두 향기로운 제사였다. (3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