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그가 아직도 기도하고 있는 중인데 가브리엘이 도착한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아보기 이전에 하나님이 그렇듯 신속하게 응답한 이 기도에서 배울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자. (196.1)
 우리는 이미 앞에서 다니엘의 기도의 생애에 대해 많이 배웠다(p. 101-103 참조). 다니엘 9장의 기도에서, 다니엘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최소한 6 가지의 일을 했다. (196.2)
 1. 그는 열렬히 오래 기도했다.

 2. 그는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였다.

 3. 그는 성경을 이용하였다.

 4. 그는 자신의 죄와 자신의 집단의 죄를 고백했다.

 5.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을 간구했다.

 6·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다. (196.3)
 인간의 모든 의사 전달(意思傳達)이 그렇듯이, 효과적인 기도에는 언어와 태도가 포함된다. 호세아 1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하였다. 예레미야 29장 13절“전심으로 나를 찾으라”고 부연했다. (196.4)
 다니엘은 그 시대의 관습을 좇아 그의 영혼의 깊은 갈망을 강조함에 있어서 적절한 언어의 선택에 유의했을 뿐만 아니라 금식베옷 입고 재를 무릅쓰는 일에 유념했다(단 9:3). 유대인이 입는 베옷이란 염소나 낙타의 털로 짠 거친 직물이다. 이 옷은 큰 상(喪)을 당했거나 영적으로 크게 발분할 때 입었다(예:삼하 3:31, 왕하 19:1, 2). 칙칙하고 볼품없는 베옷으로 겸비한 마음을 표시했다. 얼굴에 재를 무릅씀으로써 자기를 낮추는 정신을 강하게 나타냈다. (196.5)
 다니엘이 금식한 사실은 다니엘 9장의 그의 기도가 장기간에 걸친 그의 기도들의 요약이라는 생 각을 갖게 한다. 다니엘 10장 2, 3절에는 다니엘 이 2 년 후에 3 주일에 걸쳐 금식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196.6)
 그러나, 다니엘이 자신의 금식과 베옷과 재로 공덕을 삼으려 했다는 암시는 어느 곳에도 없다, 분명 그것들은 그의 진정을 표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또 실지로 그의 진정의 깊이를 더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의를 그것들에 이끌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라 하였다(단 9:18). (196.7)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이르기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하였으나, 바울은 우리에게 이르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였다(롬 3:10).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니엘처럼 하라! 죄스러움 그대로 하나님께 나가라. 그것이 우리가 나갈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나아가라고 하셨다(요 14:13, 14). (196.8)
 다니엘은 기도에 성경을 이용했다. 그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특별히 유형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음의 세 구절들 즉

 (1) 유형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세의 권고(레 26장),

 (2) 후일에 유형(流刑) 신세를 겪게 될 사람들을 위한 솔로몬의 기도(그는 지금은 황폐된 그 성전을 헌당할 때 이 기도를 드렸다.)(왕상 8:46~53),

 (3) 현재 바빌로니아에서 유형의 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예레미야의 편지(렘 29:15~20)를 읽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196.9)
 


다니엘은 굵은 삼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 금식 기도한다· 그 당시 이런 관습은 굴욕적인 일을 당하거나 애도를 표할 일이 생겼을 때에 행하는 것이다.
(197.1)
 이 세 구절은 하나같이 유형 생활의 원인을 죄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잘살기를 바라셨다. 그분은 그 땅을 그들 대대에 물려주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스럽게 죄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유형의 땅에 끌려 가도록 허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외국 땅에서 그들의 죄를 뉘우친다면, 그들을 용서하고 고향 땅으로 데려올 것이었다. 레위기 26장은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말하기를, 유형 생활을 하는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를 자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대적의 땅에 끌어 갔음을 깨닫고∙∙∙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며∙∙∙ 그 땅을 권고하리라”(레 26:40~42). (198.1)
 다니엘은 이 지시에 따라 기도하기를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 하였나이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였으므로라 하였다(단 9:5~11). (198.2)
 다니엘이 이같이 기도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는 그를 죽일 구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의 원수들도 그의 행동에서 부당한 것을 찾지 못했던 그런 사람이다(단 6:4), 그런데도 다니엘은,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였다고 기도했던 것이다. (198.3)
 다니엘은 거짓을 말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장난을 치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동포들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유대인 집단은 전체로서 유형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 이유는 그 집단이 전체로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198.4)
 지금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 교회가 아니면 우리 학교, 우리 나라가, 우리 주교들 또는 우리의 국회의원들, 혹은 정부 관리들이 부패하고 게을러서 마땅히 이룩할 수 있었던 일을 이룩하지 못했다고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말하기를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였다(단 9:8). (198.5)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술주정꾼을 바라보며 한 유명한 복음 전도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한다. “저기에,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내가 걸어 간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가 범죄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들과 우리의 지도자들이 모두 꼭 같은 재료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의 입장에 있게 되었다면 꼭 같거나 더 큰 과오를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진실로, 우리는 가정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유사한 과오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2장 1절“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경고하였다. (198.6)
 우리가 5백 년 또는 1천 년 전에 살았다면 우리 조상들보다 우리가 더 낫게 살았을 것이 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오, 하나님 나의 가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너무 자주 다룹니다. 우리는 TV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정작 중요한 일에는 너무나 적은 시간을 바칩니다.” (198.7)
 “오, 하나님, 나의 회사를 용서해 주옵소서. 노사(勞使)간에 불쾌한 긴장이 팽팽하고 품질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 적습니다.” (199.1)
 “오 하나님, 나의 조국을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는 너무나 물질적이고 지방색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199.2)
 “오 하나님, 나의 클럽을 용서해 주옵소서. 너무 폐쇄적이고 경박합니다.”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