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달라고 조르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 대신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애굽기 34장 6절)의 속성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분의 속성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왕국, 하나님의 통치는 그러한 영광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런 속성으로 이루어져 영광의 통치만이 사람을 영원히 행복하게 할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로 하나님의 통치권이 찬탈된 이 땅 위에 행사되고 있는 불의한 죄의 통치가 재난이요, 불행이요, 죽음인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장본인인 사단, 곧 뱀의 머리를 부수고 죄로 상실된 하나님의 통치권, 곧 왕권(王權)을 회복하러 오셨다. 신분을 확인하려는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단호히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요한복음 18장 37절). (361.2)
 기도의 절실한 내용을 가르치신 “주님의 기도”의 첫 머리에, “나라〈왕국〉이 임하옵시며”(Thy Kingdom come)와 마지막에 “나라〈왕국〉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마태복음 6장 10, 13절)음을 강조하심으로써 죄로 상실된 하나님의 통치권〈왕권〉의 회복이 곧 구속(救贖)의 목적임을 확인하고 있다. (361.3)
 본 편에 거듭 강조된 “주의 나라〈왕국〉의 영광” “주의 능(能)” “주의 나라〈왕국〉의 위엄” “영원한 나라〈왕국〉” “주의 통치” 등의 표현은 그것이 다윗의 찬양으로 드린 “주님의 기도”임을 한 눈에 깨닫게 한다. 그것이 대왕 다윗이 극구 옹호하고 있는 왕 중 왕 하나님의 절대 왕권인 것이다. 선지자 다니엘은 2,500년 전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마지막 시대인 “이 열왕(列王)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왕국〉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할 ∙∙∙ 영원히 설”(다니엘 2장 44절) 왕국을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회복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마침내 회복된 것이다. (362.1)
 부왕(父王)이신 왕중 왕찬양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 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145편 14~21절). (363.1)
 먹을 것이 떨어질 때마다 애처롭게 간구하는 엄마가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몇 번인가 끼니를 때운 스코틀랜드의 어느 가난한 집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하나님은 우리가 밥 그릇 긁는 소리를 언제나 듣고 계신가 봐요.” “주님의 기도”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왕국을 다스리시는 아버지, 곧 “부왕”(父王)이신 것이다. 자식을 먹이는 것은 아버지의 일이다. 배고픈 자식에게는 “빵”, 곧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Give), 죄지은 자식에게는 “용서”(For give → Give for sin)를 베푸시는 그런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363.2)
 무한한 우주의 무수한 천체를 다스리시는 왕 중 왕 이시면서도, “한 앗사리온〈동전〉에” 두 마리씩 팔리는 값싼 참새의 운명을 아실 뿐더러(마태복음 10장 29절), “앗사리온 둘”에는 네 마리가 아니라 “다섯 마리”를 주는데 덤으로 팔리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누가복음 12장 6절)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7절)고 말씀하시는. 참으로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이시다. 다윗은 그처럼 광대하시면서도 그토록 자상하신 하나님을 오장 육부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찬양하기로, 찬양하기 위하여 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364.1)
 O 선택에 편향되어 있다. 여럿이서 함께 모여 일을 하기보다는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다. 자기 폐쇄적이다. (364.2)
 O 예의 범절을 제대로 모른다. 진지함이 결여 되어 있다. (364.3)
 한편 “우리나라 대학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라는 설문에는 다음과 같은 답이 많았다. (364.4)
 O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시설 투자가 미비하며 기자재, 건물, 교수 연구비 등의 예산이 미비한다. 대학을 진정한 학문 연구소로 취급하여 시설면에서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투자하여야 한다. 양적으로는 팽창했으나 질적 개선이 미흡하다. (364.5)
 O 대학은 직장으로 가는 길의 도구 정도의 역할밖에 못한다. 취업의 관문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학문 탐구를 위한 장이 아니고 취직을 위한 발판이다. (364.6)
 O 학교 당국이 학생에 대하여 너무 방관하고 있다. 알찬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의 내용이 한계적이다. 부실 교육이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교육이다. 면학 분위기가 없다. 학습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였다. 학생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한다. (364.7)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나라 대학은 대학 내부의 문제와 사회적 분위기의 문제 그리고 국가 차원의 지원 및 정책적 문제가 복합되어 참으로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다. (365.1)
 우리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정도의 염려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좌우될 것인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특히 우리 나라 대학생들의 행동이나 사고에 대한 설문의 답들을 보면 기묘하게도 성경의 예언과 일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세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증상인가. 아니면 개혁의 의지가 부족해서 오는 것인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365.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장 1~5절). (3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