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하나님의 가족을 갈라 놓았다. 구속의 계획은 이 깨어진 가족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45.1)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 (45.2)
“권속”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오이케이오스(oikeios)”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뜻이다. (45.3)
전통적으로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그 가족적 측면 보다는 단체적 측면 내지는 회중적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적, 역사적 측면에서 본 초대 교회는 소규모 가정 친교의 집합체였다. 이들 친교 모임은 한 가족 처럼 움직였다. (45.4)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을 대한 자신의 심정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경험되어야 될 관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45.5)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살전 2:8) (45.6)
이런 애절한 사랑의 관계는 대형 교회의 환경에서는 생길 수가 없다. 우리의 교회 활동이 단지 안식일 아침에 교회에 출석하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점심 식사를 나누고 나서 집에 가는 것이라면 교회가 이런 각별한 가족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45.7)
예를 들어 한 가족이 있는데, 이들은 주중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일주일 마다 한 장소에서 두어 시간 동안 모인다고 하자. 만나서 반가이 인사한 다음 다 한 자리에 앉아서 준비된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끝난 다음 이들은7일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각기 자기의 갈 곳으로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일주일 후 이들의 만남은 종전과 같이 되풀이 된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만남을 목격한 사람들 중 누가 이들을 단란한 가족이라고 평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이들이 진짜 가족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인가?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가족의 장래를 염려하고 그들이 속히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고 딱한 것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가족 패턴을 교회 가족의 모델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45.8)
건실한 가족의 구성원은 상호간에 친밀히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두려움과 소망과 꿈과 안타까움과 투쟁에 대해 알고있다. 서로 돌아보는 가족은 피차 말과 행동으로 용기를 북돋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준다. (45.9)
하나님의 가족도 동일한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은 일반 세상 사람의 가족 보다 한가지 점에서 월등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은 그들 사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가족을 돌보신다.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은 끊임 없이 성령의 침례를 받고 있는 하나님 가족의 멤버를 통해서 나타난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 진다. 그로 인해 우리는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섬기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족적 원동력은 소규모의 친교 모임에서나 생길 수 있다. (4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