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church fathers) 사도들 이후 4세기 동안에 전 세계적인(ecumenical) 신조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복음의 진리를 증거한 사람들을 말한다. 교부시대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본성에 대한 연구가 중심을 이룬 시대였다. 이 시기에 성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성령은 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으로 이해되었다. 처음 2세기 동안 교회 안에는 성령 주심이 의식 수행과 결합되어 나타났다. 침례 자체를 성령의 인으로 간주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물 침례 의식과 성령 침례는 아무 차이가 없었다.5) (167.1)
 2세기 후반 경에 성령의 신성에 대한 이해가 증대되었다. 하지만, 4, 5세기에 이르러서는 성령은 점차로 교회 성직자의 통제 아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직자주의(sacerdotalism)가 만인제사장직을 대치하였으며, 따라서 성직자주의가 성령을 교회 의식에 묶어놓게 되었다.6) (167.2)
 필론(Philo, BC 20~AD 50)과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은 성령을 성경의 기자들의 집필 작업에 관여한 분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이레내우스(Irenaeus, 130~202)는 말씀과 성령을 하나님의 양손으로 간주하였다. 둘 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구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았다.7) 성령은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있었다. (168.1)
 교부시대에 주목할 만한 성령운동은 몬타누스주의(Mountanism)이다. 몬타누스(Montanus)는 프리기아(Phrygia) 출신으로 AD 156년 경부터 자신이 보혜사의 대표적 예언자라 주장하였다. 그는 그의 추종자 프리실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와 함께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였다. 그들은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고, 엄격한 금욕과 금식을 요구하였다. 그들의 핵심주장은 1세기 초기교회의 종말론적인 열정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던 종말이 오지 않자 그 세력이 약화되어 4세기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다. 교회는 AD 200년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단호히 배척하였다.8) (168.2)
 몬타누스주의자들에 대한 다른 평가도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성령의 시대와 성령의 침례를 통한 그리스도인 침례의 완성을 주장하였으며 예언과 방언(glossolalia)을 말하는 것을 포함한 성령의 은사들(charismatic gifts)을 주장하는 데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적인 삶의 높은 표준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몬타누스주의가 기독교 역사에서 불공평하게도 나쁜 평판을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168.3)
 하르나크(Adolf von Harnack)는 몬타누스 운동이 신약 교회의 활력과 열심을 회복하였다고 주장한다. 요한 웨슬리와 많은 오순절주의자들도 몬타누스 운동을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이해한다.9) (169.1)
 ‘삼위일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c. 160~c. 225)는 아들과 성령이 공동으로 아버지와 함께 갖고 계시는 한 본질이 있음을 강조하고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성령의 신성과 위격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변호하였다. 그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보았다. 그는 침례의 성례를 강하게 믿었다. “우리는 물로써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물로써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천사의 보호 아래 성령을 위해 준비되는 것이다.”10) (169.2)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령을 어떠한 의식과 결부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몬타누스주의자가 된 다음, 테르툴리아누스는 가톨릭 신자들을 “혼에 속한 사람”(psychics) 혹은 “동물적 인간”(animal men)라고 부르고,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신령한 사람들”(pneumatics) 혹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Spirit-filled)이라고 불렀다. (169.3)
 한편 사벨리우스(Sabelius, 3세기 초)는 하나님의 세 위격을 부인하고, 양태론(Modalism)적 삼위일체를 주장하였다. 양태론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으나 그 하나님이 시대와 장소를 따라 아버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들로,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일신삼형론(Modalism)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성부 수난설(Patripassianism), 군주신론(Monarchianism)이 나왔다. 이 주장은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170.1)
 교부 오리게네스(Origen, d. 254)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위격을 가진다고 강조하였으나 다른 경우에는 성부와 성자에게 성령은 종속된다고 하였다. 죄의 용서를 가능한 가시적인 침례와 밀접하게 연결시키면서, 그는 가시적인 침례는 성령의 침례와 연결될 때에만 의미와 효력이 있다고 단호하게 주장하였다.11) (170.2)
 교회론으로 유명한 키프리아누스(Cyprian, d. 258)는 성령의 인침과 안수를 직접 연관시킨 최초의 저술가이다. 그는 침례 받은 자는 반드시 감독들에게 보여야 하며 . 그들의 기도와 안수를 통해 “그들은 성령을 받고 주의 인침으로 완전하게 된다.”12)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 성령을 받지 않고 물만으로는 죄를 정결케 할 수가 없고 사람을 성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13)키프리아누스는 유아 세례가 유대인의 할례에 예표되어 있다고 보았다. (170.3)
 최초의 삼위일체에 대한 이단적 주장을 한 교부 아리우스(Arius)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과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성부는 성자를 창조하고 성자는 성령을 창조하였다고 하며 삼위일체를 부인하였다. 이에 대해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는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하고 성령의 위치가 더 확고하게 되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며 성부와 불가분의 관계에 었다고 말한다. 성부가 성자를 통해 일할 때 성령도 그 일에 동참한다. 그는 성령의 완전한 신성과 삼위의 동등성을 주장하였다.14) 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의 동일본질과 신성을 옹호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71.1)
 한편 갑바도기아 교부들(Cappadocian Fathers)은 성령의 신성을 다루는데 용의주도한 공헌을 하였다. 바실레이오스(Basil of Caesarea)는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함께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성령이 마땅히 신성을 공유해야 한다고 그는 명확하게 진술하였다.15) 또한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는 성령을 신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삼위의 세 본성이 하나라고 말했다. 바실레이오스는 성령을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라고 호칭하기를 주저하였지만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azianzus) 분명하게 “성령은 하나님”이라고 공언하였다.16) (171.2)
 이런 생각은 다마스쿠스의 요한(John of Damascus ca.675 ~ ca.749)을 거쳐 후대 동방교회 신학의 표준이 되었다. 그들의 공식 , 즉 “한 본질 의 삼위”(three persons but one essence)는 니케아의 삼위일체 교리를 수호하였다. 특히 성령의 위격을 교리로 수립한 공헌을 하였다. 세 사람 모두 성령의 신성을 강조했으나 성령은 성부에게서 나왔다고만 하고 성자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172.1)
 교부들 가운데 성령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삼위일체론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정립하였으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서방신학의 성령 이해의 근간이 되고 있다.17) (172.2)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사랑의 끈이며, 따라서 성령은 사랑이라 불리워야 한다는 것이다.18)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사상은 이방의 배경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마리우스 빅토리누스(Marius Victorinus)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빅토리누스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지은 찬송에서 이러한 사상을 찾아볼수 있다. (172.3)
 우리를 도우소서, 성령이여

 아버지와 아들의 끈이시여

 당신이 머물러 있을 때. 당신은 아버지이시고

 당신이 나올 때, 당신은 아들이시고

 모두를 하나로 묶을 때, 당신은 성령이십니다. (173.1)
 “Help us, Holy Spirit

 the bond (copula) of Father and Son

 When you rest, you are the Father;

 When you proceed, the Son;

 In binding all in one, you are the Holy Spirit.”
19) (173.2)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에서 강조되는 원리는 세 신격들의 공통적인 기원(common source)이다.20) 다시 말해 삼위의 동일성과 통일성에 대한 강조이다. 이러한 강조는 삼위의 본질의 통일성, 즉 하나님은 한 분이고 세 신격의 본질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는 서방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참고로 동방 교회의 전통은 삼위의 구별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173.3)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을 사랑의 끈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사랑의 개념으로 성령을 설명한 신학자가 되었다.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