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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성경에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된 희랍어 단어는 “에클레시아”인데, 이는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남녀들이 성령의 감화에 순응하여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에클레시아”, 곧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구성원이 된다. (44.1)
 신약 성경을 연구해 보면 교회는 그 맡은바 사명이나 본질에 있어서 두가지 중대한 국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첫째 국면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믿으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회를 묘사했다. (44.2)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44.3)
 사도는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불렀다. “불러냄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 대로 살고, 말씀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44.4)
 둘째 국면은 요한 일서에서 볼 수 있다. (44.5)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3) (44.6)
 신약 성경이 말하는 “사귐”, 혹은 “친교 (fellowship)”가 교회가 가진 둘째 국면이다. 언뜻 볼 때, 친교라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닌 것 같다. 사실상 우리가 안식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나 교회에서 주최하는 친목 행사에 참여하는 것 등을 “친교”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이 말하는 “친교”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 의미가 훨씬 광범위하다. (44.7)
 “친교”라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코이노니아”이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 “..을 서로 나누는 것”, “..에 참여하는 것”, 혹은 “..에 능동적으로 관련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사형은 “소통하다”, “분배하다”, 혹은 “나누어 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코이노니아”한다는 것은 안식일에 예배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나, 친목 행사에 모여 게임을 즐기는 것 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친교의 의미는 이 보다 더 심오하다. 코이노니아의 핵심 의미는 상호간에 섬기는 것이다. 친교란 상대방의 주소와 성명을 아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친교란 안식일 아침에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친교란 상호간에 소망과 꿈과 삶의 투쟁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친교란 서로 남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의뢰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친교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에서 나와서 같은 성경적 신조 하에 공동체가 된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분배하며 나누어 주며 서로 섬기는 회집이다. (44.8)
 만약 그리스도인들의 상호 관계가 이렇지 않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의도하신 원래 계획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수도 있고, 교회에 출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 친교를 통하여 참된 코이노니아를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래 의도에 맞는 교회를 실질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44.9)
 개인적 성찰과 토의
 1. 신약 시대에 “교회”라는 단어의 정의는 무엇인가?

 2.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 교회가 지닌 본질과 사명의 두 가지 국면에 관해 기술하라.

 3. 신자들이 서로 “코이노니아” 친교 관계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4. 그대는 다른 신자들과 “코이노니아” 친교를 이루고 있는가?

 5.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라면 이 친교를 통한 그대의 경험을 기술하라.

 6. 대답이 “아니요”라면 그대는 이런 친교에 참여하기를 원하는가? (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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