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7 편 구속받은 후의 성소 제36장 어린양의 혼인 잔치
 

 구속의 네 번의 축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서, 하늘은 모두 네 번의 위대한 사건을 경축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의 아기로서 지상(성소)뜰로 들어가셨을 때이다(눅 2:3~20).

  둘째,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하여 하늘 성소의 성소로 들어가셨을 때이다(시 24:7-10).

  셋째, 심판장으로 사역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 휘장 안인 지성소로 들어가셨을 때이다(단 7:9~14; 사 63:1~6). 이 모든 축제들은 하늘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사업을 진정으로 인정함을 나타내는 장엄한 표현이었다.

  넷째, 집행 유예(은혜의 시기)가 끝났을 때의 축제로, 이때까지 있었던 어떠한 축제보다도 더 웅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개최되고,1)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이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계 19:7, 신킹제임스역)는 예언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327.1)
 네 번째 축제의 배경
 이 축제를 위하여 열두 지파 가운데서 구속받은 자 모두가 보좌의 사방으로 모이게 된다. 이때에 각 무리는 자기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문을 거쳐 그 도성으로 들어간다. 어떤 형식을 사용할지라도 이 장엄한 광경을 적절히 묘사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우리 인간의 방법으로는 보좌를 중심으로 둘러싼 그 광경과 영광의 어떠함을 묘사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327.2)
 지상 성소에서 법궤가 지성소의 중앙에 놓여 있었듯이, 하늘 성소에서도 그 원형인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낙원 가운데”(계 2:7, 22:1, 2; 킹제임스역), 새 예루살렘의 중앙에 위치한다. “도성보다 훨씬 높은 곳, 찬란한 황금 기초 위에 높이 들린 보좌가 있다”(사 6:1; 각 시대의 대쟁투, 665). 그것은 시온산 위에 있다(시 48:2; 히 12:22). 보좌는 얼마나 높이 놓여 있을까?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훗날 마귀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도성을 포위하여 빼앗고자 할 때, 그들 모두에게 보일 만큼 충분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7.3)
 한 유명한 수학자가 이것을 염두에 두고 계산한 바로는, 216피트 높이의 성벽 너머로 적어도 187.5마일의 거리에 위치한 도성 중앙이 보이려면, 보좌는 적어도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와 같은 수 마일의 높이는 되어야 한다. 어떻게 계산하든 그 보좌는 매우 “높이 들”려 있고, “도성의 훨씬 높은 곳에 놓여 있음이 틀림없다.2) (328.1)
 참 보좌는 “영광스러운 보좌”이다. “(영광스러운 분의)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사 6:1)다.3) 지상 성소에서 상징적인 천사가 법궤를 완전히 둘러싸고 번쩍이는 덮개로 천장을 형성하였듯이, 하늘 보좌의 양편에는 법궤 위의 속죄소에 금으로 된 두 천사의 원형인 스랍들이 서 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높임을 받은 이 두 천사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빛나는 수호자(부조와 선지자, 357)로 보좌를 옹위한다. (328.2)
 전체적인 상황의 중심을 차지하는 보좌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심원하고 장구한 시간 가운데 좌정하여 계신다(치료봉사, 417).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편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아들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신다. 두 분으로부터 발산되는 영광이 너무도 찬란하고 굉장하여, “도성은 해(가) ∙∙∙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비추고, 어린양이 그곳의 빛이”(계 21:23, 킹제임스역) 되시기 때문이다. 별들이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낮에 보이지 않듯이, 새 예루살렘의 태양도 여기 지상보다 밝기에 있어서 “칠배”(사 30:26)로 빛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도성의 가장 먼 지역까지 비추는 강렬한 영광의 빛 때문이다. (328.3)
 보좌를 두른 무지개
 “보좌에는 ∙∙∙ 무지개가 둘러 있었”(계 4:3, 현대인)다. 보좌로부터 반사되고 퍼져 나오는 빛은 단지 휘황찬란한 한 가지 빛이 아니다. 그 빛은 모든 아름다운 색깔을 발산하며 빛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나님 보좌 주위로 퍼져 나가는 이 빛은 마치 하늘이 지상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지상의 무지개의 색깔보다 더욱 화려 찬란하다. 혹시 쌍무지개를 본 적이 있는가? 첫 무지개가 너무 밝아 그것을 둘러싼 또 다른 무지개가 그 빛을 반사하여 발하는 쌍무지개를 본 사람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고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무지개는 과연 어떠할까? 하늘의 무지개는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얼마나 많은 수의 무지개 띠를 형성하고 있을까? (328.4)
 하늘의 무지개는 보좌 위의 궁형(弓形)이 아니라 보좌를 “둘러 있”는 원형(圓形)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이토록 완전한 무지개를 결코 본 적이 없다. (328.5)
“우리의 생명은 굴절된 원,
영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황홀한 활 반쪽만
인간에게 아래쪽만 보일 뿐.

구름 저편 색들이 둥글게 만나
온전한 원(圓) 모양, 내세에 보여 줄
사랑의 언약이 완성된다 ∙∙∙ .
‘보좌를 둘러싼’ 무지개여!”

        -작자 미상
(329.1)
 무지개의 의미
 첫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인간 가족과 맺은 언약의 표시로, 그 안에는 다시는 홍수로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그분의 약속이 담겨 있다(창 9:8~17). 그와 같이 그분의 보좌 주위를 감싼 무지개도 역시 구속받은 자들과 맺은 영원한 평화의 언약을 상징한다.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사 54:8-10).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시며, 그분에게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는 보증이다 ∙∙∙ . 그분께서는 당신의 보좌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말씀을 이루신다”(교회증언 8, 23).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모든 구원의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그분의 보증이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 1:9)는 그분의 확신이다. “하늘 높은 보좌를 둘러 있는 언약의 무지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사실에 대한 영원한 증거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와 더불어 투쟁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우주에 증언하고 있다. 이것은 보좌 자체가 존속되는 한 우리에게 힘을 주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보증이다”(시대의 소망, 493). (329.2)
 “하늘에 빛의 아치를 걸어 놓고 있는 무지개는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창 9:16)의 표이다 ∙∙∙ . 구름 사이에 생기는 무지개가 햇빛과 소나기의 결합으로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위에 생기는 무지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의 결합을 상징한다”(교육, 115). (329.3)
 보좌 주위에 모임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계 4:6, 7) 네 생물이 있으며, “그들은 광택 나는 놋쇠의 색깔처럼 번쩍”(겔 1:3, 7, 킹제임스역)였다. 그들의 얼굴 모양은 이스라엘의 네 가지 깃발이 상징하는바와 같고(민 2:3~21), 에스겔이 목도한 것과 동일하다. “사자”와 같은 무리는 동쪽에 있으며, “사람의 얼굴”을 가진 무리는 남쪽에, 북쪽에는 “독수리의 얼굴”(겔 1:10)과 같은 무리가 있다. 이 무리들은 보좌와 가장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다. (329.4)
 네 생물이 보좌 주위를 둘러 감싸고 있으며, 다음으로 “이십사 보좌들이” 있어 “이십사 장로들이”(계 4:4) 앉아 있었다. 이들은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들의 이십사순번으로 상징되었다. 각 제사장은 일 년에 두 번, 한 주씩을 봉사하였다(대하 31:2). 이 무리는 “흰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계 4:4)을 쓰고 있으며, 그들 각자가 거문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 피로 사서”(계 5:8~10) 나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때, 무덤에서 해방된 무리들”(마 27:50-53; 엡 4:8)이며, “재림하실 때에 무덤에서 일어날 큰 무리의 대표자이다”(시대의 소망, 833, 834). (330.1)
 또 다른 이들이 “대표자로서”, “그의 두 번째 오실 때” 이십사 장로의 무리에 가담할 것이다. “보좌 가장 가까이”의 생물들과 첫 무리에 더하여, “한 때 사탄의 사업에 열렬했으나, 지금은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와 같은 처지에서, 깊고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구주를 따르는 자들이”( 시대의 대쟁투, 665) 가담한다. 위대한 사도가 된 박해자 바울과 예수님의 은혜로 일곱 귀신에서 해방된 막달라 마리아가 이 무리의 적절한 예증이 될 것이다. (3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