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3 부 안식일과 생명 제 10 장  안식일과 바벨탑과 하나됨
 이스라엘의 민족사는 거룩한 분리와 거룩한 통합의 역사이다. 그들의 영적 신분을 상징하는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룩한 합일의 능력이다. 분리와 적대를 극복하는 영성이다. 이 능력, 이 영성이 오늘 우리 안식일 신앙 가족들에게 필요하다. (378.2)
 안식일, 오순절의 날
 안식일은 진실로 오순절의 날이다. 안식일은 우리의 교통을 막고 우리로 흩어져 살게 한 “혀의 맺힌 것이 풀린”(막 7:35) 날이다. “맺힌 것이 풀려 우리의 말이 분명해진” 날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교통과 대화가 비로소 이루어진 날이다. 안식일은 믿는 저희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벨탑의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는”(막 16:17) 날이다. 옛 방언 곧 혼잡한 방언을 내던지고 교통의 말 하나됨의 방언을 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가 하나님의 천사의 말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날까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그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눅 1:64) 날 같은 날이 안식일이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 곧 사람을 분열시키고 혼잡시키고 흩어지게 하는 바벨탑의 방언과는 전혀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행 2:4)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 “다른 방언을”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되는”(행 2:8) 날이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과 영광을 듣는”(행 2:11) 날이다. 하나님이 그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므로”(욜 2:28)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는”(말 4:6) 날이다. 만민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날이다. 이 날이 안식일이다. (378.3)
 안식일 신앙의 길: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하나 됨의 우리 안에 돌아오게 하는 길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모으는 날이다. 바울의 말대로 “너희는” 6일 동안에 “사람의 손으로 행하는 할례를 행한 소위 할례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로부터 무할례당이라고 무시 받고”(엡 2:11) 살았다. 육일 동안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다”(12).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도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었다”(12). 그런데 안식일에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이다”(엡 1: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 되사”(엡 2:14) 육일동안 “서로 갈라졌던 것을” 안식일에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다”(엡 2:14).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육체로 폐지하신 것이다”(엡 2:15).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함께 화목하게 하시는 것이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는 것이다”(엡2:15, 16). 전에 서로 갈라지고 원수되어 흩어졌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신 것이다”(엡 2:18). 그러므로 이제 이 안식일 안에서는 그리고 이제 이 안식일부터는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한 가족이다”(엡 2:19).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엡 1:4,5). (379.1)
 이 안식일에도 우리의 화평이시고 우리의 하나됨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찾고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그는 우리 죄인들을 부르러 이 안식일에 오시는 것이다. 일백마리 양 중에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다(마18:12). 안식일은 하나님이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되찾아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시는”(마 18:13) 날이다.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위해 아버지가 잔치하는 날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시는 날이다(눅 15:24).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잃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마 18:14) 날이다. 진실로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이” 안식일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 18:14). (380.1)
 혹시 우리의 안식일 신앙에는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고 언어가 하나”이던 삶을 혼잡하게 하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서로 대립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는 바벨탑과 같은 기능이 없었는가. 우리의 안식일 신앙은 우리에게 바벨탑의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는가. (380.2)
 안식일 신앙은 거룩한 분리의 신앙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합일의 신앙이다. 거룩한 합일을 위한 거룩한 분리의 신앙이다. 거룩한 하나됨을 위하여 바벨론을 나서는 신앙이다. 우리의 안식일 신앙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우리 중에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만드는 신앙이어서는 안된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분리시키고 소외시키고 우리에게 속하지 못하게 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부단히 길 잃은 양과 한 맺힌 탕자를 양산하는 반면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말미암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고 집나간 탕자를 찾아 나서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안식일 안식으로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화평의 길, 하나됨의 길,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길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한 마리 양을 되찾아 일 백 마리 양의 우리에 있게 하고 하나됨의 우리에 속하게 하는 길에 예수님과 함께 나서게 되었다. 이것이 안식일 신앙의 길이다. (3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