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37장 그분은 배반 당하고 팔리셨습니다
  (214.1)
 창세기 37:2-50:26은 야곱의 톨레도트(תּוֹלֵדוֹת 계보)이다. 계보 이 긴 이야기의 대표적인 주인공은 요셉이다. 이삭의 톨레도트에서 그 아들들이 서로 갈등관계 가운데 있다가 극적인 화해를 했던 것처럼 야곱 집안의 이야기(톨레도트)도 야곱의 아들들, 요셉과 그 형제들 사이에 갈등이 전개되다가 극적인 화해를 한다(창 45, 50). (214.2)
 거류하던 가나안 땅, 나그네로서의 삶이 끝날 때가 올 것이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세기 37:1-2).
(214.3)
 에서의 톨레도트(창 36:1- 37:1)는 야곱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술하면서 끝을 맺는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가있는 동안 가나안 땅에서 든든한 기반을 가졌던 에서의 가족은 가나안 땅 밖에 있고 멀리 떠났던 야곱의 가족이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부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일시적으로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약속에 대한 충만한 성취는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고생을 한 후에 큰 재물을 이끌고 그 나라로부터 나온 출애굽 후에나 성취될 것이다(창 15:13-14). 야곱이 정착한 가나안을 떠나야 한다. 그 일은 역설적이게도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미움을 받아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들어가는 일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214.4)
 거류하던 땅으로 번역된 ‘마고르’(מָגוֹר)는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셉이 곡식 단에 관해서 꾼 꿈(창 37:6-7)은 이스라엘이 유목 생활을 끝내고 농사를 짓는 정착민으로 약속의 땅에 정착할 것을 예고한다.1 나그네로서의 삶이 끝날 것이다. 그들은 약속의 땅의 주인이 될 것이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만으로는 꿈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요셉이 존경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메시아께서 오실 가나안 땅으로 이 민족은 돌아가야 한다. 그 땅에 주인으로 정착하여 농사짓고 살아야 한다. 그는 이 사실을 그의 형제들에게 상기시키며 마지막 눈을 감았다(창 50:24-25). (215.1)
 야곱의 톨레도트, 형제의 갈등과 화해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창세기 37:4).
(215.2)
 갈등의 씨앗은 야곱에게 있다. 편안하게는 샬롬(שָׁלוֹם) 평화이다. 야곱 집은 평화가 깨지고 불화가 깃든 집이다. 이 집의 평화가 회복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류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섭리로 인도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샬롬을 회복시키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용서의 정신을 나타낸 피해자 요셉이다. 마치 이삭의 톨레도트에서 피해자 에서가 야곱을 용서한 것과 같다. 온 인간 가족의 샬롬을 궁극적으로 회복하실 평강의 왕이신(사 9: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풍부한 표상이 본 장에서 발견이 된다. (215.3)
 요셉, 예수의 표상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창세기 37:2-4).
(216.1)
 ‘모든 나라’(כָל־הָאָרֶץ 콜—하아레츠, all countries, 창 41:57 NKJV) 구한 요셉은 전 세계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기에 매우 적절한 인물이다. 본 장에서 요셉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216.2)
 요셉은 목자였다.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창 37:2). 야곱 집안은 유목민이었으며, 요셉은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였다. 목자는 왕과 지도자(사 44:28; 렘 6:3; 49:19), 복음의 봉사자(렘 23:4)를 가리키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시 80:1). 하나님의 백성은 한 무리의 양과 같으며(시 77:20),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다(겔 34:23; 요 10:14; 히 13:20). (216.3)
 요셉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창 37:3).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와 그분이 받으셔야 할 또 다른 침례인 십자가의 짐을 지시는 것을 위해서 변화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 17:5)라고 하셨다. (216.4)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형들은 요셉이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고 아버지가 요셉만 채색옷을 입히고 그가 형들에게 절 받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미워하여 죽이고자 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창 37:4-5, 11, 19-20).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요셉은 미움을 받았고 죽음에 몰렸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요셉의 형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어둠에 속했기 때문에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요 1:5, 11). 그들의 사악함은 주님의 선하심과 뚜렷하게 대조가 되었다. 주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이 시기 때문임을 알았다(막 15:10). (216.5)
 요셉은 형제들 위에 존귀한 자가 되었다. 요셉은 곡식단과 해달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통해 형제들보다 존귀할 것이 예언되었고,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이 꿈은 성취되었다(창 37:6-10).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만물의 으뜸이 되셨고(골 1:18), 만물은 그분의 발 아래 복종하게 되었다(엡 1:22; 히 2:8). 그러나 요셉의 형제들은 미움을 갖고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창 37:8) 말했으며, 왕위를 받으려고 떠난 귀인의 비유에서 그의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황제에게 사신을 보냈다(눅 19:14). 그 귀인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 백성은 유대민족을 대표한다. (217.1)
 요셉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았다. 야곱은 요셉을 세겜에서 양떼를 치는 형들에게로 보냈고 요셉은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였다(창 37:12-14).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나를 보내신 이’라고 했다(마 10:40; 막 9:37, 48; 10:16). 특별히 요한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자의식이 매우 강하다.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예수님은 죽기까지 충성스럽게 아버지의 뜻을 행한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예수께서 순종하기 위해 성육신할 것에 대해 시편은 예언했다.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7-8. 인용, 히 10:7). (217.2)
 헤브론(동맹, 교제)에서 세겜으로 감.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창 37:14). 요셉이 출발한 헤브론은 동맹, 교제의 뜻을 갖고 있으며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화를 표상한다(요 17:5, 24). 요셉의 목적지 세겜은 야곱이 장막을 쳤고(창 33:18)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수가이다. 예수님은 수가의 우물 곁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이신 그분을 소개하였다(요 4:4-5, 13-14). (218.1)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모의하였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였다(창 37:18).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형들과 양떼들이 모두 잘 지내는지를 파악하려는 선한 동기로 요셉을 보냈다(창 37:13). 들판의 형들을 찾아갈 때 요셉은 후에 다윗이 형들을 방문할 때 했던 것처럼 먹을 것을 갖고 갔을 것이다(삼상 17:17-18). 그들은 요셉이 갖고 온 떡을 나누어 먹으면서 요셉이 죽기를 기다렸다(창 37:25). (218.2)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마 26:3-4).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온 땅의 이목이 그분에게 집중될 때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했다(요 11:53; 요 12:10). 생명의 떡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요 6:35, 48) 그들에게 철저하게 배척을 당했다. 죽음만이 그분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