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노동이 보장하는 진솔하고 담백(淡白)한 행복인 것이다. 올바른 신앙과 적절한 노동, 보장된 건강, 그것은 “즐거운 나의 집”을 짓는 가장 귀중한 초석들인 것이다. (320.2)
가정은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계신 곳이 가장 큰 매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시온의 넘치는 행복을 경험할 뿐 아니라 ∙∙∙
(320.3)
 오랜 신병(身病)에 시달리던 왕은 궁중의 술사(術士)가 일러준 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벗겨 입으면 효험을 보리라는 비방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왕의 치병을 위해 속옷을 벗어 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장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사신들은 할 수 없이 시골로 찾아나섰다. (320.4)
 냇물이 산허리를 도는 기슭에 소를 매어 둔 채 콧노래를 부르며 엉덩춤을 추고 있는 나이 지긋한 농부를 만난 사신은 다구쳤다. “당신은 행복하시오?” “행복하다 뿐입니까.” “무엇이 그리 행복하시오?” “보시오. 집에는 날 기다리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몸 성한 자식들이 탈 없이 자라며, 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가족들이 끼니를 건너지 않는 데다가 소마저 저렇게 풀을 잘 뜯어 살이 찌니 세상에 무엇이 더 아쉬운 게 있겠습니까?” “좋소. 그럼 어서 당신의 속옷을 벗으시오.” 겸연쩍게 웃으며 낡은 베 적삼을 올려 붙인 농부는 맨 살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나는 본디 속옷이란 건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벗어 줄 속옷이 없는 적나라한 행복이다. (320.5)
 즐거운 나의 집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 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128편 3, 4절). (322.1)
 석양이 지평선에 걸리고 땅거미가 길게 드리울 때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에 당도한 부부는 곧 이어 마련된 저녁상에 둘러앉는다. 지주(地主)에 기대야 설 수 있는 연약한 포도나무처럼 남편을 하늘처럼 믿고 의지하는 다소곳한 아내, 그는 소담스러운 포도송이 같은 자식들을 주렁주렁 거느린 가정의 여왕(女王)이요. 집안의 태양, 곧 안 해인 것이다. (322.2)
 그러나 밥상에 둘러앉은 탐스러운 자식들은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의 한낱 가지들이 아니라, 어엿이 제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고 있는 될성부른 어린 감람나무들이다. 자녀는 부모의 종속물이 아니라 독자성이 부여된 사랑의 분신(分身)인 것이다. (322.3)
 식탁에 둘러앉아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달게 먹는 자식들, 한날의 수고를 말끔히 잊고서 대견한 듯 아내와 자식들을 번갈아 둘러보는 가정의 띠(house band)가 되는 든든한 남편(husband), 세상에 더 부러울 아무것이 없어 시종 희색이 만면(滿面)한 화안한 얼굴로 눈웃음을 뿌리는 인자한 여왕 같은 아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즐거운 나의 집”의 그림 같은 정경(情景)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22.4)
 “가정은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계신 곳이 가장 큰 매력이 되어야 한다”(그늘 없는 가정, 19). (323.1)
 영원한 귀향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128편 5, 6절) (323.2)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시온의 넘치는 행복을 경험할 뿐 아니라, 그러한 가정 때문에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곧 예루살렘은 그 축복을 목도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가정들로 이루어진 교회와 사회 그리고 마침내는 이스라엘 곧, 온 나라까지도 하나님이 중심이 된 이 경건하고 건전한 가정들이 흘러낸 최상의 축복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대대(代代)로 이어져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미치는 가장 확실한 행복의 금고리요 “즐거운 나의 집” 복락원(福樂園)을 찾아가는 나그네의 사무치는 영원한 귀향(歸鄕)인 것이다. (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