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8장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 III.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
 여러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모든 희생 동물들의 피를 성소에 뿌릴 수 없었다. 평민이 희생 동물을 성전으로 끌고오면, 제사장이 그 동물의 피의 일부를 성전 뜰에 있는 큰 제단에 뿌렸다. (165.8)
 그 다음에 그 제사장은 그 동물의 일부분을 삶아서 먹었다. 제사장은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처럼(물론 상징적인 뜻으로만) 자신의 몸으로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것이다(레 10:17). 제사장이 자기 자신을 위해 다시 희생을 바칠 때는 이제 자기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대표하는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 갔다. 이와같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고백하고 용서받은 죄가 성소 안에 간직되었다. (166.1)
 피의 “흘림”“뿌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 또는 “대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마땅히 강조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9장 22절“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피 흘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징적인 의식이 완벽하게 되기 위해서는 제사장에 의해서 피의 일부가 제단 중 어느 하나에 뿌려져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단지 피 뿌림만이 언급되고 있는데, 출애굽기 30장 10절이 그 한 예이다(공동 번역 참고). (166.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구속(救贖)의 행위와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에 대하여 고마와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늘 성소로 피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히 9:12)을 깨닫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는다. (166.3)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마련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서 4장 25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로마서 5장 10절에 말하기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하였다. (166.4)
 히브리서 9장 12절“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다. (166.5)
 이와같이,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만큼이나 절대적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치러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신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에서 이행하고 계신 대제사장 봉사 중 어느 것이 우리의 구원에 더 중요한가 하는 질문은 마치 제트 비행기에 있어서 엔진과 날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질문과 다름이 없다. 엔진과 날개는 각각 다른 면에서 중요하다. 둘은 모두 교환이 불가능한, 절대적이며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하늘 봉사 즉 그의 타밋은 십자가와 똑같이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166.6)
 그리스도의 타밋의 우월성
 레위 제사장들의 봉사에 내포된 상징이 제아무리 풍부한 확신과 영적 통찰을 제공해 준다 해도, 그 자체로서의 실질적인 가치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 10:4). (166.7)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강조하였다. 예수님은 구약의 제사장들보 다 더 위대하시다(히 7:11~16).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전 봉사의 여러 의식들을 지시받은 모세보다도 위대하시다(히 3), 예수님은 더 나은 약속과, 더 나은 언약과, 더 나은 회망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다(히 8:6; 7:19). 예수님은 더 나은 성막에서 봉사하시고 계신다(히 9:11). 그리고, 그분은 그 무엇보다도 말할 수 없이 탁월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 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 하셨도다” 하셨다(히 10:5). (166.8)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이렇듯 황소와 염소의 죽음보다 말할 수 없이 탁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반복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9장 25~28절은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번번히 당신 자신을 바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그분은 이 역사의 절정에 나타나셔서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를 없이 하셨다. 사람에게는 한 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치이며, 그 뒤에는 심판을 받는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두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 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당신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167.1)
 그리스도는 희생 제물이 되어서든지 또는 나이가 많음으로 해서든지 다시 죽는 일이 없다. 때문에, 그의 제사직 직분은 그 계속성에 있어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것이다. 히브리서를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읽어 보면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저희가 모두 죽게 마련이어서 제사장 직분을 계속 맡아 볼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시는 분이므로, 그분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것이다”(히 7:23, 24). (167.2)
 이와같이,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167.3)
 그리스도와 새 언약
 우리는 바로 전에 예수께서 “더 좋은 언약”을 주셨다는 기사를 읽었다(히 7:22). (167.4)
 새로운 언약이라고 알려진(히 8:10~12 ; 렘 31:31~34) 이 “더 좋은 언약”은 금궤 속에 감추어진 복음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처음으로 아담에게 약속 하셨다(창 3:15을 보라).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 약속을 여러 차례에 걸쳐 표현을 다르게 하면서 반복하셨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비준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제사장 직분의 필수적인 것으로서 이행되고 있다. (167.5)
 다니엘과 거의 동시대의 선지자들인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새 언약에 대해 여러 차례 기술하였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새 언약은 값으로 셈할 수 없이 고귀한 세 개의 선물을 제공하였다. 즉

 (1) 모든 죄의 용서,

 (2) 변화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

 (3)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되는 시민권이 그것이다.

 에스겔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다. (167.6)
(1)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2)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며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리라∙∙∙
(3)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5~28).
(167.7)
 예레미야는 꼭 같은 이야기를 다음과같이 배열하였다. (167.8)
(2)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그 법을 기록하리라
(3)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1)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3~34).
(1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