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8장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 III.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
 필자의 수업을 수강하는 한 학생 중에 테드라는 청년이 있었다. 꽤 총명한 청년인데 어여쁜 처녀와 결혼했다. 그가 극동 지역의 선교사로 떠난 후에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나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극동 지역의 선교 현황과 그의 가족에 관해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 보니, 그는 지금 홀몸이고 선교부의 요청에 의해 본국에 귀환되어 있었다. 그는 다른 여자와 현명치 못한 애정 관계에 빠져 있었는데, 현지의 교인들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아내 에스더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에스더는 용서하지 않고 선교부 책임자와 의논하여 남편을 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녀들과 일단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에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158.1)
 그런데, 에스더는 미국으로 돌아오자 마음을 바꾸어 남편을 용서하였다. 그러나, 테드가 나의 연구실을 찾아왔을 당시만 해도 사태는 대단히 비관적이었다. 테드는 선교지에서 미국으로 돌아갈 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을 나에게 말했다. 그는 아내로부터 문밖 거절을 당하고는 어떤 사람의 후원 현관에 있는 침대에서 회한의 밤을 세웠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잠을 설치다가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더 이상 이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해할 길을 찾아야 하겠다고 작정하였다. 그는 성경을 움켜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애원하였다. “부디 성경을 펼 때 손끝에 적절한 성경절을 집히게 하여 그것으로서 나에게 말씀하소서” 하고. (158.2)
 그는 이런 방식이 성경을 연구하는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좀처럼 성경을 펼 염두가 서지 않았다. (158.3)
 무의미한 성경절이나 또는 불길한 구절이 펴질지도 모르고 또 하나님이 그를 거부하는 내용의 성경절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손가락으로 성경절을 찾은 후 두려운 마음으로 눈을 떴다. 손가락 끝에 있는 성경 말씀은 이와 같았다. “내가 저희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의 죄를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히 8:12). (159.1)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영어 흠정역 성경을 펴 히브리서 8장 12절 옆에 테드의 이름을 적었다. 내가 사는 날 동안 이 성경절을 테드의 경험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159.2)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피해 달아날 곳이 없다는 사실을 노래하였다. “비록 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오른손이 나를 인도하시며”(시 139:9, 10). (159.3)
 필자는 테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피해 사용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159.4)
내가 주님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은 가까이 계시네
내가 비틀거릴 때, 내가 겁에 질릴 때, 언제나 나를 붙들어 주시며 용기주시네
내가 그를 아쉽도록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8
(159.5)
 테드의 경험 이야말로 다니엘 8장의 중심에 나오는 중요한 히브리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그 중요한 단어는 다름아닌 타밋(tamid)이란 것이다. 영어 개역 성경에는 “계속적인 번제”로 번역되었다. 즉 그것(작은 뿔)이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계속적으로 드리는 번제(즉 타밋 tamid)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다(11절). (159.6)
 다니엘 8장 13, 14절에 나오는 타밋은 상징적이다. “타밋”이란 단어와 그 단어의 포괄적 의의를 이해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159.7)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타밋을 기원전 168년에서 165년까지 안티오쿠스에 의해 중단되었던 아침과 저녁의 제사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을 왕국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어떤 임금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같은 구절에 나오는 성소라는 단어도 상징적으로 이해되며 유대의 성전에 국한하여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니엘 2장7장에 나오는 금속들과 짐승들은 모두 상징들로서,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세계 제국들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니엘 8장 13, 14절타밋도 상징이다. 타밋은 고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루 두 번씩 드리던 제사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풍부한 어떤 실재를 대표하고 있다. (159.8)
 사실 타밋이란 말은 “계속적인 번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밋이란 단어는 “계속적인”이란 뜻이며, 이 구절에서는 계속적인 어떤 것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번역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 구절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게 잘 부합하게 하느라고 “번제”라는 어휘를 추가시키곤 해 왔다. (159.9)
 테드 형제의 경험이나 이와 유사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경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대신에 다니엘 8장의 상징적인 타밋 즉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대제사장의 봉사를 바라보게 한다. (159.10)
 그리스도의 사제직(司祭職)의 연속성
 신약 성경에 있는 히브리서의 기별은 여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시라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절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159.11)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8장 1, 2 절에 명료하게 기술되었는바 즉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된 장막에서 봉사하는 자이다. 이 장막(혹은 성막)은 주님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하였다. (160.1)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봉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7장 21 ~25절에 강조되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의 계속적인 봉사는 구약의 레위 족 제사장들에 의한 비연속적인 봉사와 대조되었다. 즉, 레위 족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나, 예수님께 서는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으니 (160.2)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시고
이로써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이전의 레위 족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았던 것은 그들로 죽게 마련이어서 한 사람이 계속해서 사제 직분을 이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계속해서 사시는 분이므로 그의 사제 직분도 영구하다. 그러므로, 당신(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을 그가 언제나 구원하실 수가 있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히 7:21~25 공동번역).
(160.3)
 구약 성경에 있는 타밋
 히브리서 7장 21~25절에 나타난 바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제사장 직분과 레위 제사장들의 비연속적인 제사장 직분의 대조는 대단히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레위 제사장들의 봉사는 하나님의 의해 계속적인 것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그 계속성은 어디까지나 레위 제사장들의 봉사가 연약한 인간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란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타밋이란 단어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 구약의 봉사의 연속성에 대해 성경이 기술하고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