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 단신으로 울면서 태어난 인간은 어차피 순간순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절실한 도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며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시편은 대답하고 있다.

 — 시편 121편(305.1)
 산이 거기 있기에 산을 향하여
 멀리 캐나다에 계시는 어머님이 수차례 전화를 하셨다. 여러 곳을 거치는 한 달 이상의 여행 일정을 되도록 줄이고 경비가 더 들더라도 직행하는 항로를 택하여 출입을 안전하게 하라는 근심에 가득 찬 당부셨다. 아무런 힘은 없고 근심만 많아지신 팔순에 가까운 어머님의 노심초사(勞心焦思)가 일정에 앞서 일찌감치 시작 되었으니 여행길에 근심이 하나 더 보태진 셈이다. 참으로 기약된 안전(安全)이 없는 세상이다. 사람답게 사는 일도 어렵지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생명을 부지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세태이다. (305.2)
 살수록 사는 일이 힘겹고 갈수록 인생길이 평탄하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은 비단 현대를 사는 고달픈 사람들의 탄식만은 아니다. 날 때부터 혈혈단신(子子單身)으로 울면서 태어난 사람은 순간순간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찾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필요한 도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누구에게서 얻을 수 있는가? 인생의 막다른 길,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수없이 지나며 살아온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306.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편 1, 2절). (306.2)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도움은 언제나 높은 데서 이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낙망(落望)은 고개를 떨구고 도움이 올 수 있는 높은 곳 바라보기를 그치게 될 때 겪는 일이다. 그러므로 희망(滯望)을 가지려면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쳐들고 도움이 올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306.3)
 그러나 하늘은 쳐다보기에 너무 높고 넓고 공허(陸虛)하여, 구체적이고 긴박한 도움이 당장 필요되는 애타는 마음과 간절한 시선(視線)을 쉽사리 흡수하지 못한다. 허공(虛空)을 응시(凝視)하는 것이 희망(希望)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희망이 구체적이고 확실할 때 소망(所望)이 되는 것이다. 산은 너무 높지 않아서 바라보기에 좋고, 언제나 구체적이어서 바라볼 때 막연(漢然)하지 않아 더욱 좋다. 산은 꾸밈새 없이 언제나 한아름 가득히 거기에 그렇게 있어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산은 서성거리지 않고 언제나 기다리는 몸짓을 하고 골짜기처럼 깊이 주름진 가슴을 열고 그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어 아무 때나 그리로 달려가 안길 수 있어서 좋다. (306.4)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서 도움을 찾았다. 생명이 위협을 당할 때 산에서 몸을 숨길 피난처를 찾았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4장 16절). 사람이 무서워지고 세상이 두려워진 사람은 산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걸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태산같이 믿었던 미국과 연합국에게서 등돌림을 당한 채, 이라크의 폭군 사담 후세인의 정부군에게 무참한 보복 살육을 당한 수백만의 불쌍한 쿠르드(The Kurds)족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도 이라크 북부의 험준한 산들 뿐이었다.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으로 떨면서 그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금언(金言)을 새삼스럽게 반추했다. “쿠르드에게는 산 밖에 친구가 없다” (The kurds have no friends except the mountains. Newsweek, 1991 년 4월 15일자). 차갑고 변덕스러워 믿을 데 없고 바라볼 데 없는 세상에 그래도 태고연(太古然)한 산이 있어 언제나 믿고 찾아갈 수 있으니 그만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307.1)
 산이 있는 책 시 편—태산 같은 하나님
 시편은 산(山)이 있는 책이다. 깊은 골짜기가 있는 산들을 품고 있는 깊고도 높은 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급할 때 시편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았고 괴로울 때 거기서 위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전전긍긍했던 다윗은 주름진 광야를 치맛자락처럼 두른 어머니 품 같은 산들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될 기약을 다짐했던, 아버지 같은 선지자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그래도 다윗은 의지하고 바라볼 데가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사무엘마저 어지러운 나라와 외로운 다윗을 뒤에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307.2)
 하늘이 무너진 듯 암담해진 다윗은 한층 짙어진 불안과 초조를 누를 길 없어 더 높은 곳, 저 이집트 접경 해발 2,500피트의 산지(山地)인 바란 광야로 거처를 옮겼다(사무엘상 25장 1절). 인간 가운데는 이제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된 때 다윗은 또다시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장엄하고 믿음직스러운 산을 지으신 태산(泰山) 같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군급해진 인간에게 필요한 절박한 도움이 산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을 지으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만 있음을 산을 바라보며 다시 통감한 것이다. 인간으로 이 땅에 사시며 참으로 고달픈 나날을 보내시던 주님도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누가복음 6장 12절)셨다. (308.1)
 아랍 사람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이므로 저희[이스라엘]가 우리보다 강하였”(열왕기상 20장 23절)다고 했다. 그러나 산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을 지으신 태산 같은 하나님께 힘과 안전이 있는 것이다. (308.2)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25편 1, 2절). (308.3)
 잠자지 않는 산—피곤치 않은 인생 불침번
 동방의 회교국 군주(Sultan)에게 자신의 도적맞은 소유를 보상해 달라는 가난한 부인이 찾아왔다. “왜 소유를 도적 맞았는가?” “제가 잠자는 동안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왜 잠들었는가?” “저는 군주께서 깨어 계시는 줄로 믿고서 마음놓고 잤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은 군주는 즉시 도적맞은 소유를 모두 보상해 주라고 명령했다. (309.1)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失足)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편 3, 4절). (310.1)
 인생길은 언제 어디서나 험하고 고달픈 길이다. 그래서 밤의 검은 커튼이 둘러쳐지면 사람은 쉬기 위하여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야 고통도 잊어버리고 근심과 걱정도 그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127편 2절). 그러나 모처럼 쉬기 위하여 평안히 잠자는 시간은 오히려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마음놓고 잠자는 허술한 시간을 틈타 생명이나 재산을 빼앗아 가는 잠자지 않는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의 밤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인가? 민생치안이 허술한 도시의 밤은 얼마나 안전하지 못한가? 우리가 피곤하여 쉬려고 잠자는 동안 잠자지 아니하고 우리를 지켜 줄 태산 같이 믿을 수 있는 인생 불침번(不寢番)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 (310.2)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잠자지 않는 산처럼,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잠이 필요 없고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때문에 잠시도 졸 수 없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피곤함이나 무관심으로 잠들거나 졸지 않고 깨어 계시는 (sleepless watching) 하나님은 험하고 거친 인생길을 걷는 당신의 자녀들의 발걸음이 결코 실족(供足)치 않도록 지키실 수 있다. 정상(頂上)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가파른 길이다. 세계의 높은 산들을 오르는 길 가운데 가파르지 않고 빙설(氷雪)로 덮이지 않은 등반길이 있는가? 만년 빙설이 덮힌 크레바스(crevasse)에서나 절벽 등반길에서의 단 한 번의 실족(失足)은 죽음을 뜻한다. 실족사(失足死)인 것이다. 높이 오를수록 위험한 등반길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한 길도 힘든 길이다. 그러나 오늘도 가장 높은 시온산을 오르는 하늘길의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지키시는 불침번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가? 그래서 121편은 매년 절기를 따라 시온산의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여러날씩 걸리는 위험한 길을 걸어야 하는 순례자들의 노래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310.3)
 불철주야 너를 지키는 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傷)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害)치 아니하리로다”

   (121편 5, 6절). (3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