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6 편 성소 속의 교회 제33장 지성소 교회-남은 무리 교회
 그 안에는 “고기가 심히 많으”며,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물고기)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리고 “어부가 ∙∙∙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다. 생동하며 항상 깊은 경험을 가진 교회는 바로 그대로, “심히 많은” “아주 심히 많은 무리에게”, 치료하는 생명수를 가져오는, “사람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겔 47:8-10).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죄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생명과 치유를 베풀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그분의 목적이다. (305.1)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이 생명을 주는 경험을 갖는 것은 큰 특권이다. 우리가 만약 “나를 따르라”는 초청에 반응하여, 예수님과 함께 뜰의 번제단으로부터 지성소의 법궤까지 모든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생명강의 물과 같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날마다 접촉하는 자들이 “물들이 성소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에, 생명을 주는 치유의 영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305.2)
 우리의 경험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겨우 발목 깊이, 겨우 뜰의 경험밖에 되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의 치료제가 있는데, 그것은 성소의 진설병상금 분향단 그리고 등대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생명의 말씀을 단순히 읽고 있는가 아니면 성경절과 성경절을 비교하며, 보물을 찾아 파 내려가듯이 목적이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 보좌에 도달하기 위하여, 습관적인 언어로 하는 형식적인 반복이 아닌 열렬하며 이기심 없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죄의 아픔에 눌려 있는 자의 실제적인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가? 지혜로운 처녀와 같이 신랑을 기다리는 우리의 등불에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웠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성화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허리 깊이 강물의 경험에 근접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언의 신은 그리스도인 성장에 있어서 이 경험을 얻도록 우리를 도울 것이다. (305.3)
 남은 무리 교회를 위한 늦은 비
 “비 ∙∙∙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상징으로, 요엘 선지자는 교회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업을 지적하고 있다(욜 2:23). 는 히브리 교회 사업에 동반되었다. 이른비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이어 오순절 날에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졌으며, 늦은 비는 남은 무리 교회를 위한 경험이다.10) 그것은 세상의 마지막인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추수를 위해 곡식을 무르익게 한다(마 13:39). (305.4)
 늦은 비는 두 번째 휘장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내릴 수없다. 그리스도의 교회 세대에게 주시는 부르심도 마찬가지이다. (305.5)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은 자들은 지금 그분께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두번째 휘장 안의 남은 무리 교회로 모일 것이다. 이때에 “그분께서 그 일을 끝마치시고 의 안에서 단축시키리니, 이는 주께서 땅 위에서 한 일을 속히 이루실 것”(롬 9:28, 친킹제임스역)이니,11)지체할 수 없는 것이다. 1844년에 시작된 남은 무리 교회 사업이 일백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할지라도, 히브리 교회의 이천오백 년과 그리스도 교회의 일천팔백십 년과 비교해 볼 때, 이것은 이 지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마치시기에 정말로 “짧은” 기간이다. (306.1)
 교회 안의 “큰 흔들림”
 그리스도의 사업이 하늘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동안, 특히 종말이 가까워지고 교회가 지상의 순렛길의 끝에 가까울 때, 교회는 특별한 마지막 흔들림의 시기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 시기에 어떤 무리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교회의 모든 세대 안에는 충실하지 않은 자로 판명된 자들이 항상 존재해 왔다. 히브리 교회에는 고라, 다단, 아비람등이 있었고,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데마 등이 있었다. 처음부터 남은 무리 교회는 유사한 영향으로 고통을 당하였다.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교회내의 흔들림은 더욱더 크게 선포되어질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내가 ∙∙∙ 체로 곡식을 체질 하는 것같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집을 체질 할 것”(암 9:9, 신킹제임스역)이라고 말하였다. 또 에스겔 선지자는 그것을 “큰 지진이12) 이스라엘 땅에”(겔 38:19) 있다고 하였다. 이 예언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세대를 언급할 때도 우리는 “큰 흔들림”, 즉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릴 때”(교회증언 6. 332; 초기문집, 50)라고 읽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306.2)
 고대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중에 무관심하거나 주의성이 없던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지는”, 이스라엘로부터 흔들려 나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막 하나님의 집의 심판이 끝나려고 하는 원형적인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그날은 표상에서 모든 진실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삶에서 어떤 숨은 죄를 찾기 위하여 그들의 “영혼을 괴롭게” 해야 했던 때였다. 남은 무리 교회의 위험은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어 있다. “재물의 신은 많은 사람의 우상이다.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은 ∙∙∙ 명망과 세속적 명예는 ∙∙∙ 이기적 안락의 생애와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의 우상이 된다”(정로의 계단, 44).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막 4:19)는다고 말씀하셨다. (306.3)
 진지한 말씀 연구의 시간을 빼앗겨 질식하지 않도록,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시간과 생각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주의하자. 이러한 교회의 상태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내 백성’ 중에 ‘죄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흔들림의 결과는 무엇인가? “내 백성 중의 모든 죄인, 곧 재앙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며, 우리보다 앞서 가지 못하리라 하는 자들은一죽으리라”(암 9:10, 신킹제임스역). (307.1)
 이 흔들림의 과정에서 “구름과 같은 쓰레기가 우리가 충실한 밀이라고 보았던 곳에서부터 바람에 날아갈 것이”나, “그럼에도 가장 작은 알갱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암 9:9). “찬란한 광채로 인해 존경해 온 많은 별들이 흑암 속으로 사라질 것”인데, 이는 “성소의 장식만을 취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지 않”(교회증언 5, 81)았기 때문이다. 심판 때 그들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 내게서 떠나라”(마 7:22, 23, 신킹제임스역)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장면인가! (307.2)
 성소 연구, 능력을 줌
 이미 앞에서 연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남은 무리 교회에게 철저하고도 진지한 성소 연구의 필요를 반복해서 요구하셨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성소가 좁은 길에서 교회를 유지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도록 지켜 주는 구속의 계획의 근거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소의 진리는 우리를 기만과 파괴적인 오류로부터 보호해 준다. 성소의 진리를 잊어버릴 때, 교회는 정로로부터 벗어나 그 길을 잃게 된다. (307.3)
 히브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 사업에 힘을 부여해 준 것은 성소였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조직되었을 때도 그랬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위하여 일한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원을 표상으로 제시하는 성소로부터 확신과 회개시키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 교회 세대들이 성소에 대한 영적 중요성을 잊었을 때에 그들은 힘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다음 세대인 남은 무리 교회가 잊어버린 진리를 찾아내어, 그분의 사업을 마치도록 부름을 받았다. (307.4)
 당면한 성소 연구의 부흥
 남은 교회와 더불어 시작된 “성전” 혹은 성소의 연구는 그 당시의 세상에 꼭 필요한 진리인 심판 기별에 풍성한 빛과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그 뒤로 여러 해가 지나면서, 성소 연구를 다소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성소는 “정당한 위치로 회복되어야 한다”(단 8:14, 히브리어). 이 회복을 위하여 할당된 시간이 지금 마치려 한다. 그 시간에 대하여 선지자는 그날에 내가 다윗의 쓰러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고, 그 무너진 곳을 막으며, 내가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내가 그것을 옛날과 같이 건축하”(암 9:11, 신킹제임스역)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307.5)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 앞에서 행한 그의 호소에서, “다윗의 쓰러진 장막을 다시 건축하고, 내가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건축하며 내가 그것을 세우리니 ∙∙∙ 모든 이방인들로 하여금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행 15:16, 17, 신킹제임스역)고 하며 이 예언을 언급하였다. 이 말씀이 성소가 표상하는 분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남은 무리 교회에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종말 전에 하나님 백성 가운데 성소 연구의 부흥이 일어날 것을 가리켜 주는 것이 아닐까? 이 마지막 예언이 성취될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구속 사업이 마칠 시간이 임박한 때이기 때문이다. 성소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하늘 대제사장의 사업을 더욱 분명히 바라보고, 영원한 실체의 가치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308.1)
 성소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를 여는 열쇠”(교육, 126)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속의 계획을 성소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성소 연구를 통해 성경 전체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며 그 의미도 풍성해진다. 마치 성경을 처음 접한 것처럼 매혹적인 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때에 부와 평판, 명예와 이기적 안일에 대한 욕망은 점차적으로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할 시간을 냄으로 더 이상 말씀이 우리 안에서 질식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 자신이 아니라 알곡으로부터 분리된 가라지 같은 이 세상의 욕망이 밀려날 것이다. 성소의 연구는 그리스도인 경험에 활력을 주며, 복음 사업이 끝나려 하는 이때에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 줄 것이다. (308.2)
 성소 연구의 부흥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을 어떤 방법으로 증진시키는가? “저희로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 9:12). 영혼을 수확하는 이 마지막 추수 때에는, “그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암 9:13) 잇게 된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포도원에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자들이 한 낮의 뜨거움을 견디며 수고한 사람들의 뒤를 잇고, 그들의 연합된 노력으로 곡식을 빨리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큰 변화가 미구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것이고, 마지막 동요가 신속히 이루어질 것이다”(교회증언 9, 11). (3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