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6 편 성소 속의 교회 제33장 지성소 교회-남은 무리 교회
 짐승을 경배함
 셋째 천사의 경고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 대한 “경배”를 반대하는것이다. 경배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은 경배를 ‘하나님께 거룩한 영광을 표하는 것, 종교적 예배로써 존경의 행위’라고 정의한다.3) 요한계시록 14장의 삼중 기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이며, 짐승에게 경배하지 말며 그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경고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그분의 “인”으로 만드셨으며, 짐승도 그의 “표”나 인으로써 위조의 안식일을 주었다.4) 여기에서 짐승은 하나님의 안식일,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에 그분을 경배하는 대신에, 그의 위조한 안식일에 종교적인 예배로써 그에게 경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301.4)
 그는 창조주로서 하나님만이 홀로 응당 받으실 영광을 그에게 바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표시로, 그의 “표”“인”을 받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또는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4, 신킹제임스역)였다. 그러므로 진실한 안식일 준수는 모든 세속적인 직업의 일로부터 단지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짐승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께 경건한 예배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302.1)
 하나님 대신에 짐승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두렵고 중대한 경고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계 14:9, 10). (302.2)
 짐승을 경배한 자들에 대한 이 무서운 선고 후에, 곧바로 특별한 축복이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계 14:13, 킹제임스역)에게 선포되었다. 이제부터라는 말은 이 기별이 선포된 그 시간부터이다. 왜 “이제부터”인가? 저들이 지금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지만,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죽도록 충성한 것에 대한 특별한 보상으로, 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보고, 그분의 “평화의 언약”(각 시대의 대쟁투, 637; 초기문집, 285)을 듣기 위하여 다니엘 12장 2절의 특별 부활에 참여할 자들이기 때문이다.5) 그들은 또한 마지막 때의 많은 시련과 박해를 피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 킹제임스역).6) (302.3)
 교회 안의 예언의 신
 다양한 “은사”가 교회 안에 있었지만(엡 4:8~14; 고전 12:1, 4, 8~10), 집행 유예 기간 동안에 교회에 주어진 예언의 신의 선물보다 더 귀중한 은사는 없었다.7) 히브리 교회—뜰의 교회—에는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그 외의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리스도 교회—첫 휘장 안으로 들어간 AD 31년 이후의 교회—에도 바울, 베드로, 요한 등 많은 선지자가 있었다. 남은 무리교회—둘째 휘장으로 들어간 1844년 이후 교회—도 예언의 신을 가지고 있었으니,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 8). (302.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사업에 종사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 휘장안으로 들어가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은 무리 교회에 예언의 신을 주셨다. (303.1)
 참선지자의 시금석
 남은 무리 교회는 특별히 뚜렷한 두 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계 14:12)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계 12:17)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증거” 또는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계 19:10)이다.8) 이것은 선지자라 부르는 거룩하게 지정된 사자를 통하여,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시는 교훈과 용기와 경고이다. 남은 무리 교회의 참선지자는 두 번째 휘장 안으로부터 나오는 증거를 말해야만 한다. 즉 그 증거는 하나님께서 두 번째 휘장 안에 있는 교회에 주시는 진리들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남은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참선지자의 증거는 심판, 성소, “계명에 따”른 안식일, 그리스도의 재림 징조, 원래의 순수한 영원한 복음의 진리들을 강조할 것이다. 그것은 법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이 마땅히 율법과 중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그 까닭은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사 8:20, 신킹제임스역). 이와 같이 성소에 대한 참된 견해와 영적 이해는 교회로 하여금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확실히 오늘날처럼 교회가 위험과 기만 가운데 직면한 적이 없으며, 지금은 이전 교회 세대보다도 거룩한 인도와 교훈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303.2)
 선지자의 사업
 예언의 신이 없었다면 교회는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혼들려 밀려”(엡 4:14, 신킹제임스역)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마지막 세대에, 용이 여자에게 격노하고 여자의 후손인 남은 무리와 싸우기 위하여 내려간 때에 예언의 신이 없는 교회는 대적의 무자비한 공격에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딤후 3:7) 없게 되는 것이다. 예언의 신은 교회를 이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한다. 성령의 다른 은사들처럼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엡 4:12, 13, 킹제임스역)게 한다. 예언의 신의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망원경 없이 하늘 천체의 영광을 관측하며, 현미경 없이 보이지 않는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확실히 진실한 연구자는 그런 유익한 도움을 스스로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303.3)
 하나님의 성령의 “증거”는 그분의 말씀을 한층 더 깊고, 보다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304.1)
 생명을 주는 예언의 신
 예언의 신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인도되는 교회는 꾸준히 깊은 경험을 하고 생동감 있게 자라나는 교회이며,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이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교회이다. 에스겔은 강이 바다에 가까이 이를수록 점점 더 깊어져,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것으로 이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강의 물은 생명과 성장의 근원인 “성소로 말미암아 나”(겔 47:1~12)왔다. 손에 측량 자를 가진 사람이 물의 깊이를 네 다른 곳에서 측정했다. 선지자가 물을 거슬러 이 지점들을 지나갈때, 물이 첫 번째는 “발목에”, 그다음은 “무릎에”, 그다음으로 “허리에” 이르렀다. 마침내는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너무 깊어서 걸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겔 47:3~5, 모팻). (304.2)
 여기에서 선지자는 교회를 나타내며, 물들이 성소에서 동쪽으로 흘러나오고(겔 47:1, 12), 물을 건넘에 따라 네 번 증가하는 물의 깊이를 통해, 네 세대를 거쳐 점점 깊어져 가는 교회의 경험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성소에서 공부한 바와 같이, 뜰의 교회인 히브리 교회는 발목 깊이의 경험이며, 성소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릎 깊이의 경험이다. 지성소의 남은 무리 교회는 지금 “물이 허리에 오르”기 때문에, 더욱더 깊은 경험을 위하여 다시 나아가야만 한다. (304.3)
 넷째 장자 교회—영원한 성전 교회—는9) 가장 깊은 경험의 교회이며, 이는 “그 물이 불어나니, 헤엄칠 물이요 건널 수 없는 강”(겔 47:5, 킹제임스역)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더 이상 깊은 물을 건너라는 부르심을 받지 않고,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살전 4:17). 투쟁하는 교회는 그 과정을 끝마쳤고 마침내 승리를 거둔 교회가 되었다. (304.4)
 생명을 주는 남은 무리 교회
 불어나는 강물에 대하여 선지자는, “이 강들이 이르는 곳마다 ∙∙∙ 모든 것이 살고 ∙∙∙ 또 그 강가의 둑 위에는, 이쪽저쪽으로 먹을 것을 맺는 모든 나무가 자라되,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며, 그 열매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제 달에 새로운 열매를 맺으리니 ∙∙∙ 물들이 성소에서 흘러나왔음이라. 그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것이 되며, 잎사귀는 약이 되리라”(겔 47:9, 12, 신킹제임스역)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 강이 하늘의 생명강이며, “강뚝 이편과 저편에 심히 많은 나무”(계 22:1, 2; 겔 47:7, 킹제임스역)는 생명나무인 것을 알 수 있다. (304.5)
 이 생명강은 “성소에서 흘러나”왔으며,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겔 47:12; 계 22:1, 킹제임스역) 흘러나왔다. (3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