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창조와 구속과 소망의 축제) 3. 제칠일 침례교도와 재림교도:그 공동유산 (Raymond F.Cottrell)
 제칠일 침례교회는 최근까지 거의 일방적으로 안식일의 준수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인간의 정당한 반응으로 강조해왔다. 안식일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켈 오우크스 프레스톤 부인이 뉴햄프셔 와싱톤 교회에서 안식일을 증거할 때도 이와 같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역시 이러한 방식을 따랐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최소한 일부 제칠일 침례교도들이 안식일을 인간의 필요라는 부가적 관점에서도 보기 시작했다. 즉 안식일은 창조주가 인간으로 하여금 현대 세계의 미친 듯 분망한 삶을 대처할 수 있도록 고안해 주신 고마운 조치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접근으로 안식일을 이해한다면 안식일은 과거의 어느 세대에서 보다도 오늘의 세대에서 더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예나 오늘이나 안식일은 동일하고 안식일을 존중해야 할 인간의 의무도 동일하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대신에 창조주가 안식일을 인간에게 마련하신 목적과 안식일의 본질적인 가치, 그리고 안식일의 지성적인 준수가 추가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아흐바 J.C. 본드(Ahva J. C. Band)는 이같은 새로운 관점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이다. 그가 그것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안식일이다.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15 (18.2)
 안식일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좀 더 효과적인 동기를 유발시키며 안식일 계명에 대한 기계적 일치가 주는 것 이상의 큰 축복을 가져온다. 사실 진정한 안식일 준수는 안식일을 거룩한 시간으로 성별 하신 창조주의 목적을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지키기로 선택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인간의 피조성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서만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진정한 안식일의 쉼안으로 들어 가기를 열망함으로써 진정한 안식일 준수가 가능한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강조가 허버트 이 사운더스(Herbert E. Saunders)의 [안식일:창조와 재창조의 상징](The Sabbath:Symbol of Creation and Recreation)16의 논조이다. 이 책은 다분히 아브라함 헤셀(Abraham Heschel)의 고전적인 저서 [안식일](The Sabbath)을 연상시키고 있다. 사려 깊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에게는 위의 두 저서의 독서가 크게 유익할 것이다. 사운더스는 20차례 이상이나 헤셀을 인용하였고 엠. 엘. 엔드리슨(M. L. Andreasen)을 수차례에 걸처 인용하였다. (18.3)
 사운더스에 따르면 안식일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의 계속적인 상징이요 “하나님과 우리 인류의 완전한 고리”이며 우리에 대한 창조주의 관심과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피조물로서의 관계를 항구적으로 일깨워 주는 장치이다.17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서도 그 면류관에 해당하는 업적이며 안식일은 바로 그 같은 업적의 기념비이다” 안식일의 준수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최대 표현이다.18 안식일에 대한 태만은 창조의 하나님과 창조 행위에 대한 망각을 초래한다. 거꾸로 “안식일을 기억한다면 결코 하나님이 망각될 수 없다”.19 (19.1)
 사운더스에 따르면 안식일은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 더나아가 공간을 차지 하고 있는 물질적인 사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활동과 함께 시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한다. “그것은 우리를 안식일의 이해로 이끄는 시간의 거룩성의 인식이다”. 매주일의 육일동안 우리는 공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들에 관심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제칠일에는 시간의 거룩을 기린다. 안식일은 노동 다음의 휴식이며 신성한 쉼은 신성한 노동을 요구한다. 주일 중 제칠일은 그 앞서 있는 육일들을 거룩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육일과 제칠일을 창조하실 때의 의도가 그러하셨다. 안식일은 현대 건축자들이 버린 시간의 주춧돌이다.20 (19.2)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절정에 서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구속 활동의 절정에도 서있으며 이 두 활동의 상징이다.21 안식일은 진정한 정신성의 상징이며 진정한 영적 생활의 완전한 표현이다. 안식일 준수는 그런 영적 생활의 정확한 기압계이다.22 안식일은 소생과 영적 회복과 영적 화해를 위하여 빼놓은 시간이다.23 안식일은 사람을 지상적 생존의 차원에서 영적인 단계로 솟아 오르게 한다.24 (19.3)
 안식일은 또 도래할 세계의 상징이며 “본보기”이다. 안식일의 진정한 정신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누리게 될 하늘나라와 영생이 무엇과 같을 지에 대한 관념을 부분적으로나마 갖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을 경험하기 때문이다”.25 사운더스는 다시 긍정적으로 헤셀을 인용한다. (19.4)
도래할 세계의 정수는 영원한 안식일이다. 그리고 시간속의 제칠일은 영원의 본보기이며 도래할 ∙∙∙ 세계의 맛보기이다 ∙∙∙ 그리고 영원의 증표이다.
(20.1)
 여기 이 땅의 시간 안에서 안식일의 맛을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는 오는 세상의 맛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26 (20.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사운더스는 묻고 있다. 첫째로 우리는 안식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안식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유도하는 그런 활동들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멀게하든지 그날이 안식일임을 망각하게 하든지 또는 안식일 시간을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도록 사용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는 안식일의 파괴행위다. 반대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그리스도인적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행동이나 말은 안식일에 적합하다. 안식일에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안식일은 무의미하다. 안식일 준수를 위한 어떤 고정된 인간 표준 같은 것은 없다. 개인의 양심이 그의 인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27 (20.3)
 사운더스는 가족의 유대를 결속시키는 날로서 안식일이 내포하고 있는 의의를 설명하는 데 책의 한부분을 할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준수되는 안식일은 반드시 나누어 갖는 안식일이 되어야 하며” 그 나눔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 대단히 중요한 가족적 경험이다. 안식일은 가족의 유대를 새롭게 하고 개인들을 가족관계와 가족의 필요에 연결시키는 계기로서 기능 한다. “안식일을 구조하라 그러면 안식일이 가족을 구조할 것”이라고 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글을 인용했다.28 (20.4)
 사운더스는 되풀이하여 현대 세계에서의 안식일의 적실성을 강조하였다. 안식일은 시대에 뒤떨어졌기는 커녕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법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친 듯이 돌진하는 신경증적인 사회의 압박 한가운데 있는 고요와 침묵의 요법이다. 그것은 현대의 좌절을 쫓아내는 조용한 힘이다.29 사람을 비인간화 하고 그들을 로보트로 바꾸어 놓고 있는 이 세계에서 안식일은 각 사람을 중요한 존재로 만들며 삶의 인격적인 특질을 회복시킨다.30 (20.5)
 헤셀과 마찬가지로 사운더스는 안식일에서 주일의 다른 날들과는 “다른 기후,” “봄처럼 우리를 감싸고 도는 공기,” 고요와 화창함과 평화와 휴식의 오아시스를 발견하였다.31 그리고 또 헤셀처럼 그도 안식일을 “시간안에 우리를 위하여 건축된 성소로,”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 만나서 영적이며 살아있는 친교를 함께 나누는 시간속의 정규적인 순간”32으로 그리고 “시간과 수고의 거친 대양”에 떠있는 “고요함의 섬”33으로 보았다. (20.6)
 안식일은 침례교와 제칠일 침례교가 서로 신조를 달리하는 유일한 사항이다. 사운더스는 안식일을 “우리 교단이 다른 침례교도들과 분리하여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34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안식일에의 책임 자체가 별도의 교회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느냐는 질문을 생각하게 한다. 제칠일 침례교의 존속은 위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그렇다는 대답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감소하고 있는 그들의 교인 인구통계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1830년도 미국 교인수는 1,130명이었다가 1844년에는 6,100명으로 증가했고 1863년에는 6516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당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교인수는 3500명에 불과했다. 제칠일 침례교 교인수는 1920년의 9292명을 정점으로 하여 그 후 계속 줄기 시작하여 1981년 5,125명을 기록하고 있다.35 1803년 통계로는 미국인구 4698명당 1명 꼴의 제칠일 침례교인 분포를 보였으나 1976년 통계로는 미국인구 43,685명중 1명 꼴의 분포다. 178년 전에 비해 그 비율은 1/9로 줄어든 셈이다. (21.1)
 사운더스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한 끝에 다음과 같은 “만약 그리스도교적 배경안에서 안식일과 안식일이 주장하는 것이 마땅히 상실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무엇인가가 당장 발생할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달았다.36 “안식일은 이 시대를 위하여 의미를 가지고 잇던지 아니면 그렇지 않던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는 쪽이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정력을 그 밖의 관심사로 확대해야 할 때이다.”37 (21.2)
 안식일의 이같은 개념은 제칠일 침례교도들에게 “엄청난 책임”을 부여했다. “때는 당도하였다. 안식일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것들을 보기 위하여 우리가 생존해 온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하여’구원 되었다고 믿기 떠문이다”.38 (21.3)
 아마도 이 밖에도 우리가 우리들의 제칠일 침례교 친구들로부터 안식일에 대해 배워야 할 가치 있는 일들은 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제칠일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증거에 감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의 주의를 안식일로 이끌고 드디어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의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21.4)
 미 주
 1. Arther W. Spalding, Origin and History of Seventh-day Adventist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61), vol. 1, 115-116, 399-400. Russell J. Thomsen, Seventh Day Baptists-Their Legacy to Adventists (Moutain View: Pacific Press, 1971), 36-39.

 2. Seventh Day Baptist General Conference,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America (Plainfield, N.J.: American Sabbath Tract Society, 1910), vol. 1, 36.

 3. Bryan W. Ball, The English Connection: The Puritan Roots of Seventh-day Adventist Belief (Cambrige, England: James clarke, 1981), 139 ff.

 4. Seventh Day Baptist General Conference,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America (Plainfield, N.J.: American Tract Society, 1910), vol.l, 122-124.

 5. Ibid, 127, 133, 153.

 6.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2 (Nov. 25, 1851), 54.

 7. Ibid, 1 (Nov. 1850), 7.

 8. Ibid, 2 (Nov. 25, 1851), 54.

 9. Ibid, 36 (Sept. 20, 1870), 48-49.

 10.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America, vol. 1, 198-209, passim.

 11. James White, “Seventh Day Baptists and Seventh-day Adventists,” Review and Herald, 54 (Dec. 4, 1879), 180.

 12.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America, vol.l, 198-209, passim

 13. Seventh Day Baptist General Conference, An Appeal for the Restoration of the Bible Sabbath; Reprinted in S.D. Advent Library, (Battle Creek, Mich., I860), vol.4, 9-11, 21, 34. Missionary Magazine, 1 (Aug. 1821), 18; 1 (Feb. 1823), 224-227; 1 (May. 1823), 249-255.

 14. Ibid.

 15. Ahva J. C. Bond, “The Sabbath: God’s and Man’s,” The Sabbath Recoder, 142(Jan. 6,1947), 6.

 16. Herbert E. Saunders, The Sabbath: Symbol of Creation and Recreation (Plainfield, N.J.: American Sabbath Tract Society, 1970).

 17. Ibid, 9, 21, 25, 29, 59-60, 63-64, 75.

 18. Ibid, 20, 92.

 19. Ibid, 22, 58-59, 62.

 20. Ibid, 7, 57-59, 83.

 21. Ibid, 74.

 22. Ibid, 54, 87.

 23. Ibid, 8-11, 54.

 24. Ibid, 87, quoting M. L. Andreasen.

 25. Ibid, 79.

 26. Ibid, 80.

 27. Ibid, 14-16,81-82.

 28. Ibid, 82, 93-95.

 29. Ibid, 7-8, 10-11.

 30. Ibid, 7-8, 10-11, 13.

 31. Ibid, 9, 13, 54, 60, 83.

 32. Ibid.

 33. Ibid, 98.

 34. Ibid, 10.

 35. 1981 Yearbook of American and Canadian Churches, 90.

 36. Saunders, 55.

 37. Ibid, 56.

 38. Ibid, 100.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