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서문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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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마지막 책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란 주제는 여러 세기에 걸쳐 성경학도들의 매혹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1948년에 있었던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 사건은 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고조시켰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 16:16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란 말이 유대인과 이방인 군대 사이의 최후적 전투가 있을, 팔레스틴 북방 가멜산 근처에 있는 므깃도 평원에서 전개될 전 세계적 살육의 결정적인 전쟁이 있을 지리적 장소를 예언한 것으로 결론을 내려 왔다. 예컨대 새 스코필드 해설 성경(1967년도판 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의 요한계시록 19:17에 관한 난하주 참조)은 성경 해석에서 예언적 언어나 은유적 표현들을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적용한다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다. 필자가 저술한 책 『예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예언 해석 원칙들』(The Israel of God in Prophecy — Principles of Prophetic Interpretation, AU Monographs, Studies in Religion, Volume XIII〈Berrien Springs, MI:Andrews University Press, 1983〉)에서 예언에 있어서의 문자주의에 관한 성경 해석학 문제를 논술한 바 있다. (13.1)
 필자는 본서에서 신약성경의 해석학적 원칙을 분석하고, 그 해석학적 원칙들을 성경 역사와 예언상의 “성전”(聖戰)에 적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어느 정도 이미 성취되었는지 확인하고 그 성취를 통하여 드러난 원칙들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당도하였다고 믿고 있는 “아마겟돈”이란 묵시문학적 전쟁을 해석하는 지침과 규범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성경 해석의 원칙은 성경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책임성 있는 성경 해석학이 결여될 때 신자들은 성경 예언에 관한 옳은 이해와 그릇된 이해를 분간할 수 없게 된다. (13.2)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상호간 본질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전망에서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메시야이신 나사렛 예수를 중심으로 하지도 않고 또 그분들에 의하여 작정되지 않은 “아마겟돈”에 관한 여하한 해석일지라도,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을 점치는 일로 둔갑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이같이 점치는 일은 아마겟돈 예언을 구속사에서 단절시켜 버린다. 즉 이러한 해석은 아마겟돈에 걸려 있는 중심문제를 중동을 유전과도 같은 정치—경제적 관심사로만 돌리고 만다. 만일 성경이 아마겟돈을 인류 역사상 최후적인 “성전”(聖戰)으로 제시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그분의 메사야적 백성 즉 메시야되시는 예수의 백성이 “전능하신 이의 큰 날”(계 16:14)의 우주적 전쟁의 바로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후 1:20).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적 예언들에 나오는 히브리적인 모든 용어들인 이스라엘, 바벨론, 시온산, 아마겟돈 등을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연계관계, 즉 기독론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14.1)
 전세계에 있는 자신의 백성을 두려운 심판의 날에 대비케 하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최후적 표적인 지정된 선구자로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낸다고 약속하였다(말 4:5, 6을 보라). 마지막을 준비시키는 이 메시지는 본서의 마지막 장(章)의 주제이다. (14.2)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공허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성경의 소생시키는 증언은 각 나라에서 충성스러운 남은 무리의 신자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온 하늘의 구원의 병거로 고대 엘리야가 구원받았던 것처럼 “아마겟돈”에서 살아 남아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구속사의 마지막 때 위기에서 그들의 방어자가 될 것이고 그들의 거룩한 전사(戰士)가 될 것이다. (15.1)
 시간과 지면 사정상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기 문제를 다룰 수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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