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1 부 안식일과 쉼 제 2 장  안식일, 하나님의 인인가? 짐승의 표인가?
 안식일: 쉼의 회복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이교의 거짓된 쉼 신학으로 인한 폐해는 인간의 쉼 없음을 가중시킨 그 노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해악은 악령을 섬기던 시달림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왜곡된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신의 존재 의식과 인간의 사회적 기능이 악령의 존재 의식과 악령의 사회적 기능을 닮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33.2)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다가올 때마다 겁먹고 자지러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누어 줄 벅찬 숨과 생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다. 그러나 이교의 나쁜 감화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두려운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에게 공양으로 잡혀가는 줄로 알고 겁먹는다. 하나님의 자기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까무러친다. 어찌하여 성경은 사람과 만나는 하나님의 첫 말씀을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 막 6:50; 눅 1:30) 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그 배경에는 종교적으로 어두웠던 시대에 찌들은 인간의 겁먹은 신(神)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경험한 신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숨과 쉼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끔찍한 신들이었다. 그들의 심령에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올바른 이미지가 없다. 그들의 심령은 온통 두려운 악령의 이미지로 황폐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사람의 심령에서 악령의 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씻어내고 밝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이미지를 복원해 줄 것이다. 쉼 없음을 털어 내고 거룩하고 밝은 생기로 가득하게 할 것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피로 되찾은 사람의 쉼이다. 이같은 안식이 안식일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야말로 참다운 안식일 신앙 인식의 복원일 것이다. (33.3)
 사람은 어느 시대나 그 섬기는 자를 닮는다. 이교적 쉼의 전통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쉼에 부대끼는 신들을 섬기면서 자신의 쉼을 위해 쉼을 유린하는 왜곡된 삶의 방식을 배웠다. 자신의 존재 의식에 있어서도 천사의 이미지를 상실하고 악마의 이미지를 습득했다.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도 천사의 기능을 배우지 못하고 악마의 기능을 닮게 되었다. 힘있는 사람들은 힘있는 귀신들을 닮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비열하게 젖먹이나 부녀자들을 괴롭히고 성가시게 하는 몽당귀신 같은 신들을 닮았다. 그리하여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던 사람과 천국의 형상이던 사람의 나라가 귀신과 지옥의 나라로 변해 버렸다. 따라서 사람에게서, 사람과 사람의 사회적 관계에서,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념에서 저 어두웠던 시대를 낙인찍은 쉼 없음과 쉼 유린의 짐승 같은 이미지를 도말하고 참 숨과 참 쉼의 출처요 시여자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예수님의 안식일 복음이 의도하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34.1)
 제칠일 안식일은 신자들의 삶에서 진정 한 숨과 쉼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그리고 그 숨과 쉼의 경험을 통하여 신자들의 심령에서 하나님의 왜곡된 이미지가 도말되고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이 회복되는 날이다. 그리고 그 숨과 쉼의 경험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존과 삶의 기능 위에 선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도장이 확인되는 날이다. 진정한 숨과 쉼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오해할 수 없는 우리 하나님의 자기 표시, 곧 그의 인인 것이다. 진정한 숨과 쉼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오해할 수 없는 진정한 안식일의 자기표시인 것이다. 진정한 안식일의 도장인 것이다. 그리고 숨 없음과 쉼 없음이야말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짐승의 표이고 거짓 안식일의 표인 것이다. (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