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 성전에서 “악인들에게〔그의 습관적인 행위의 일환으로서〕 불과 유황의 비를 내리신다”고 했다. 「현대역 영어 성경」과 모팻(Moffatt)역에서 똑같이 습관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하나님은 명렬히 타는 숯불을 “내리시고 계신다”. 그분은 숯불을 “비처럼 쏟아 붓고”계시다. (234.1)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동성 연애의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에 문자 그대로 불비(火雨)가 내렸다(창 19:24).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시대에 불의하고 음란한 예루살렘을 불태우셨다(렘 17:27 ; 애 2:4; 겔 15:6~8). 하나님께서는 또 악한 에돔의 마른 초개(草)를 태우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불”로 사용하셨다(욥 18). 그리고 분명히 우리들의 시대에도 때때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태우고 벌하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불”내리셨고 또 내리고 계시다. (234.2)
 요한계시록의 예
 이 정도면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에 대해 좀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으로 되돌아 갈 때 우리는 요엘과 다윗과 이사야가 앞서 사용했던바 뇌우, 숯, 곤충의 떼에 대한 언어 묘사를 단번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234.3)
 첫번째 나팔에서 우리는 그 불이 과거에 다윗이 말한바 하나님이 때때로 하늘의 그 성전에서 땅 위로 쏟아 내리곤 하는 불인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론적인 장면(계 8:2~5)에 보면 금대접을 든 천사가 향로에 가득 불을 담아 “땅에 쏟”는다(5절). 첫째 나팔이 울려 퍼지자 “피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7절). (234.4)
 일곱 나팔의 표현들은 대체로 인상주의적인 언어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234.5)
 대부분이 인상주의적인 표현들이므로 그 언어들을 문자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같은 인상주의적 표현과 그 표현 대상인 실재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폭풍우와 곤충 떼를 번영이나 평화의 예표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들은 하늘의 징벌과 전쟁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234.6)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팔은 전쟁과 심판에 연관되고 있다. 고대에는 전쟁을 위해 병사들을 소집할 때, 그리고 전투 중에 기별을 전할 때 나팔을 사용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에는 전쟁과 심판이 결합되어 있다. “민족들이 분노하며”, “죽은 자를 심판하는∙∙∙때”가 당도한 것이다(계 11:18). (234.7)
 그러나 요엘은 “냐팔을 불라”고 했을 때 백성들이 메뚜기 떼로 인하여 회개하기로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에 대해 연구를 계속함에 따라 일곱 나팔 역시 회개의 호소를 전달하고 있음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계속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일곱째 나팔이 최후의 심판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여섯 나팔은 심각하면서도 덜 결정적인 심판들을 선포하고 있다. 여섯 나팔은 백성들에게 아직 회개할 기회가 부여되어 있는 동안에 회개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234.8)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들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지어다(욜 2:15~17)
(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