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33장 그분은 원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화목하게 하십니다
  • 1
  (196.1)
 창세기 33장에서 야곱은 가나안에 돌아와 에서와 만나 화해하였다. 그는 세겜 성읍 앞에 땅을 구입하여 정착하였다.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65 킬로미터쯤 떨어진 아랍인 마을인 나불루스(Nablus)에서 동쪽으로 1, 2 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텔 발라타(Tell Balâta)이다. 세겜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야곱의 우물이 있는 수가와 동일한 장소로 여겨진다.1요 4:5 야곱은 세겜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였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불렀더라.’(창 33:20). 제단을 쌓음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이 새 땅에서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후에 이 땅에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곱의 후손으로 탄생하시고 구속의 경륜을 성취하셨다. (196.2)
 에서, 용서하시는 하나님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세기 33:4).
(197.1)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그 이야기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에서 그 모델을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2(눅 15:20). 두 이야기의 큰 차이는 누가복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창세기에서 형과 아우의 관계이며, 공통적으로 죄를 범한 둘째 아들을 다루고 있다. (197.2)
 두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은 먼 나라로 떠났다가(창 28:2; 눅 15:13)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창 31:3; 눅 15:18). 둘째 아들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짐은 죄였기에 그는 아들 혹은 아우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주장하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는 겸비한 자세로 자기를 종과 품꾼으로 언급한다(창 32:4, 18, 21; 33:5, 14; 눅 15:19, 21). 그들이 만났을 때 탕자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몸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었다(창 33:4). 정서적으로도 완전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는 말이 표현한다(창 33:4). (197.3)
 에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는 야곱이 한 말 속에서 발견된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 33:10). 그 후에 저들은 아버지 이삭의 집에 함께 모였다. 이삭의 장례를 함께 치루기 위해서였다(창 35:29).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온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집 안의 한 가족으로 연합하게 되었다(엡 1:10; 골 1:20; 3:11; 계 5:9). (197.4)
 야곱과 에서가 서로 용서하여 하나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한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고(눅 23:34),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후 5:19; 요일 2:2).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교회가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용서의 정신을 갖지 못하면 응답을 받을 수 없다(마 6:14-15). (197.5)
 예물을 받으소서, 용서와 화해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 거기에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세기 33:11, 20).
(198.1)
 보상. 야곱은 에서에게 계속해서 예물(מִנְחָה 민하, 창 32:14, 21-22; 33:10)을 바치려고 했다. 창세기 33:11에서는 이미 사용된 민하(מִנְחָה)대신에 ‘베라카’(בְּרָכָה) 축복이 특별히 사용되였다. 이것은 야곱이 이십년 전에 에서에게서 가로채 버린 아버지의 축복을 어떤 면에서 보상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3 형이 이것을 받아들임으로 화해가 완전히 성립이 되었다. 그 후에 야곱은 세겜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198.2)
 제사보다 먼저 화해. 예수님은 화해의 종교적 성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화목을 위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일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 야곱처럼 보상을 해야 한다. (198.3)
 제사제도 속에는 보상한 후에 드리는 제물로 속건제물이 있다(레 5:14- 6:7). 속건제물을 드리는 규정에 의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본래 물건의 오분의 일을 더해서 갚아 준 후에 하나님께 속건제물을 지정한 가치대로 드렸으며,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았다(레 6:7). (198.4)
 삭개오는 속건제물 규정을 넘치게 적용하여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예수님께 말했다(눅 19:8). 삭개오의 보상 자세는 이웃과의 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회복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10). (199.1)
 인간적 화해의 한계. 야곱과 에서의 화해는 그 당대에만 해당될 뿐 후에 이스라엘과 에돔은 원수가 되었다. 오바댜서는 전적으로 에돔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예수님을 어린 시절에 죽이려고 했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관여한 헤롯 왕들은 에돔 출신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화해는 영원하다. 두 사람은 화해한 다음에 세일과 세겜에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창 33:16, 18)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도록 한다. (199.2)
 야곱, 양의 목자이신 주님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창세기 33:13-14).
(199.3)
 야곱은 매우 자상하게 양의 형편을 알고 보살피는 목자장이었다. 그의 온유한 모습은 선한 목자 예수님을 잘 보여준다(요 10:11). 예수님은 병든 양을 돌보시고 상한 양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며,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온 세상의 양떼가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신다(요 10:10, 16).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이나 부탁하셨다(요 21:15-17). 후에 베드로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자원하여 침으로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라고 권면하였다(벧후 5:1-4). (199.4)
 참고 문헌
 1. Lawrence E. Tooms, ‘Shechem (Place),’ ABD, 5:1174-1175쪽. 세겜(שְׁכֶם)이 요한복음 4:5에 수가(Συχὰρ)로 기록된 이유에 대해서 학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이 원래 자음으로만 기록되었기 때문에 요한이 마지막 자음인 히브리어 ‘멤’(ם, 음가 m)을 유사한 글자인 ‘레쉬’(ר, 음가 r)로 오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어로는 쉬칼(Suca,r)이며, Salkinson-Ginsburg의 히브리어 신약은 수칼(סוּכַר)로 표기했다. 음역상의 문제 때문에 두 장소를 동일 장소로 보는 것은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곳은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이며 후에 요셉의 유골은 이곳에 매장되었다(창 48:22; 수 24:32; 요 4:5). Howard F. Vos, ‘Shechem (Place),’ BEB, 1941쪽.

 2. R. W. L. Moberly, Genesis 12-5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29쪽.

 3. Sarna, 앞의 책, 230쪽. (200.1)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