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6 장 성경의 이혼과 재혼 4.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
 마태의 공헌
 마태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에 관하여 세 가지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것들을 연구하기 전에, 왜 마태는 마가복음 10장에 말하지 않은 이혼에 관한 주님의 교훈을 제공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마태가 유대인 독자를 위하여 기록하였음에 비하여, 마가는 이방인 독자들을 위하여 썼다. 성령의 영감 아래 각 저자는 예수님의 교훈을 청중들에게 적합하게 기록하였는데, 이 사실은 마태가 구약성서를 자주 인용한 반면 마가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방인들을 위하여 구약성서를 단지 몇 번만 사용한 데서 입증된다. 마가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낯선 어떤 유대인의 전통과 특수 용어들을 설명하는 데 애를 썼을 것이다(비교— 막 7:2, 11, 34, 5:41, 9:43, 14:12, 36). (236.1)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마가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유행하는 것 때문에 아내가 남편과 이혼할(막 10:12)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했을 것이다. 마태는 유대법이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에서 그 부분을 삭제하였다. 이것은 각 복음서의 저자들이 그리스도인 사회에 적용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교훈을 선별하여 기록하였음을 말해 준다. 마태가 유대인 인 그리스도인 독자를 대상으로 기록하면서 그는 마가와 누가가 빠뜨린 이혼과 재혼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의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236.2)
 이혼과 재혼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에 대한 마태의 중요한 공헌은 첫째로, 산상설교를 배경으로 하여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 께서는 율법의 문자 그 자체가 아닌 정신에 따라 조화된 삶을 살도록 격려하셨다. 모세의 허가(마 5:31; 비교— 신 24:1-3)에 대한 문자적 이해를 주장하며 이혼을 허락하는 바리새인들에 반대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목적을 계시하시면서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마 5:32)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236.3)
 두번째로 마태의 중요한 공헌은 예수님의 교훈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다.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마 19:10). 분명히 제자들은, 오직 간음으로 인하여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샴마이(Shammai)나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이혼을 허락하는 힐렐(Hillel)의 랍비들의 견해들을 따랐을 것이다. 그들이 이혼은 허락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교훈의 핵심을 깨닫자, 그들은 놀라서 “사람이 이혼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반응했다. 그때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독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하셨다(마 19:11-12),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간단한 대화는, 간접적이면서도 힘있게, 예수께서 결혼 관계의 영원성을 가르치신 것을 말한다. (237.1)
 예외적인 구절
 세번째로 마태의 중요한 공헌은 이혼과 재혼이 “음행한(porneia) 연고”로 가능함을 교훈한 예외절(마 5:3219:9)을 기록한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237.2)
 이 두 본문에 나타난 예외절은 무수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연구의 주요 이유는 이혼과 재혼에 대한 합법적인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예외절의 의미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사분오분되는데, 대개 예외 구절의 핵심어인 “음행”(헬, pomeia)의 정확한 뜻에 대하여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음행”(흠정역), “음탕”(개역 표준판), 그리고 “결혼의 불충실”(새 국제역)로 번역된다. (238.1)
 헬라어 단어 “포르네이아”(pomeia, 음행)는 “팔다”라는 뜻을 가진 어원(pememi)에서 왔는데, “도색 문학”도 동일한 어원을 가진다. 본래의 뜻은 자신의 몸을 값을 받고 파는 것이다. 이 단어가 특히 노예와 창녀에게 사용되었다.11 역사적으로 “포르네이아”는 광의적 혹은 협의적 의미로 쓰였는데, 광의의 의미는 매춘, 사통(私通), 그리고 간음 같은 불법적인 혼외의 성교를 포함하였다. 협의의 뜻은 동성연애(비교—롬 1:29), 근친상간(비교—고전 5:1), 그리고 금지된 관계 내의 불법적 결혼(행 15:20, 29) 같은 성(외도적 도착(倒錯])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예외 구절(마 5:32, 19:9)에서 “포르네이아”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용어를 광의 혹은 협의의 의미 중 어느 것으로 사용하셨는가? 예외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구구한데 다음의 다섯 가지 주요 해석들을 살펴보자. (238.2)
 (1) 간음 또는 성적 추행
 예외 구절에 대한 전통적이고 가장 인기 있는 해석은 “포르네이아”를 성적 추행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편이 결혼에 대하여 불성실할 때에 이혼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해석을 대개의 번역들이, “간음”(흠정역), “음행”(개역 표 준판), 혹은 “결혼의 불충실”(새, 국제역) 등으로 받아들인다. (238.3)
 견해의 옹호자들은 이혼은 결혼의 파약을 뜻하므로 예외 구절은 무죄한 쪽에서 이혼과 재혼을 할 수 있다고 지지한다. 이럴 경우, 예수께서는 아내의 심각한 성적 추행이 증거되었을 때 이혼을 허락하는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의 편이 되실 것이다. (238.4)
 인기 있는 설에도 불구하고, 이 해석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여기 다섯 가지 문제점을 살펴본다. 첫째로, 예수께서 이혼에 대한 모세의 조항을, 결혼을 영원한 연합으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거역하는 것으로 반대하신 내용과 모순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현재 명령형 동사(kovizety)로서 계속되는 진행의 습관을 강조함으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짝지어 주신 결혼의 영원성을 나타내었다. (239.1)
 이혼에 관한 모세의 조항을 반대하신 예수님의 태도를 볼 때, 성적 추행 때문에 결혼의 파기를 허락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만약 결혼의 파약을 인정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의 영원한 연합에 관해 확언하신 것과 모순이 된다. 그러면 그분의 교훈은, 모세의 허가를 거절하는 것이 아닌, 단지 샴마이 화파의 해석과 근본적으로 유사하게 된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분명히 예수님의 교훈이 모세와 반대되는 것을 이해하였다(“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 19:7), 결혼의 영원한 연합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과 모세의 허가 간의 명료한 쟁점은 “포르네이아”를 성적 추행으로 여기는 광의의 뜻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39.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불성실의 경우 외에 이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의 입장에 서 계신다면, 예수님의 교훈의 우월성은 진정 무엇인가? 그리고 왜 제자들은 그분의 교훈을 듣고 깜짝 놀랐는가? 그들은 예수께서 자유주의적인 힐렐 학파보다 보수적인 샴 마이의 견해를 더 지지하기를 기대하였는가?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포르네이아”마태복음 19:3-9에서 그들이 놀란 근본적이고 진보적인 교훈에 모순이 되지 않는 협의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239.3)
 “포르네이아”를 성적 추행으로 해석하는 둘째 문제는 이혼과 재혼을 간음으로 정죄한 마가복음 10:1-12누가복음 16:18에 기록된 예수님의 교훈의 태도에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공관복음서의 세 곳 모두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을 조화시켜 이해하지만, 당시 유대인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회람되었던 마태복음을 접할 길이 없었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이방인 독자들은, 예수님께서 결혼의 불충실 때문에 이혼이나 재결혼을 허락하셨는지에 대하여 알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240.1)
 예외 구절을 성적 추행으로 해석하는 데 세번째 문제는 고린도전서 7:10-11“이혼하지 말라”는 바울의 교훈에 모순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 명령을 예수께서 친히 주신 것으로 주장하면서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말하는 이혼의 전적인 금지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교훈을 지지한다. (240.2)
 “포르네이아”를 성적 추행(간음)으로 해석하는 네번째 문제는, 용어가 비록 간음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간음을 나타내는 정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간음을 뜻하는 정상적인 헬라어는 모이케이아(moicheia)로서, 예수께서 이혼과 재혼의 결과 곧, “간음을 범한” 것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혼에 관련된 본문에 사용하셨다. 만약 예수께서 간음 때문에 이혼을 특별히 허락하고자 의도하셨다면, 아마도 분명한 단어인 “모이케이아”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 분이 다른 단어를 쓰신 사실은 “포르네이아”는 간음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240.3)
 이 사실을 지지할 수 있는 결혼은 간음의 연고로 이혼하는 조항이 모세오경에는 없다는 것이다. 저질러진 간음에 대한 처벌은 죽이는 것(레 20:10; 신 22:22, 23-27)이지 이혼이 아니었다. 결혼 전에 성교를 한 여자의 경우에도 동일하였다(신 22:12-21). 그녀는 돌에 맞아 죽었지 이혼을 당한 것이 아니다. 성적 추행 때문에 이혼이 허락되었다는 아무런 지시도 모세오경에는 없다. (241.1)
 예외 구절을 성적 추행으로 해석하는 다섯째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왜 놀랐는지를 잘못 설명하는 데 있다. 쉴 레벡(Edward Schillebeeck)은 지적한다. “만약 예수께서 간음의 연고로 이혼을 허락하는 샴마이 학파의 추종자들 편을 취하였다는 의미로 마태복음 19:9을 해석한다면, 제자들의 대답—‘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19:10)에 나타난 놀라움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의 경악은 분명히 예수께서 결혼의 파약의 모든 가능성을 반대한 사실에 있다. 예수님의 거절은 다음 설명으로 입증된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19:11).”12 앞에서 연구한 바대로 우리가 결론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간음이나 성적 추행 때문에 이혼이나 재혼을 허락하였다는 의미로 “포르네이아”의 예외를 설명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의 경악과 마태복음 19:3-9의 급진적인 교훈을 감안 할 때 “포르네이아”는 협의의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41.2)